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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전환해줘? 넌 해고야”…기업 갑질에 우는 비정규직들

중앙일보

입력

부산교통공사는 임산부와 영유아 및 어린이 동반 여성고객을 위해 22일부터 9월 21일까지 3개월간 도시철도 1호선 각 열차마다 5호차에 ‘여성 배려칸’을 마련하고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첫날 출근시간 보안관이 여성배려칸에서 계도를 실시하고 있다.

부산교통공사는 임산부와 영유아 및 어린이 동반 여성고객을 위해 22일부터 9월 21일까지 3개월간 도시철도 1호선 각 열차마다 5호차에 ‘여성 배려칸’을 마련하고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첫날 출근시간 보안관이 여성배려칸에서 계도를 실시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방향에 맞춰 공기업과 대기업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고 있지만 꼼수와 생색내기로 비정규직을 두 번 울리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비정규직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정규직이 찾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부산교통공사 비정규직 66명 정규직 전환…기존 계약직 근로자 83명 해고 #공개채용시 기존 근로자에 가산점 부여한다지만 그림의 떡 #한국GM 비정규직 해고하고 그 자리에 정규직 채워 넣는 ‘인소싱’ 문제로 논란

부산시 산하 공기업인 부산교통공사가 비정규직 66명 자리를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밝혔지만, 기존 근로자를 해고한 뒤 신규 채용을 진행하는 것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부산교통공사는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 맞춰 지난 19일 철도 선로·전차선 점검용 모터카 운전, 전동차와 통신설비 유지보수 등 3개 분야 66명 자리를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이 자리에 근무하는 기간제 계약직 근로자 83명을 해고하고 공개 채용으로 66명을 선발한다는 점이다.

모터카 운전 분야에서 근무하는 30대 김모 씨는 “지난 2월 1년 기간제 계약직으로 채용됐지만,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주기로 부산교통공사가 약속했다”며 “이 자리가 정규직으로 전환되면서 오히려 나는 일자리를 잃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통신 분야에서 근무하는 50대 이모 씨 역시 “문재인 정부가 말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기존 근로자를 전환해주는 것인데 부산교통공사는 일자리를 정규직으로 전환할 뿐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차별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부산교통공사는 기존 기간제 계약직 근로자가 공개 채용에 응할 경우 가산점을 부여해 혜택을 주겠다고 밝혔지만 이마저도 그림의 떡이라고 이들은 말한다. 가산점 부여는 만 60세 미만 근로자에게만 적용되는데 계약직 근로자 83명 가운데 41명이 60세가 넘는다.

60세 이하 계약직 근로자 42명은 대부분 40~50대로 청년들과 경쟁해 공개채용시험에 합격하기가 쉽지 않다. 가산점을 준다고 하지만 얼마나 부여할지, 몇 회 부여할지조차 정해지지 않았다. 이씨는 “공개채용시험은 전공과목과 직업기초능력평가 등 두 과목을 보는데 오랫동안 공부가 필요하다”며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공부할 시간이 없고 한참 취업준비를 해온 20~30대 청년들과 비교해 필기시험 능력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부산교통공사 정규직 전환심의위원회 위원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 부산교통공사]

지난 13일 부산교통공사 정규직 전환심의위원회 위원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 부산교통공사]

부산교통공사는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전환 지침에 따라 공개채용을 진행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부산교통공사 관계자는 “비정규직 전환 지침을 보면 ‘청년층이 선호하는 자리는 공개채용을 한다’고 명시돼 있다”며 “지난 2월 채용한 계약직 근로자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준다고 약속해 준 적도 없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공개채용 선발계획은 외부 위원 4명, 노조 간부 1명, 공사 직원 2명으로 구성된 전환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한 사항으로 5차례 회의를 거쳤다”며 “사용자 측이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한국GM. [사진 한국GM 창원비정규직지회]

한국GM. [사진 한국GM 창원비정규직지회]

큰 기업도 유사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한국GM도 비정규직을 해고하고 그 자리에 정규직을 채워 넣는 ‘인소싱(insourcing·내부조달)’ 문제로 논란이다. 한국GM 창원공장에서는 8개 하청업체 소속된 700여명의 근로자가 있다. 이 중 3·6·9개월 단위로 계약한 단기직이 250여명이다. 이 중 48명(2개 업체)이 지난 12월 4일 자로 인소싱이 진행됐다. 이들이 해고된 자리에 한국GM 창원공장 정규직인 사무직과 현장 관리직원이 대신 들어와 일하고 있다.

해고된 직원들이 소속된 금속노조 한국GM 창원 비정규직 지회는 인소싱에 반대해 지난 4일부터 전면 파업에 들어갔다. 이들은 한국GM 측이 인소싱 계획을 밝힌 지난 10월부터 부분 파업을 이어오다 실제 인소싱이 진행된 지난 4일부터 전면 파업으로 투쟁 수위를 높였다. 노진환 한국GM 창원 비정규직 지회 사무장은 “지난해부터 원청에서 비정규직 지회를 와해시키려 하고 있다”며 “지난해 대량 해고를 하려다 무산되자 올해 다시 인소싱 방식으로 노조를 압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앞으로 한국GM 측이 인소싱 규모를 더 확대할 것으로 보고 큰 불안을 느끼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에도 해고 위기에 몰렸었다. 지난해 11월에 한국GM 측이 하청업체 8개 중 4개 업체 300여명에 대해 계약해지 통보를 해서다. 우여곡절 끝에 이런 계약해지는 무산됐으나 올해 다시 한국GM 측이 인소싱 방식을 들고나오면서 노사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지난 8일 금속노조 한국GM지부 창원지회(전체 조합원 1700여명)가 회사 측과 인소싱 방침에 합의하면서 ‘노노 갈등’으로 퍼지고 있다.

한국GM. [사진 한국GM 창원비정규직지회]

한국GM. [사진 한국GM 창원비정규직지회]

정규직 노조도 할 말은 있다. 금속노조 한국GM지부 노영철 창원지회 사무장은 “우리 쪽에서도 그동안 1년 가까이 비정규직 지회와 논의해 회사 측에 입장을 전달했고 그 결과 비정규직 지회에 소속된 장기계약직 400여명에 대해서는 회사 측으로부터 고용보장을 받았지만 3·6·9개월 단위의 단기직은 고용보장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며 “회사의 여러 사정까지 고려하면 단기직까지 고용보장을 할 수 없는 상황인데 비정규직 지회에서 이런 요구까지 해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 관계자는 “비정규직 지회의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치고 있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비정규직 자리에 정규직을 대신하는 인소싱을 추진한 것”이라며 “경기 불황으로 회사 사정이 어려운 상황이어서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부산·창원=이은지·위성욱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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