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명의 사상자(사망 29명·부상 37명)가 발생한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사고 때 119소방대가 건물의 설계도를 확보하지 못한 채 구조·진화에 나섰던 것으로 중앙일보 취재에서 드러났다.
이 때문에 당시 소방관들은 원시적으로 백지 위에 현장에서 파악한 건물 구조를 하나씩 수작업으로 그려 가며 구조에 나섰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신속한 상황 판단과 구조·진압이 사실상 어려웠다는 것이다.
출동당시 건물설계도 확보하지 못해 종이에 그려가며 구조·진압 #소방당국 "긴급한 상황이라 전 직원 출동, 도면 전해줄 직원 없어" #3층 손님 비상계단 대피… 구조대 늦게 도착 2층 여탕 진입 늦어
24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지난 21일 오후 3시53분 신고를 받고 출동한 제천소방서 소방관들은 오후 4시 현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당시 출동 과정에서 소방관들은 불 난 건물의 설계도면을 챙기지 않은 상태였다. 통상 화재가 발생하면 신속한 출동을 위해 소방대가 먼저 출동하고 소방서에 남은 직원(최소 1명)이 무전이나 휴대전화로 건물 구조와 출입구·비상구, 창문 위치 등을 전달한다. 건물의 구조를 정확히 알아야 1분 1초라도 아껴 인명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난 2월 경기도 화성 동탄 메타폴리스 주상복합 화재 때는 신고를 접수한 재난종합지시센터가 소방차·구급차가 출동하는 동안 각 지역 소방서가 보유 중인 주요 건물 DB 자료를 검색, 설계도를 현장 지휘부의 태블릿PC로 전송했다. 현장 지휘부는 이 설계도를 통해 건물 구조와 비상구 등을 파악하고 소방관을 어느 곳으로 투입할지를 바로 판단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소방서 소속 구조·구급·진압 담당 직원 등 당일 근무자 60여 명이 모두 현장으로 출동하는 바람에 건물 설계도를 전달해줄 대원이 소방서에 남아 있지 않았다고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소방 고위 관계자가 전했다.
이와 관련, 화재 당일 현장에 출동했던 한 소방대원은 “워낙 급박한 상황이라 모든 대원이 출동했고 도면이 없어 각 층과 비상계단을 신속·정확히 찾아갈 수 없었다”며 “설계도를 보고 말고 할 시간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번 참사 피해자 유가족들은 소방관서 측의 초기 대응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유족 대표들은 “2층 여자 목욕탕 휴게실 옆 황토방 유리창은 사람 한 명이 들어갈 크기다. 이 창을 통해 구조대가 진입했다면 20명을 모두 살렸을 것”이라며 울먹였다.
20명이 숨진 2층 여자 목욕탕 구조를 제대로 알았다면 화재 초기 불길이 몰린 중앙계단과 달리 비교적 안전했던 비상계단으로 신속한 진입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건물에 진입할 수 있는 구조대가 도착한 건 오후 4시9분쯤이었다. 구조대는 4시35분이 지나서야 비상계단을 통해 2층 비상구(철문)를 뚫고 진입했다. 이미 20명이 모두 숨진 뒤였다.
박충화 대전대 안전방재학부 교수는 “선진국에서는 주요 건물의 설계도를 3D로 자료화해 보관한 뒤 사고 때 활용하고 있다”며 “소방의 열악한 현장환경도 이해하지만 구조 때 설계도를 활용하지 못한 것은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제천·수원=신진호·최모란·박진호·김준영 기자 shin.jin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