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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몸 가누기조차 힘든 엄동설한 소백의 칼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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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동삼거리에서 바라본 소백산 능선. 오른쪽으로 비로봉이 보인다. [사진 하만윤]

천동삼거리에서 바라본 소백산 능선. 오른쪽으로 비로봉이 보인다. [사진 하만윤]

겨울 소백산은 그야말로 엄동설한이다.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칼바람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일단 한 번 올라보시라. 초속 15m를 웃도는 바람이 예사로 부는 비로봉 능선에서는 몸을 가누기가 힘이 들 정도. 내리는 눈조차 채 쌓이지 못하고 제각각 흩어져 버린다.

하만윤의 산 100배 즐기기(12) #천동계곡-비로봉-어의곡 12km 7시간 코스 #정상의 혹독한 바람에 단체사진 못찍고 하산

소백산 정상은 또 어떤가. 쌓인 눈은 흡사 바람의 결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사막과 같은 풍경이다. 그 속에서 눈과 바람이 빚어내는 한겨울의 꽃, 상고대를 원없이 볼 수 있다. 그 풍경은 차라리 쓸쓸하고도 찬란하다. 몸은 고단할지라도 겨울 소백에서만 느낄 수 있는 선물일 것이다.

천동매표소에서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한 컷. 훗날 이날의 추억을 소환해줄 장치다. [사진 하만윤]

천동매표소에서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한 컷. 훗날 이날의 추억을 소환해줄 장치다. [사진 하만윤]

낙목한풍 속 상고대를 찾아서 

소백산은 언제 어느 때 올라도 좋다. 5월 말에 철쭉 만개한 연화봉 일대를 접해도 좋고, 늦가을 노란 은행나무 단풍이 아름다운 부석사 초입을 거닐어도 좋다. 필자는 12월 초 동호회 회원들과 소백산을 찾았다. 낙목한풍 속에 피어난 상고대의 절경을 보기 위함이다.

죽령에서 구인사까지 종주 코스를 제외하면 소백산은 어디든 당일 코스로 어렵지 않다. 옛 선비들이 한양을 향해 임금과 나라의 태평을 기원했다는 국망봉, 소백산의 주봉인 비로봉, 천문대가 있는 연화봉 등 세 개의 봉우리를 주축으로 능선과 계곡들이 유려하게 펼친다.

비로봉에서 바라본 연화봉. 잔잔히 흘러오는 물결 같은 산세가 아름답다. [사진 하만윤]

비로봉에서 바라본 연화봉. 잔잔히 흘러오는 물결 같은 산세가 아름답다. [사진 하만윤]

필자는 다리안관광지에서 천동계곡을 지나 비로봉에 오른 후 어의곡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했다. 거리가 길긴 해도 경사가 심하지 않아 초보 등산인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는 구간이다. 다만 천동삼거리까지 오르는 동안 가슴을 틀 만한 시원한 조망이 없다는 것이 아쉽다.

천동매표소를 지나면, 옆에 천동계곡을 두고 나란히 산을 오를 수 있다. [사진 하만윤]

천동매표소를 지나면, 옆에 천동계곡을 두고 나란히 산을 오를 수 있다. [사진 하만윤]

그렇다고 실망은 마시라. 초입부터 등산로 옆 계곡의 물소리가 귀를 맑게 하고 천동쉼터까지 오르는 길 양옆에는 훤칠한 잣나무들이 호위병처럼 우리를 반긴다. 그 사이를 지나는 기분이 썩 괜찮다.

천동쉼터까지 오르는 길 내내 하늘 높이 웃자란 잣나무를 만끽할 수 있다. [사진 하만윤]

천동쉼터까지 오르는 길 내내 하늘 높이 웃자란 잣나무를 만끽할 수 있다. [사진 하만윤]

서울에서 새벽 일찍 나섰고, 고속도로휴게소에서 주전부리한 것이 전부인지라 다들 허기가 졌다. 천동삼거리를 지나 비로봉 능선에 올라서면 일행이 전부 모여 식사할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을 듯해 천동쉼터에서 조금은 이른 점심을 먹기로 한다.

겨울 산에서의 식사는 그야말로 추위와 싸움이다. 조금만 지체해도 한기가 들기 십상이다. 옹기종기 붙어 서로가 서로의 바람막이가 돼 각자 준비해온 밥이며 찬거리에 몸을 덥힐 수 있도록 막걸리 한 잔을 더 했다. 그것으로 족했다.

천동쉼터에서 먹은 이른 점심. 겨울 산에서의 식사는 추위와의 싸움이다. [사진 하만윤]

천동쉼터에서 먹은 이른 점심. 겨울 산에서의 식사는 추위와의 싸움이다. [사진 하만윤]

그동안 잘 닦인 길을 올랐다면 천동쉼터부터는 바위투성이 길을 올라야 한다. 한겨울 눈 속에서도 여전히 푸른 구상나무 터널을 걸으며 그 사이로 비치는 파란 하늘을 보는 것은 흡사 비현실적이다. 그 기분을 만끽하며 걷다 보면 어느새 주능선으로 올라선다.

구상나무 터널을 지나면 주목나무 군락지와 천동삼거리에 도달한다. [사진 하만윤]

구상나무 터널을 지나면 주목나무 군락지와 천동삼거리에 도달한다. [사진 하만윤]

비틀림이 멋스런 주목나무

정상 부근에 다가서면 주목나무 군락이 펼친다. 속살이 단단해 잘 썩지 않아 ‘살아 백 년 죽어 천 년’이라는 주목나무. 소백산에서는 강한 바람과 눈 때문에 주목나무 대부분이 줄기가 비틀리고 휘어졌다. 흰 눈 위에 제각각 비틀린 그 또한 멋스럽다.

소백산 정상에 오랜 수령의 주목나무 군락이 있다. [사진 하만윤]

소백산 정상에 오랜 수령의 주목나무 군락이 있다. [사진 하만윤]

천동삼거리에 다다르면 왼쪽으로는 비로봉과 국망봉이 펼쳐지고, 오른쪽으로는 연화봉이 바라보인다. 여기서부터는 본격적으로 바람에 맞서 걸어야 한다. 필자가 올랐을 때는 내린 눈이 많지 않아 상고대가 썩 아름답지는 않았다. 그런데 역시 바람은 소백이었다. 거리낄 게 아무 것도 없는 정상에서의 바람은 그야말로 예리한 칼날이 되어 두툼한 등산복을 비집고 들어왔다.

비로봉에서 어의곡으로 향하는 하산길. 현명한 풀들은 바람을 따라 누워있다. [사진 하만윤]

비로봉에서 어의곡으로 향하는 하산길. 현명한 풀들은 바람을 따라 누워있다. [사진 하만윤]

비로봉 정상석에서 일행끼리 서로 인증사진을 찍고 찍어주는 잠시 잠깐 손끝이 떨어져 나갈 듯 에인다. 추위에 민감한 스마트폰은 작동하기를 포기하고 버벅거리기 일쑤다.

겨울산행에서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은 방풍과 방한이다. 두꺼운 옷 하나가 아니라 얇은 옷 여러 벌로 체온을 유지하며 산행해야 한다. 땀이 나지 않도록 몸을 약간 서늘하게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땀이 식으면 이내 한기가 들어 순식간에 저체온증이나 동상 등 부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눈길을 안전하게 걷는 데 필요한 아이젠. 겨울산행에는 몇몇 장비가 필요하고 방한에 특별히 신경 써야 부상을 막는다. [사진 하만윤]

눈길을 안전하게 걷는 데 필요한 아이젠. 겨울산행에는 몇몇 장비가 필요하고 방한에 특별히 신경 써야 부상을 막는다. [사진 하만윤]

정상석에서는 단체 사진을 남기지 못하고 삼삼오오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혹독한 바람 탓에 하산 길을 서둘렀다. 십여 분 내려가면 어의곡으로 향하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부터 4km 남짓 하산길이다. 능선에서 어의곡을 향해 얼마간 걸으면 서슬 퍼런 소백의 칼바람이 이내 잦아든다.

천동매표소-천동삼거리-비로봉-어의곡. 총거리 약 12.53km, 시간 약 6시간 50분. [사진 하만윤]

천동매표소-천동삼거리-비로봉-어의곡. 총거리 약 12.53km, 시간 약 6시간 50분. [사진 하만윤]

하만윤 7080산처럼 산행대장 roadinmt@gmail.com

우리 집 주변 요양병원, 어디가 더 좋은지 비교해보고 싶다면? (http:www.joongang.co.kr/Digitalspecial/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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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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