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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때 日 원폭개발 'F연구' 노벨상 학자 일기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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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6일 미 공군이 일본 히로시마에 첫 원자폭탄을 투하한 뒤 촬영한 사진. [AFP=연합뉴스]

1945년 8월 6일 미 공군이 일본 히로시마에 첫 원자폭탄을 투하한 뒤 촬영한 사진. [AFP=연합뉴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극비리에 추진하던 원자폭탄 연구 개발 프로젝트에 대한 새로운 증언 자료가 공개됐다.
일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인 이론물리학자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 박사가 1945년에 쓴 일기에서 이른바 ‘F연구’로 불리던 원폭 연구 관련 기록이 나왔다고 아사히신문이 22일 보도했다.

日 최초 노벨상 받은 물리학자 유카타 박사 #"F연구 협의회 나갔다"…해군과 수차례 접촉 #유카와 박사가 직접 핵분열 연쇄반응 설명 #육군도 이화학연구소 통해 핵무기 개발 시도 #결국 우라늄 못 구해 패망 직전 사실상 포기

F연구는 1943년 5월 일본 해군이 당시 교토제국대학에 의뢰한 비밀 프로젝트다. F는 ‘핵분열(fission)’을 뜻한다. 해군과 별도로 육군도 도쿄의 이화학연구소와 함께 ‘이호(二号)연구’라는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9년 3월 11일, 당시 미국 콜럼비아대 방문교수였던 유카와 히데키 박사(가운데)가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뒤 동료 학자인 조지 피그램 박사(오른쪽)와 함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콜럼비아대 총장(왼쪽)을 뉴욕에서 만나 축하를 받고 있다. [중앙포토]

1949년 3월 11일, 당시 미국 콜럼비아대 방문교수였던 유카와 히데키 박사(가운데)가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뒤 동료 학자인 조지 피그램 박사(오른쪽)와 함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콜럼비아대 총장(왼쪽)을 뉴욕에서 만나 축하를 받고 있다. [중앙포토]

교토대 교수였던 유카와 박사는 같은 대학의 아라카츠 분사쿠(荒勝文策) 교수가 주도하던 F연구의 시작 단계부터 이론적 자문을 했다고 한다. 그는 1930년대에 이미 원자핵 내부의 중간자(양성자와 중성자 간 상호작용의 매개물)를 예측했던 세계적인 이론물리학 권위자였다. 중간자 연구로 1949년 노벨 물리학상도 받았다.

1944년 10월 4일 교토대 연구진과 해군은 오사카의 해군장교클럽인 스이코샤(水交社)에서 첫 모임을 가졌다. 이날 연구진은 원폭을 만들기 위해 필수적인 우라늄 농축계획을 보고했다. 유카타 박사도 군 관계자들에게 핵분열의 연쇄반응에 대해 설명했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유카와 박사는 자신의 일기에서 “F연구 협의회에 참석했다”고 4차례 썼다. 구체적인 시간·장소도 명기했다. 모임은 1945년 2~7월 사이에 집중돼 있다. 공교롭게도 일본이 미국과의 태평양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던 시기와 겹친다.

일기에 따르면 그해 7월 21일 오쓰시의 비와호호텔에서 해군과 교토대 연구진이 긴급회의도 가졌다. 미국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 ‘리틀보이’를 투하하기 불과 보름 전의 일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날 양측은 사실상 원폭 개발을 포기하는 쪽으로 결론을 냈다. 원료인 우라늄 획득이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1945년 7월 16일 미 육군이 뉴멕시코주에서 진행된 첫 원자폭탄 실험을 촬영한 영상. [AP=연합뉴스]

1945년 7월 16일 미 육군이 뉴멕시코주에서 진행된 첫 원자폭탄 실험을 촬영한 영상. [AP=연합뉴스]

전쟁 당시 일본은 우라늄을 구하기 위해 온갖 비밀작전을 펼친 것으로도 전해진다. 마찬가지로 원폭을 개발 중이던 독일로부터 우라늄을 들여오기 위해 U-보트 잠수함 수송작전까지 펼쳤지만 미국의 봉쇄로 무산됐다.

일설에 따르면 육군의 의뢰를 받은 이화학연구소가 전쟁 막바지 미군의 공습을 피해 함경남도 흥남으로 옮겨 연구를 진행했다. 패전 때까지 원폭 개발을 손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카와 박사는 일기에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된 이후의 심경도 간접적으로 밝혔다. 그는 피폭 이튿날 일기에 “신문 등으로부터 히로시마에 떨어진 신형 폭탄인 원자폭탄에 대한 해설을 부탁받았지만 거절했다”고 적었다. 그가 전후 반핵 평화주의 운동을 펼친 계기가 됐다고 아사히는 평가했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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