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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공짜주식 진경준 뇌물 인정 안돼”…사건 파기 환송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진경준(50ㆍ사법연수원 21기) 전 검사장이 넥슨 측으로부터 받은 금품을 뇌물로 보기 어렵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일부 혐의의 공소시효가 지난 데다 공무원의 직무와 관련이 없거나 대가성을 인정하기 어려워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취지다.

서울고법으로 사건 파기환송 # "기대감만으론 뇌물죄 안돼" # 주식 매수시기 공소시효도 지나 # 김정주 대표도 사건 돌려보내

대법원 1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22일 거액의 뇌물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진 전 검사장에게 징역 7년과 벌금 6억원, 추징금 5억219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진 전 검사장에 대한 뇌물수수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면서, 기존 뇌물수수죄 법리(형법 제129조)를 이유로 들었다. 추상적이고 막연한 기대감만으로는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게 요지다. 앞서 2심 재판부는 김 대표가 도움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이른바 ‘보험성 뇌물’로 진 전 검사장에게 경제적 이익을 제공한 것으로 봤다.

진경준(왼쪽) 전 검사장과 김정주 NXC 대표. [연합뉴스]

진경준(왼쪽) 전 검사장과 김정주 NXC 대표. [연합뉴스]

당초 김 대표는 2005년 6월 진 전 검사장에게 넥슨의 상장 주식을 매입할 대금 4억2500만 원을 무이자로 빌려줬다. 이후 진 전 검사장의 가족 명의 계좌로 주식값을 다시 송금해 사실상 무상으로 주식을 제공한 것으로 조사됐다. 진 전 검사장은 2006년 당시 가격으로 8억5370여만원에 달하는 넥슨재팬 주식 8537주를 김 대표로부터 무상 취득하고, 3000만원 상당의 제네시스 차량과 가족 여행경비를 제공받는 등 금품을 수수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으로 지난해 7월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 역사상 현직 검사장 신분으로 구속기소 된 것은 진 전 검사장이 처음이었다.

대법원은 우선 진 전 검사장이 지난 2005년 김 회장으로부터 주식 매수자금을 수수한 행위에 대해서는 형사소송법상 공소시효 10년이 지난 2016년에야 재판에 넘겨졌으므로 면소(免訴) 판결을 해야 한다고 봤다. 면소란 소송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재판에 넘기는 것이 부적당하다는 판단이다.
1, 2심에서는 같은 범죄 의도를 갖고 다수의 범죄를 저지른 것이어서 이를 하나의 범죄로 보는 ‘포괄일죄’로 판단했다. 따라서 공소시효를 넘기지 않은 것으로 간주, 유무죄를 판단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다르게 봤다.

이어 10년의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은 △2006년 이후 넥슨 주식 및 넥슨재팬 주식 취득 혐의 △제네시스 차량 제공 △가족 여행경비 지원 혐의에 대해서는 "공무원의 직무와 관련이 없거나 대가성을 인정하기 어려워 뇌물수수와 알선수뢰죄 모두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당시 진 전 검사장이나 김 대표가 직무와 관련된 사건이 장래에 발생할 개연성이 있었다고 볼만한 사정이 없다고 판단했다. 또 알선 뇌물수수죄(형법 제132조)에 대해서도 진 전 검사장이 김 대표나 넥슨이 수사를 받은 사건들을 직접 처리할 권한이 있었다거나 담당 검사에게 청탁하는 등 사건처리에 개입하지도 않았다고 봤다.

대법원은 '장래에 행사할 직무의 내용이 수수한 이익과 관련된 것인지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막연하고 추상적이거나, 장차 공무원이 직무권한을 행사할지 여부 자체를 알 수 없는 경우에는 직무관련성과 대가성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기존 법리를 판단의 이유로 삼았다.

다만 진 전 검사장이 대한항공 측에 처남의 청소용역업체로 일감을 몰아주게 한 혐의에 대해서는 원심과 같은 판단을 유지했다. 이에 따라 진 전 검사장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항소심에서 선고받은 김 대표도 다시 재판을 받게 됐다.

앞서 1심은 뇌물죄가 성립하기 위한 핵심 조건인 직무 관련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이 부분을 무죄로 판단했다. 둘을 오랜 친구 사이인 ‘지음(知音)’ 관계로 비유하며 김 대표가 진 전 검사장에게 선물로 주식 등을 준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김 대표가 직접 관련된 사건은 물론 다른 검사가 사건을 담당하는 경우라도 도움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진 전 검사장에게 경제적 이익을 제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다른 판단을 했다. 김 대표가 수사를 받고 있거나 불법적인 사업을 하지는 않지만, 나중에라도 고위 검사의 영향력을 기대하고 보험 성격의 돈(뇌물)을 건넸다고 본 것이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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