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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틋했던 모녀 3대 먼길 떠나는 날, 하늘도 굵은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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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충북 제천 복합상가 화재사고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제천실내체육관에 24일 오전 희생자를 애도하는 유족과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프리랜서 김성태]

충북 제천 복합상가 화재사고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제천실내체육관에 24일 오전 희생자를 애도하는 유족과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프리랜서 김성태]

“어떻게 3명이 한 번에 가니….”

함께 목욕 갔다 참변 … 어제 발인식 #“엄마 따라 고향 놀러간다던 친구 #대학생 된다고 정말 좋아했는데 … ” #주민들 “시 전체가 말그대로 패닉”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단란했던 외할머니·엄마·딸이 흰색 운구차 2대에 실리자 유족들은 오열했다. 이른 아침부터 제천에 내린 굵은 빗방울이 통곡과 뒤섞였다.

이날 오전 10시30분 충북 제천시 제천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는 복합상가 화재로 목숨을 잃은 김현중(80)씨, 민윤정(49)씨, 김지성(18)양의 발인식이 엄수됐다. 외할머니·엄마·딸 3대인 세 사람은 지난 21일 함께 제천 복합상가 건물 목욕탕에서 참변을 당했다. 가족 3명을 한꺼번에 잃은 유족들은 발인식 내내 제대로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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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씨 모녀와 10년 넘게 친하게 지냈다는 한 지인은 “화목하고 단란한 가정이었다”고 했다. 그는 “내 딸과 지성이는 유치원 때부터 친구다. 지성이는 어머니를 무척 잘 따르던 아이였고 민씨도 친정어머니를 끔찍이 아꼈다”며 눈물을 보였다.

경기도 용인시에 사는 모녀는 딸의 수능이 끝나자 함께 엄마의 고향에 갔다. 사고 당일 점심을 같이 먹고 셋이 나란히 목욕탕을 간 게 마지막이 됐다. 민씨는 평소에도 제천 친정집을 자주 들렀다고 한다.

김양의 고교 친구들은 애써 눈물을 참고 있었다. 친구들은 “활발한 지성이는 수능을 앞두고는 정말 공부만 열심히 했다. 작가가 되고 싶다고 문예창작과랑 국어국문학과에 지원한 상태였는데… 합격 발표 바로 전날에 그렇게…”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친구 신모(18)양은 “수능 끝나고 드디어 쉴 수 있다며 엄마 따라 고향에 놀러 간다고 했어요. 학교에서 친구도 많았고 동아리 활동도 많이 했어요. 노래도 잘했고요. 이제 곧 대학에 간다고 그렇게 좋아했는데…. 같이 많이 놀지 못한 게 너무 후회돼요”라고 흐느꼈다. 김양의 고등학교 교사는 “학교에서 정말 모범적인 학생이었다”고 말했다.

장례식이 끝나고 먼저 외할머니 김씨의 관이 운구차로 옮겨졌다. 민씨 모녀는 바로 옆에 있는 차량에 실렸다. 사위이자 남편, 아버지인 김현철씨는 통곡했고 유족들은 “어머니” “할머니” “지성아”를 외쳤다. 3대를 실은 운구차는 제천시의 한 화장터로 향했다. 이날 복합상가 화재로 목숨을 잃은 29명 중 19명의 발인식이 제천시와 충주·광주시에서 열렸다.

거리에서 만난 제천 시민들의 표정도 침통했다. 시내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렸다. 제천시는 이번 사고가 마무리될 때까지 공식 행사를 자제하기로 했다. 이곳 토박이 주민인 이배(60)씨는 “황망하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다”고 흐느끼며 말했다. 다른 주민 천인상(56)씨는 “제천시에는 토박이 주민이 많이 산다. 이번에 사망한 사람들은 제천 시민들의 지인들이라고 보면 된다”며 “나도 이번에 지인 셋을 잃었다. 시 전체가 장례를 치르는 기분이다. 말 그대로 패닉 상태다”고 말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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