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00% 서술 시험 보는 중학교의 실험 … “찍기 신공 안 통해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충북 음성 삼성중 학생이 18일 기말고사에서 논술형 답안지를 쓰고 있다. [최종권 기자]

충북 음성 삼성중 학생이 18일 기말고사에서 논술형 답안지를 쓰고 있다. [최종권 기자]

지난 18일 오전 충북 음성군 삼성면 삼성중학교. 2학기 기말고사 첫날을 맞아 교실 안에서 학생들이 답안지를 쓰고 있었다. 이 학교 답안지는 특별했다. 객관식 문제가 없이 각종 질문에 자유롭게 기술하는 방식이다. 3학년 과학 과목 문제에 ‘PTC 용액에 따른 미맹(味盲) 반응과 혈액형 가계도’를 보여준 뒤 유전 형질을 추리하는 세부 질문이 나왔다. 학생들은 답안지에 멘델의 유전법칙 등을 예로 들며 꼼꼼히 답을 서술했다.

음성 삼성중학교의 기말고사 풍경 #예체능·영어 제외하고 주관식 출제 #김주은 양 “밤새워 답 외우기보다 #주제에 대해 생각하고 토의하게 돼” #공정성 위해 타 학교 교사 채점 참여 #장학사 “창의적 시각, 대입도 유리”

삼성중 학생들은 시험을 볼 때 마구잡이 ‘찍기’가 통하지 않는다. 이 학교는 예체능과 영어 과목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교과의 시험문제를 100% 서술·논술형으로 출제하고 있다. 답만 고르는 객관식 위주의 시험 형식을 탈피해 학생들의 종합적인 사고력과 논리력을 키우겠다는 취지다.

100% 서술·논술형 문제로 시험을 보는 과목은 국어·도덕·사회·역사·수학·과학 등 6개 과목이다. 과목별로 3∼8개 문항이 출제된다. 영어는 서술·논술형 문제와 객관식 문제 비율이 각 50%씩 차지한다. 영어시험 논술은 다른 과목보다 적용이 어렵고, 기초학력 미달 학생들을 배려하기 위해서다. 음악·미술·체육·기술가정 과목은 지필평가를 없애고 수행평가로 점수를 매긴다.

중간고사 때 출제된 서술·논술형 문제. [최종권 기자]

중간고사 때 출제된 서술·논술형 문제. [최종권 기자]

이 학교는 지난해 2학기 중간고사부터 서술·논술형 문제 비중을 높였다. 유성부 삼성중 교감은 “문제를 푸는 과정을 이해하고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 서술형 시험 비율을 늘렸다”며 “아는만큼 서술하면 부분 점수를 받을 수 있어 학습의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학교측은 ‘답안지를 A4→B4 용지로 크게 해달라’ ‘시간을 더 줬으면 좋겠다’는 등 학생들 의견을 반영했다. 정경욱(31) 수학 교사는 “문제 수가 줄어 부담이 줄었다는 의견도 있다”며 “문제 풀이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어 개별 학업 수준을 판단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삼성중은 서술·논술형 시험 확대에 따라 평가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채점클러스터’를 운영한다. 답안지 채점 과정에 과목별로 다른 학교 교사가 1~2명씩 참여한다. 삼성중 교사들은 교과협의회를 구성, 시험문제가 잘못된 게 없는지 의견을 나눈다.

시험이 바뀌니 수업 방식에도 변화가 왔다. 교사들은 서술·논술형 시험에 대비해 특정 주제에 대한 생각을 쓰게 하고 그 내용을 토론하는 식으로 진행한다. 3학년 김주은(15)양은 “밤을 새워서 답만 외우던 방식에서 친구들과 주제에 대해 토의하고 답안지를 미리 써보는 등 시험 준비 방법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삼성중의 100% 서술·논술형 시험은 ‘학생 중심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하는 행복씨앗학교(충북혁신학교)의 성과 사례로 꼽히기도 했다. 충북교육청 성현진 학교혁신담당 장학사는 “충북은 2014년 고입 연합고사가 폐지되면서 중학교 학생들이 문제 풀기식 시험을 준비하는 부담이 없어졌다”며 “수능 비중이 줄고 수시전형이 높아지는 추세로 볼 때, 자신만의 창의적 시각을 가진 학생들이 대입에서도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