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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도 고칠 수 있는 질병 … 냉동인간 150명 부활 기다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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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인류 10대 난제에 도전하다

미국 알코어생명연장재단의 냉동인간용 액화질소 탱크. 150여 명의 시신이 냉 동된 채 부활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 알코어생명연장재단]

미국 알코어생명연장재단의 냉동인간용 액화질소 탱크. 150여 명의 시신이 냉 동된 채 부활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 알코어생명연장재단]

미국 애리조나주 알코어생명연장재단의 한 수술실. 사망한 지 10분쯤 된 시신이 수술대에 올라왔다. 이곳에서 진행되는 냉동인간 시술은 의사 사망선고가 내려지고 15분 이내에 시작된다. 먼저 의료진이 얼음을 부어 신체 온도를 영하로 낮춘다. 동시에 피가 굳지 않도록 하는 특수약물을 주입한다. 그런 다음 혈액을 빼내고 16가지 장기 보존액을 주입한다. 마지막으로 동결보존액을 주입하고 서서히 냉동시켜 영하 196도 액화질소 탱크에 보존한다.

미 알코어생명연장재단 ‘영생 실험’ #메이저리그 타격왕도 2002년 냉동 #실리콘밸리 “500세 목표” 연구 한창 #텔로미어 늘려 쥐 생체시계 되돌려 #한국선 근육과 뇌기능 관계 연구 #“단기엔 성과 못 내 국책사업 필요”

막스 모어 알코어 CEO는 “재단의 임무는 회원들에게 수명을 연장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머잖은 미래에 몸을 재활용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재단은 의학적으로 이미 숨진 이들을 ‘냉동 시신’이 아닌 환자(patients)로 부른다. 1982년 설립된 이 재단에는 현재 미국은 물론 일본·중국 등지에서 온 냉동인간 150여 명이 새로운 생명을 얻을 미래를 기다리며 잠들어 있다. 이 중에는 2002년 83세로 숨진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타격의 신’ 테드 윌리엄스도 있다. 알코어 생명재단의 냉동인간은 죽음마저 넘어서려는 21세기 인류의 몸부림이다.

미국, 노화 따른 근육 감소 질병 분류

알코어생명연장재단 홍보 동영상에 담긴 냉동인간 시술실. [사진 알코어생명연장재단]

알코어생명연장재단 홍보 동영상에 담긴 냉동인간 시술실. [사진 알코어생명연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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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연장과 노화에 도전하는 인간의 꿈이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근감소증에 ‘M62.84’란 질병 분류 코드를 부여했다. 사람의 근육량은 20대 무렵 최대치에 이른 뒤 서서히 줄어 70대 이후에는 40% 이상이 감소한다. CDC의 이번 조치는 노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나이 들면 당연한 일’에서 ‘질병’으로 바뀌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국내 의료계에서도 근감소증에 대한 질병 코드를 부여하는 걸 검토 중이다.

노화가 독자적인 연구 주제로 자리 잡은 건 2000년대 후반이다. 2009년 노벨 의학상이 세포 속 생체시계 ‘텔로미어’의 역할을 확인한 엘리자베스 블랙번 교수 등 3명에게 돌아가면서 노화 연구는 혁명기를 맞았다. 염색체 끝단을 말하는 텔로미어는 운동화 끈 끝을 감싼 플라스틱처럼 세포 속 염색체 끝부분에 위치하는 유전자 조각이다. 텔로미어는 세포 분열이 일어날수록 짧아지는데 그 길이가 노화점보다 짧아지면 세포는 노화 세포에 접어들고 결국 죽는다.

생체시계를 되돌리는 회춘은 불가능한 걸까. 블랙번 교수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텔로머라아제 기능이 활발해져 텔로미어 길이가 줄어들지 않으면 세포 노화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텔로머라아제는 텔로미어가 짧아지는 것을 막는 몸속 효소다. 암세포가 무한 증식할 수 있는 건 텔로머라아제 활성으로 텔로미어가 짧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세포노화·암세포 연구는 동전의 양면

영화 ‘데몰리션 맨’에서 주인공이 냉동 상태에서 깨어나는 모습. [중앙포토]

영화 ‘데몰리션 맨’에서 주인공이 냉동 상태에서 깨어나는 모습. [중앙포토]

텔로머라아제를 활용해 노화시계를 되돌리는 데 성공한 사례도 있다. 2010년 하버드 의대 로널드 드피뇨 박사 연구팀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나이 든 생쥐를 젊어지게 만들었다. 연구팀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텔로머라아제를 조절할 수 있는 스위치를 실험쥐 세포에 장착했다. 텔로머라아제 효소 활성화 스위치를 작동시킨 지 한 달이 지나자 회색 털이 검은색으로 변했고, 줄어든 뇌의 크기도 정상으로 회복됐다.

국내에선 노화 연구가 두 갈래로 이뤄지고 있다. 노화 세포와 암세포다. 2008년 노화 연구단을 꾸린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근육 노화에 연구를 집중하고 있다. 이 연구소는 지난해 노화에 따른 뇌 기능 저하를 설명하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근육에서 만들어지는 ‘카셉신 B’ 호르몬이 뇌의 인지기능을 좋게 만드는데, 노화로 인해 근육이 줄면서 이 호르몬 분비가 줄어 인지기능이 저하된다는 것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권기선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노화제어연구단장은 “근육도 몸속 장기처럼 건강 유지에 꼭 필요한 호르몬을 분비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나이가 들어도 적당한 근육량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최근까지 진행된 연구를 종합하면 노화는 근육감소·암·심혈관질환·치매 등 각종 질병의 원인으로 꼽힌다.

텔로미어와 알츠하이머의 연관성을 연구하고 있는 고성호 한양대 구리병원 신경과 교수는 “알츠하이머 환자의 텔로미어 길이가 일반인에 비해 짧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며 “노화 관련 효소 hTERT를 통해 알츠하이머를 치료하는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텔로머라아제의 특성을 활용해 암세포를 사멸하게 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정인권 연세대 생명시스템대학 교수는 “암세포 텔로미어와 텔로머라아제가 결합하지 못하게 만들어 암세포가 사멸하게 하는 새로운 항암제를 찾고 있다”며 “세포 노화와 암세포 연구는 동전의 서로 다른 면”이라고 말했다.

노화 연구에 뛰어든 IT 창업자들

세르게이 브린 구글 창업자
2013년 노화 연구 바이오 기업 칼리코(Calico) 설립. 인간 수명을 500세로 연장하는 게 목표.

래리 엘리슨

래리 엘리슨

래리 엘리슨 오라클 공동 창업자
1997년 자신의 이름을 딴 의학재단 설립. 3억3500만 달러 투자. “인간의 죽음은 피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

미국 실리콘밸리는 노화를 미래 먹거리 중 하나로 꼽아 투자를 늘리고 있다. 구글의 공동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이 2013년 세운 칼리코(Calico)가 대표적이다. 칼리코는 노화 원인을 찾아내 인간 수명을 500살 정도로 연장하는 게 목표다. 유전자 조합을 통해 수명이 10배 늘어난 회충을 만든 신시아 캐넌 박사가 칼리코 소속이다.

오라클 공동 창업자 래리 엘리슨은 1997년 자신의 이름을 딴 의학재단을 설립하고 노화 방지 연구에 3억3500만 달러(약 3600억원)를 지원했다.

페이팔 공동 창업자 피터 틸은 센스 연구재단에서 수행하고 있는 수명 연장 연구를 지원하는 중이다. 실리콘 밸리의 노화 연구 바이오 기업은 속속 신설되는 중이다.

미·일 등선 국가 주도 노화연구소 운영

지난해 3월 생명과학자 크레이그 벤터는 ‘인간 장수(Human Longevity)’라고 이름 붙인 바이오 기업을 설립했다. 벤터는 “2020년까지 100세 이상 살아간 사람들을 포함해 100만 명의 유전자를 해독해 수명 연장 정보를 찾아내겠다”고 말했다.

노화 연구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이준호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노화 원인물질을 찾더라도 이를 임상시험에서 검증하는 데는 최소 10년에서 길게는 30~50년이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인간의 생애 주기가 80년 정도로 길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생애 주기가 짧은 꼬마선충(3주)이나 생쥐(2년)가 노화 연구에 활용된다. 노화 연구가 단기간에 결과물을 내놓을 수 없기에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선 국가 주도로 노화연구소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반면에 국내에선 노화만을 다루는 국책 연구소는 없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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