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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설위원이 간다

아직 유학 가니? 난 국제학교 간다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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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논설위원이 간다 - 남정호의 '세계화 2.0'

지난 21일 인천글로벌캠퍼스에서 열린 뉴욕주립대 졸업식에서 졸업생들이 모자를 던지며 환호하고 있다. 김춘식 기자

지난 21일 인천글로벌캠퍼스에서 열린 뉴욕주립대 졸업식에서 졸업생들이 모자를 던지며 환호하고 있다. 김춘식 기자

이젠 한풀 꺾였지만 19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는 조기유학 바람이 한동안 거셌다. 이에 따라 '기러기 아빠', 유학생 탈선, 외화 유출 등 여러 부작용이 불거지면서 이대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그래서 대안으로 나온 게 국내 국제학교다. 괜찮은 외국 교육기관을 유치해 해외로 나갈 학생들을 이들 학교에서 공부시키자는 거였다.
이렇게 시작된 국제학교는 전국에 모두 14개. 과연 이들은 제대로 뿌리내렸는가. 이 중에서 5개 외국 대학이 모인 송도 '인천글로벌캠퍼스(IGC)'를 지난 21일 찾아가 출범 5년째를 맞은 이곳의 실태를 살펴봤다.

지난 21일 인천글로벌캠퍼스에서 열린 미국 뉴욕주립대 졸업식에 참석한 졸업생들.  김춘식 기자

지난 21일 인천글로벌캠퍼스에서 열린 미국 뉴욕주립대 졸업식에 참석한 졸업생들. 김춘식 기자

"인생은 짧습니다. 여러분이 관심 있는 곳에 열정을 쏟으세요."
지난 21일 오후 인천글로벌캠퍼스 멀티컴플렉스 5층 소강당. 미국에서 날아온 이민 카오 뉴욕주립대(SUNY·스토니브룩) 부총장보는 붉은 가운을 입은 이 학교 졸업생들에게 삶의 지혜를 전해줬다. 이어 졸업장 수여와 기념 촬영이 끝나자 학생들은 "와" 하는 함성과 함께 졸업모를 힘껏 던졌다. 지난 2012년 3월 문을 연 뉴욕주립대의 세 번째 졸업식이다.

송도 경제자유구역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인천글로벌캠퍼스 전경.  [인천글로벌캠퍼스 운영재단 제공]

송도 경제자유구역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인천글로벌캠퍼스 전경. [인천글로벌캠퍼스 운영재단 제공]

뉴욕주립대가 자리 잡은 인천글로벌캠퍼스에는 지난 9월 새로 입주해 온 패션전문학교 FIT를 포함, 조지메이슨대·유타대·겐트대 등 모두 5개의 외국대학이 모여있다. 이들 5개 대학은 강의동을 뺀 대강당·스포츠센터·수영장·식당 등 각종 부대시설을 함께 쓴다. 자연히 다른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끼리도 동문 의식을 갖게 된다고 한다.
뉴욕주립대를 시작으로 속속 들어선 이들 다섯 학교의 재학생은 총 1300여 명. 140명이 정원인 FIT에서부터 1207명을 뽑으려는 뉴욕주립대에 이르기까지, 총 4397명이 정원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 숫자를 못 채웠다. 무엇보다 이곳 글로벌캠퍼스의 참모습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탓이다.
비록 정원이 부족하더라도 일정한 수준에 못 미치는 학생은 뽑지 않는다는 이들 학교의 공통된 원칙도 미달 사태에 한몫했다. 입학 후 학사 관리 역시 엄격해 특히 벨기에에서 온 겐트대의 경우 중도탈락률이 50%에 이른다.
이런 정원 미달로 이 캠퍼스의 자금 지원을 담당하는 인천시 의회는 무척 불만이라고 한다. "각 학교가 학생을 충분히 뽑지 않아 시 재정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IGC 운영재단은 입주 대학들의 엄격한 학사 관리가 졸업생들의 질을 높여 학교 명성을 높일 것으로 본다. 아무나 받지 않고 쉽게 졸업장을 주지 않는 정책이 장기적으로는 바람직하다는 얘기다.
IGC 운영재단은 이런 방향을 고수하면 결국은 학생이 늘 거로 기대하고 있다. 재단이 낙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졸업생들의 취업 성적이 예상보다 괜찮기 때문이다.

인천글로벌캠퍼스 내에 위치한 뉴욕주립대 전경.  [인천글로벌캠퍼스 운영재단 제공]

인천글로벌캠퍼스 내에 위치한 뉴욕주립대 전경. [인천글로벌캠퍼스 운영재단 제공]

 실제로 뉴욕주립대는 그간의 졸업생 100여명 가운데 상당수가 LG·효성·대한항공·KT·페이스북 등 대기업에 들어갔다. 서울대·연세대 등 국내 명문대 대학원에 진학한 경우도 있다. 성과가 꽤 좋다는 입소문이 난 덕인지 입학생 숫자도 첫해 30여명에서 올해에는 105명으로 늘었다.

지난 18일 송도 인천글로벌캠퍼스 내에서 열린 FIT 신입생들의 첫 패션쇼.   [FIT 제공]

지난 18일 송도 인천글로벌캠퍼스 내에서 열린 FIT 신입생들의 첫 패션쇼. [FIT 제공]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파슨스와 함께 미국 최고의 패션스쿨로 꼽히는 FIT가 들어오자 세계 각국에서 지원자들이 몰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학교 김대균 홍보팀장은 "올해 개교 첫해 경쟁률이 5~6 대 1에 달하면서 70명 정원이 다 찬 것은 물론이고 절반가량을 미국·일본·덴마크 등 6개국 출신이 채웠다"고 설명했다.

파슨스와 함께 미국 최고의 패션전문학교로 꼽히는 FIT 코리아 학생들이 지난 19일 인천글로벌캠퍼스에서 열린 패션쇼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했다. [FIT 제공]

파슨스와 함께 미국 최고의 패션전문학교로 꼽히는 FIT 코리아 학생들이 지난 19일 인천글로벌캠퍼스에서 열린 패션쇼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했다. [FIT 제공]

 이런 인기는 "FIT의 국제적 명성에다 한류 덕택"이라는 게 김 팀장의 해석이다. 인천에 자리 잡은 FIT에 가면 세계적인 패션은 물론, 한국의 튀는 문화까지 익힐 수 있을 거라 학생들이 기대한다는 것이다.

NLCS·BHA·KIS 등 제주도 내 국제학교들이 모여 있는 제주영어마을 전경.

NLCS·BHA·KIS 등 제주도 내 국제학교들이 모여 있는 제주영어마을 전경.

제주에 몰려있는 4개의 국제학교도 들여다봐야 할 케이스다. 초·중·고 과정을 가르치는 이들 학교 중 지난달 개교한 세인트존스베리아카데미(SJA)를 뺀 나머지 노스런던칼리지에이트스쿨(NLCS)·브랭섬홀아시아(BHA)·한국국제학교(KIS)는 2011년 한꺼번에 문을 열었다. 이들 세 학교는 2014년부터 졸업생을 냈는데 이들의 진학 성적도 예상보다 양호했다. 매년 프린스턴·예일·스탠퍼드·시카고·옥스퍼드·케임브리지·도쿄대 등 세계 유수의 대학에 4~5명 이상 보냈던 것이다. 이 덕에 명문대 진학을 중시하는 학부모 사이에서는 "제주국제학교가 비교적 성공적으로 뿌리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한다.

 2011년 제주에서 문을 연 영국계 국제학교 노스런던컬리지에이트스쿨(NLCS) 전경.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011년 제주에서 문을 연 영국계 국제학교 노스런던컬리지에이트스쿨(NLCS) 전경.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물론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국제학교에 자식을 보내는 학부모들은 이곳에 가면 외국 유학 못지않게 외국어와 국제적 감각까지 배울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하지만 학교 현실은 딴판이다. 무엇보다 몇몇 학교를 빼고는 대부분 한국 학생 비중이 80~90%에 달해 수업 시간 후에는 한국어를 쓰게 된다고 한다. 이런 상황으로 적잖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실망해 학교를 떠나는 일도 흔하다. 지금은 꽤 줄었지만, 한때는 학교에 따라 20%를 넘나들기도 했다.

제주에 자리잡은 국제학교 브랭섬홀아시아(BHA) 학생들이 수업에 열중하고 있다.  [BHA 제공]

제주에 자리잡은 국제학교 브랭섬홀아시아(BHA) 학생들이 수업에 열중하고 있다. [BHA 제공]

일부 학교에서는 외국인 선생들이 모자라 학생 대 교사 비율이 너무 높다고 한다. 심지어 "한 선생님이 물리·화학 등 여러 과학 과목을 가르치는 일도 일어난다"는 게 학부모 이모씨의 이야기다.
이뿐 아니다. 입시 위주의 국내 교육 환경에 질려 자녀들을 국제학교에 보낸 학부모가 많지만, 어느새 이곳에서도 사교육이 판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심지어 서울 강남의 유명 학원이 대거 제주로 몰려와 방과 후 사교육을 부채질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국내 국제학교가 주는 이점은 막대하다. 우선 어린 자식을 낯선 외국에 혼자 뚝 떨어뜨려 놓거나 부인을 딸려 보내 남편이 국내에서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된다. 제주에서 공부하는 자식을 챙기기 위해 부인이 따라가는 경우도 있지만, 주말이라도 손쉽게 왕래할 수 있어 심각한 가족 해체의 부작용은 피할 수 있다.
비용도 외국 유학과는 비할 수 없이 싸다. 외국 대학이나 기숙 중·고교에 자녀를 보내면 한 해에 7000만~1억원이 드는 게 보통이다. 반면 인천글로벌캠퍼스나 제주국제학교는 3000만~5000만 원이면 된다. 적은 돈은 아니지만 유학보다는 훨씬 적다.
국내 교육기관에 주는 자극도 무시 못한다. 임규택 IGC 운영재단 대학지원팀장은 "각종 규제와 틀에 갇힌 국내 대학들로서는 유연한 정책을 펴는 외국 대학과 경쟁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뒤처지지 않으려면 국내 대학도 변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터라 지금 국제학교의 성패를 단정하기는 이르다. 다만 FIT의 사례에서 보듯 분명한 건 외국 명문 대학을 유치해 올수록 성공 가능성이 커질 거라는 점이다. 그래야 학생 모집도 쉽고 재정적 어려움도 사라진다.
이제 해외로 유학 가는 때는 저물고 외국 학교가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시대가 열렸다. 국제학교 유치 실험이 성공하려면 학교 관계자는 물론 당국도 정원 등에 연연하지 말고 긴 안목으로 봐야 한다.

인천 송도에 5개 외국 대학 진출 #괜찮은 취업 성적으로 "안착" 평 #세계 정상급 패션스쿨 FIT 문 열어 #개교 첫해부터 경쟁률 5대1 훌쩍 #제주국제학교, 진학에 좋은 성과 #국제학교 성패, 명문 유치가 좌우

  남정호 논설위원 nam.jeong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