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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싸게 팔아요”…사기꾼 기승에 ‘자력 구제’ 소비자들

중앙일보

입력

직장인 김모(31)씨는 지난 11일 한 인터넷 블로그에서 “고가의 최신형 스마트폰을 싸게 판다”는 홍보 글을 봤다. 평소에 사고 싶었던 고가의 최신 모델 제품을 60만원대에 판다는 데 시선이 꽂혔다.

구매 문의를 하자 판매자는 여러 명이 동시에 참여하는 메신저(카카오톡 단체방)로 그를 초대했다. “판매자님, 스마트폰 잘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글들이 여럿 올라왔다. 판매자는 명함·신분증·사업자등록증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며 김씨를 안심시켰다. “정상적인 휴대폰 판매점이다. 입금하면 바로 택배로 발송한다”는 설명도 했다. 판매점의 주소는 울산시로 돼 있었다.

김씨는 68만5000원을 입금한 뒤 택배 운송장 번호를 받았다. 하지만 며칠을 기다려도 스마트폰은 오지 않았다. 판매자와 연락이 끊기고 나서야 김씨는 속았다는 걸 알게 됐다.

"최신 스마트폰을 싸게 판다"며 구매자들을 유혹하는 한 업체의 인터넷 블로그. [사진 다음 블로그 캡처]

"최신 스마트폰을 싸게 판다"며 구매자들을 유혹하는 한 업체의 인터넷 블로그. [사진 다음 블로그 캡처]

최근 고가의 물품을 판다며 신분증·명함·사업자등록증을 보내 정상적인 판매 업체로 가장한 뒤 돈을 받고 잠적하는 사기가 잇따르고 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주로 고가의 최신 스마트폰이 미끼로 사용된다. 스마트폰을 매장보다 싸게 파는 온라인 업체들이 생기면서 이를 찾는 소비자들이 많아진 점을 이용한 사기 행각이다. “신분증과 사업자등록증까지 보여주길래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는 게 피해자들의 설명이다.

피해자들 ‘자력 구제 움직임’ 등장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방식이다 보니 피해는 전국 각지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들은 저마다 해당 지역의 경찰서에 피해 사실을 신고했지만 “경찰의 대응이 너무 느려 동일한 계좌번호와 휴대폰 번호를 사용하는 사기가 반복돼 피해가 커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 피해자는 “사기를 당한 번호로 계속 전화를 했더니 ‘경찰은 나 못 잡는다. 자꾸 귀찮게 하면 배송 주소로 찍힌 너희 집 찾아갈 테니 조용히 있어라’며 되려 협박을 했다”고 말했다.

피해 사실을 증명하고 경찰 수사를 돕기 위해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피해자들. [사진 피해자 모임]

피해 사실을 증명하고 경찰 수사를 돕기 위해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피해자들. [사진 피해자 모임]

일부 피해자들은 온라인상에 피해자 모임(네이버 밴드)을 만들었다. 지난달 초에 만들어진 이 모임에는 21일 현재 85명이 가입했다. 이들은 사기에 이용된 계좌번호와 휴대폰 번호, 판매자 이름별로 피해 규모를 집계하고 있다. 경찰에 제출해 수사를 돕기 위해서다. 한 피해자는 “우리가 자체 집계한 피해 규모가 1억원을 넘었다. 사기 방식이 매우 유사하고 시기도 겹쳐 같은 일당이 벌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피해자들은 자신이 당한 사기에 이용된 계좌번호를 인터넷에 검색해 새로 올라오는 판매 글을 찾아다니며 “이 판매자 사기꾼이에요. 입금하지 마세요”라는 댓글 남기고 있다.

사기에 이용된 계좌번호와 휴대폰번호로 피해자들이 자체 집계한 피해 장부의 일부. [사진 피해자 모임]

사기에 이용된 계좌번호와 휴대폰번호로 피해자들이 자체 집계한 피해 장부의 일부. [사진 피해자 모임]

마음 먹으면 만드는 ‘대포폰’, 하루 20만원에 거래되는 ‘대포 통장’

이런 범죄에 이용되는 '대포폰'은 인터넷 상에서 공공연하게 거래되고 있다. 한 업체는 “원하는 성별과 나이의 명의자를 선택할 수도 있다”고 홍보한다. 보통 구매자가 입금을 하면 택배로 누구의 명의인지 알 수 없는 유심침을 보내주는 방식으로 거래가 진행된다.

타인 명의의 휴대폰 유심칩을 판매한다는 한 업체의 홈페이지. [사진 홈페이지 캡처]

타인 명의의 휴대폰 유심칩을 판매한다는 한 업체의 홈페이지. [사진 홈페이지 캡처]

온라인 세계에서는 통장을 돈을 주고 빌린다는 업자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한 판매자는 “일일 임대료 20만원을 당일지급한다. 안전하게 사용한다”는 설명글을 붙여놓기도 했다.

'하루 20만원에 타인 명의의 통장을 빌린다'는 글. [사진 트위터 캡처]

'하루 20만원에 타인 명의의 통장을 빌린다'는 글. [사진 트위터 캡처]

송우영 기자 song.woo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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