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월간중앙] 文정부 사정(司正)정국 주도하는 '검찰의 역설'··· 적폐 '끝장 수사'가 檢 개혁의 최대 적?

중앙일보

입력

12월 13일 새벽 1시가 가까운 늦은 시각인데도 서울중앙지검 청사는 형사부가 있는 4층에서부터 방위사업수사부가 있는 15층까지 건물 전체가 불을 환히 밝히고있었다. 새벽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검찰청사의 전경은 언제부터인가 익숙한 풍경이 됐다. 층별로 지난 정부에서 벌어진각종 적폐 사건 수사가 6개월째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장 연휴가 이어진 지난 10월 초 추석 기간에도 공안부와 특수부를 중심으로 검사 상당수가 휴일을 반납하고 수사 자료분석과 기소 관련 서류를 챙기느라 늦은 밤까지 청사에서 보냈다고 한다.

특수·공안·형사·첨단 등 검사 80여 명 동원, #검찰총장은 ‘민생 수사’ 전환 통해 자체 개혁 꾀하는 중… #6월 지방선거 앞두고 수사 마무리 시점 고민

4층에 위치한 형사1부는 박연차 회장의 태광실업에 대한기획 세무조사 의혹을, 6층 특수3부는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장들이 청와대 등에 상납한 특수활동비 사건을 수사 중이다. 공안부와 공공형사수사부가 있는 9층에서는 국정원 댓글 공작, 민간인에 대한 군 사이버사령부의 불법 심리전,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에 대한 불법 사찰, 박원순 서울시장과 채동욱 전 검찰총장에 대한 사찰과 뒷조사 등에 대한 수사로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10층에 있는 특수1부는 세월호 사건 당시 청와대 내부 보고서 조작사건을, 11층의 특수2부는 원세훈전 국정원장의 특활비 해외 반출과 도곡동 펜트하우스 공사비 유용 사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어 14~15층에 있는 외사부·첨단수사부·방위사업수사부는 공영방송 장악과 문화예술인을 상대로 한 블랙리스트 사건, BBK와 다스 관련 의혹사건, KAI 분식 회계 등 경영비리 사건을 각각 수사 중이다.

서울중앙지검 소속 검사 80여 명(공판 참여 검사까지 포함)이 동원돼 과거 정부에서 일어난 각종 의혹 사건을 수사중이다 보니 일반 시민은 물론이고 출입기자와 검찰 조직원들 사이에서도 “어느 부서에서 무슨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지 헷갈린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다. 검찰 최정예 부대가 과거사와의 ‘총력전’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새 정부 출범 7개월이 지났지만 각 정부 부처에서 진행하고 있는개혁 정책은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도 나온다. 검찰 수사에 온통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국회법사위 소속 한 여당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제1 개혁 대상인 검찰이 정국을 주도하고 있는 현 상황을 두고 주변에서는‘역설적’이라는 반응도 나온다”며 “공수처 관련 논의가 간혹나오지만 최근 검찰 개혁 얘기는 화젯거리에서 많이 멀어진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를 두고서도 정치권 일각에서는 ‘역설적’인 상황이라는 말이 돌았다.

2003년 노무현 정부당시 불법대선자금수사를 이끈 송광수검찰총장(가운데)과 안대희대검 중수부장(오른쪽).당시 검찰 수사가 큰 성과를거두자 중수부 폐지 등 검찰개혁을 주장하는 목소리는힘을 잃었다.

2003년 노무현 정부당시 불법대선자금수사를 이끈 송광수검찰총장(가운데)과 안대희대검 중수부장(오른쪽).당시 검찰 수사가 큰 성과를거두자 중수부 폐지 등 검찰개혁을 주장하는 목소리는힘을 잃었다.

2002년 12월 대선을 전후로 해서검찰 개혁에 대한 여론은 상당히 높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핵심 국정과제 중 하나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와 개혁을 내세웠다. 과도한 권한 집중을분산하기 위해 검·경 수사권 조정역시 주요 공약 중 하나였다. 대검중수부 해체 안과 공수처 정부 입법도 이때 나왔다. 검사 출신인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참여정부초기와 지금의 상황이 섬뜩할 정도로 닮았다”며 당시 상황과 현재를 비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정치권과의 유착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롭다고 평가 받아온 송광수 고검장을 검찰총장에 임명했다.송 총장은 정치권과 재계의 청탁을 거절해서 몇 차례 승진에서 물을 먹고 있던 안대희 검사를 검사장으로 승진시켜서 일약 대검 중수부장으로 기용했다.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인사불이익을 당하다가 일약 서울중앙지검장에 파격적으로 임명된 윤석열 검사장의 경우와 비슷하다.

”대선자금 수사 후 쏙 들어간 ‘중수부 폐지론’

문 대통령이 선택한 문무일 총장도 송 전 총장처럼 정치적성향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본격적인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서 검찰 개혁보다는 거악(巨惡)에 맞서는 검찰 수사의 필요성이 강조되는 측면도 비슷하다.수사팀에 대한 여론의 지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안대희 중수부장은 국민적인 지지를 받으며 팬클럽까지 생겨났고, 검찰청사로 ‘응원 도시락’이 전달되기도 했다. 윤석열 검사장도 국정농단 특검팀의 수사팀장 때부터 여론의 높은 지지를 받았고, 여전히 검찰의 적폐 수사를 긍정적 시각으로 보는쪽이 우세하다.

수사가 마무리된 후 어떤 양상이 전개될지 주목할 필요가있다. 2004년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통해 검찰이 ‘정경유착’이라는 거악 척결에 큰 성과를 내자 검찰 개혁의 상징이자신호탄으로 여겨졌던 대검 중수부 폐지 목소리는 설 자리를잃었다. 오히려 “일 잘하는 중수부를 폐지하는 식으로 무리한 검찰 개혁을 꼭 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대 목소리가힘을 얻었다. 노 전 대통령 취임 초기 ‘검사와의 대화’로 곱지않은 시선을 받던 검찰이 불과 1년 만에 기사회생한 것이다.훗날 노 전 대통령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만 보장해주면 자체 개혁을 잘 해낼 것으로 믿었다”면서 “재임 중 검찰 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얘기를 측근들에게 하기도 했다.

12월 5일 문무일검찰총장은기자간담회에서 ’적폐수사 연내 마무리“를언급하며 ’수사가 너무길어지면 사회발전에도움이 되지 않는다“고밝혔다. 문 총장의 이발언은 파장을 몰고 왔다.

12월 5일 문무일검찰총장은기자간담회에서 ’적폐수사 연내 마무리“를언급하며 ’수사가 너무길어지면 사회발전에도움이 되지 않는다“고밝혔다. 문 총장의 이발언은 파장을 몰고 왔다.

현재까지 상황만 보면 금태섭 의원의 지적처럼 참여정부전반부의 상황과 비슷한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적폐 수사외에도 여야 정치인들을 상대로 한 수사가 진행되면서 검찰주도 사정(司正)정국이 점점 더 확대되고 있다. 이에 대해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검찰 개혁은 물 건너가고 검찰공화국이 될 것 같다”며 “드러난 문제가 많아 집중적수사가 불가피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수사 장기화로 편파·보복 수사 등의 논란이 생길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상황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 검찰 권력 분산으로집약되는 현 정부의 검찰 개혁 구상과 모순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정치적 이슈에 이렇게 많은 검찰력이 동시에 투입된 전례가 없다”고 했다. 그는지난 5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임명된 직후 검찰을 권력의 칼로 쓰지 않겠다고 밝힌 점을 언급하며 “현 정부는 검찰을 도구로 사용할 생각이 없다고 했는데 최근 상황은 정반대다”라고 비판했다. 익명을 원한 경찰청 고위 간부는 “정권출범 초기만 해도 개혁 대상 1순위로 꼽혔던 검찰이 반년 만에 개혁의 일등공신이 돼가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 개혁의 수위와 성공 여부는여론의 향방과 대통령의 의지에 달려 있다. 이번에도 과거처럼 여론이돌아서서 검찰 편이 돼줄지는 미지수다. 또 문 대통령, 조 수석을 비롯한 여권의 검찰 개혁론자들은 참여정부 때 검찰 개혁의 실패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국회 법사위 소속 여당 핵심 인사의 얘기다.

“참여정부 때는 검찰이 진영 논리에 구애받지 않고 수사만 잘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순진한 생각이 있었다. 정치가 검찰 수사에 간섭하지 않으면 된다는 논리였다. 검찰 권력이 갖고 있는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단지 검찰의 정치적 중립 여부가 문제가 아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번 정부에서는 검찰이 갖고 있는 권한 자체를 분산시켜야 한다는 것이 최우선 목표다. 검찰이 적폐 수사를 잘마무리하더라도 검찰이 지금과 같은 막강한 수사 권한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안 된다는 공감대가 강하게 형성돼 있다.한마디로 참여정부 시즌2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그렇게 놔두지도 않겠다는 것이 청와대와 여권 전반의 기류다.”

이런 분위기를 모를 리 없는 문무일 총장의 속내는 복잡할수밖에 없다. 적폐 수사 정국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청와대와 여권의 검찰 개혁 압박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익명을 원한 대검 관계자는 “현재 진행하고 있는 수사를 잘 마무리하면서 동시에 설득력 있는 자체 개혁안을 내놓는다면 국민 여론도 검찰의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해주지않을까 기대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민생 분야 수사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가 언급한 ‘민생 수사’는 향후 검찰의 자체개혁 방향의 핵심 사안이다.

문재인 정부의 제1 개혁 대상인 검찰이 정국을 주도하고 있는 현 상황을 두고 “역설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참여정부 당시에도 대선자금 수사 이후 검찰 개혁의 동력은 사라지고 말았다.

文 총장 “수사 길어지면 사회 발전에 도움 안 돼”

문 총장은 12월 5일 기자간담회에서 “각 부처에서 넘어온 적폐 청산 관련 수사에 집중되는 상황은 연내에 마치는 것으로계획하고 있다”면서 “수사 기한을 정하기는 어렵지만 올해안에 주요 수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문 총장은 “헌정이 중단될 정도의 사태(박근혜전 대통령 탄핵)를 정리하는 과정에 (검찰이) 짐을 지지 않을수 없어 여기까지 왔는데, (적폐 청산 수사를) 너무 오래 지속하는 것도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문 총장의 이날 언급은 갑자기 툭 튀어나온 얘기가 아니라는 것이 검찰 안팎의 전언이다. 검찰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그동안 문 총장은 전·현직 검찰 고위 인사들로부터 ‘적폐 수사’와 관련한 다양한 얘기를 청취해왔다고 한다. 전직 검사장 출신 A변호사는 “국정원 댓글 수사 과정에서 현직 검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고, 구속영장 기각을 둘러싸고 수사팀의 공개적인 반발이 이어지는 일이 잦아지자 검찰 안팎에서 문 총장에게 여러 루트를통해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A변호사의 얘기를 더 들어보자.

“조직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가면서 외부의 개혁 압박까지고려해야 할 총장 입장에서는 검찰 수사가 거칠게 비치는 것에 부담을 느꼈다고 한다. 특히 지금처럼 검찰의 주요 업무가 정부 내 각 기관에서 내려오는 수사 의뢰에 따라 이뤄지는것으로 보이는 상황을 될 수 있는 한 빨리 마무리해야 한다는 것이 문 총장의 입장이다. 새해부터는 정치권발(發) 사건보다는 민생 현안 분야 수사로 전체적인 분위기를 전환하는것이 총장이 그리는 자체 개혁 구상과 일치하는 방향이다.”

이와 관련해 문 총장은 최근 “내년에는 국민의 억울함을풀어주는 민생사건 수사에 더욱 집중하겠다”며 “고소사건처리 절차를 개선하고 분야별 중점 검찰청을 건설과 환경 등분야로 확대 지정해 형사부 수사 역량을 강화할 것”이라고언급한 바 있다. 문 총장은 취임 초기부터 이를 실행에 옮겼다. 문 총장은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실 소속 수사관 40여 명을 본래 소속 검찰청으로 돌려보내는 등 조직 개편작업을 단행했다. 그동안 이들의 주업무는 정·관·재계 고위 인사 등의범죄 첩보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현 정부의 검찰 개혁 방안중 하나인 공수처 신설 계획에 따른 업무 중복과 마찰을 최소화하려는 사전 정지작업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나왔다.

또 민생범죄에 주력하기 위해 형사부 강화 작업도 하고 있다. 지청 단위의 특수전담 부서를 폐지하고 형사부 업무를‘브랜드화’하는 것이 골자다. 형사1부 등 숫자로 된 부서명은 검찰 편의에 따른 것으로 국민 입장에서 이해하기 쉽도록인권·특허범죄 전담부나 기업·금융범죄 전담부, 부동산·강력범죄 전담부 등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형사사법 서비스를 향상하기 위한 조치”라며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범죄에 수사력을 집중해 국민 권익을 강화하는 쪽으로 조직의체질을 바꾸는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한 바 있다. 고등검찰청의 항고사건에 대해 직접 수사를 강화하는 조치도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다. 국민이 가장 불만을 느끼는 사안 중 하나가 일선 검찰청의 불기소 처분에 대한 항고사건 처리다. 고소·고발인 등은 일선 검사의수사 결과에 불복하면 고검에 ‘항고’를 할 수 있는데, 그간검찰은 형식적 검토 끝에 기각 처리하는 경우가 많아 유명무실했다는 비난이 끊이지 않았다. 앞으로는 이런 항고사건에대해 고검 검사들이 직접 재수사를 해 다시 들여다볼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최초 사건을 맡았던 검사의 부실 수사가 드러날 경우 인사 등에 불이익을 줄 계획도 검토 중이다.

이 같은 자체 개혁을 통해 조직의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복안도 깔려 있다. 국민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민생 수사에 집중하면서 검찰에 부정적인 여론의 물줄기를 돌리겠다는 것이다. 대검 관계자의 얘기다. “검찰 개혁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문 총장 입장에서는 적폐 수사가 너무 길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한 듯하다. 기자간담회에서 수사 기간을 굳이 언급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또 2018년6월 치러질 지방선거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과거 정부를 타깃으로 한 수사가 봄까지 계속될 경우 선거에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부담감을 문 총장이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

문 총장의 ‘적폐 수사 연내 마무리’ 발언에 여권은 반발하는 모양새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적폐 청산이 미래지향적이지 못하다는 프레임을 짜고 피로감을 거론하는것은 저쪽(구 여권)의 구도 아니냐?”면서 “적폐 청산이란 게6개월 만에 정리가 되겠느냐. 5년 내내 가더라도 적폐 청산을 해야 한다. 그게 미래를 향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같은당 박범계 의원은 페이스북에 “존경하는 문무일 검찰총장님, 글쎄요. 며칠 남지 않은 올해 내로 주요 수사 마무리가 가능하겠나요? 오히려 졸속이 되어 무죄 날까 봐 우려스럽습니다. 그리고 공수처는요? 언급이 없으셔서요”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청와대 측도 “원론적인 수준의 언급”이라면서도 “아직 관련자 소환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올해 안에 수사를 마무리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언급을내놓아 문 총장과 미묘한 입장 차이를 보였다.

문 총장 발언이 불편한 청와대와 여권

‘연내 수사 마무리’ 발언이 파장을 일으키자 문 총장 측은 확대 해석을 경계하며 해명에 나섰다. 대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문 총장의 발언은 분명하게 수사 기한을 정하기는 어렵지만 올해 안에 주요 수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이었다면서 “그런데 언론 보도에서는 ‘주요 수사’가 빠지고 ‘최선을 다하겠다’도 빠지면서 ‘올해 안에 마무리한다’만 남았다”고 말했다. 당혹스러운 입장에 놓인 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다. 일단 수사팀에서도 겉으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분위기다. 수사팀 한 관계자는 “저희 입장에서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게 총장님 말씀의 뜻과 다르지 않을 거라 본다. 총장께서도 열심히 하라는취지라고 따로 전해오셨다”고 말했다. 하지만 처음 문 총장의 발언이 언론 보도로 전해졌을 당시에는 수사팀 일각에서는 우려하는 분위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의 얘기다.

“하명 수사니 정권 코드 수사라는 비판을 정치권 일각으로부터 받고 있는 상황에서 ‘연내 수사 마무리’는 솔직히 수사팀에 부담스러운 언급이었다. ‘주요 수사’라는 기준이 무엇인지도 불분명하다. 기한을 정해놓고 수사를 마무리하는것이 오히려 정치적 고려나 정무적 판단이 작용한 때문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총장께서 검찰 안팎의의견을 다양하게 듣고 고심 끝에 내놓은 말씀이란 것을 감안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 언급하시는 것과 언론을 상대로 공식화하는 것은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강도가 다를 수 있다.”

부장검사 출신으로 윤 지검장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B변호사는 “(검찰총장의 발언 내용 중)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대목이 마음에 걸린다”는 반응을 조심스럽게 내놨다. B변호사의 얘기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정치적 고려나 정무적 판단이 수사에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10월 23일 국회 법사위의 서울고등검찰청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한 윤 지검장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정치적 고려나 정무적 판단이 수사에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10월 23일 국회 법사위의 서울고등검찰청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한 윤 지검장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윤석열 지검장은 정치적 고려나 정무적 판단이 수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싫어하는 스타일이다. 또 윤 지검장은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당시 ‘나는 조직에 충성할 뿐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 이번 수사도 진영 논리에얽매이지 않고 거악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고알고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검찰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측면에서 적폐 수사가 우리사회의 민주성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수사피로감’ 같은 얘기가 나오는 것도 상당히 꺼린다고 들었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정치적 고려 등이 수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싫어하는 스타일이다. 진영 논리보다는 거악(巨惡)을 뿌리 뽑아야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수사팀 관계자 “수사 피로감 제기에 동의 못해”

B변호사의 언급처럼 ‘수사 피로감’을 제기하는 것에 대해 수사팀 내에서는 “동의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팀 한 관계자는 “지난해 탄핵 국면에서부터 따지자면 1년이 지났지만, 윤 지검장 취임 후 각 부서의부장검사들 인사발령(8월 중순)이 나 수사가 본궤도에 오른 지는 3~4개월밖에 안 됐다”며 “안대희 중수부장이 대선자금 수사를 하던 참여정부 때는 관련 수사가 1년 이상 진행됐지만 피로도 얘기보다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확실히 끊어달라는 요구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수사팀이 여론에 따라 일희일비하고 신경 쓰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후퇴시킨 불법적 관행을 이번 기회에 검찰 수사로 확실히 뿌리 뽑아야 한다는 것이 국민 다수의 여론이고 명령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들어 검찰 안팎에서는 문 총장과 윤 지검장 사이에갈등이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하지만 이는 다소부풀려진 것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조직 전체를 관리해야하는 입장과 철저한 수사를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 다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오는 현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검찰의 한 고검장급 간부는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정례 면담 외에도 두 사람이 별도로 만나기도 하고 수시로 통화를 하고있는 것으로 안다. 두 사람 사이가 나쁘다는 것은 호사가들의 얘기일 뿐”이라며 “윤 지검장이 수사 진행 과정과 계획 등을 충실하게 총장에게 보고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검찰 안팎으로 복잡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한 경찰개혁위원회의 권고안이 발표됐다. 지난 12월 7일 경찰개혁위는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방안’을 발표했다. 권고안에 따르면 검찰의 수사지휘권과 직접수사권을 폐지하도록 했다. 경찰이 송치한 사건에 대한 기소권과 보완 수사 요청권만 부여해 경찰수사에 대한 사후통제권으로 검찰의 역할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경찰관의 범죄에 한해 예외적으로 검찰이 수사권을 행사할 수있도록 했다. 또 법 개정을 통해 그동안 검찰이 독점적으로행사해온 영장청구권도 바꿔야 한다고 제시했다. 현재 헌법제12조 3항 ‘체포, 구속, 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와 제16조 ‘주거에 대한 압수나 수색을 할 때에는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에서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라는 문구를 삭제해야한다는 것이다.

경찰개혁위의 이 같은 권고안은 검찰 입장에서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핵심 사안들이다. 공수처 설치는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수사권과 영장청구권까지 경찰에 넘기는 것은 검찰에 대한 ‘사망선고’라는 것이 검찰 측의 한결같은 입장이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경찰 측 입장을 최대한 반영한 권고안 내용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것으로 크게 신경 쓰지않는다”며 “새해 초 수사권 조정에 대한 검찰 측 입장을 담은구체안이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취재 과정에서 수사권조정과 관련해 적폐 사건 수사팀의 입장이 궁금했다. 수사팀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적폐)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고 국민이 납득할 만한 결과를 내놓는 것이 (검·경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검찰의 입장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측면에서도 도움이 될 수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과정에서 현직 검사들에 대해 영장을 청구해 구속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말들이 나왔지만 내부자에 대해 더 엄정한 잣대를 대지 못하고 피한다면 이후 진행될 자체 검찰 개혁도 명분이 약해질수밖에 없다.”

고성표 월간중앙 기자(muzes@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