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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희의 맛따라기] 크기·맛 ‘깜놀’ 호화 김밥…맛집 블로그 1세대의 일식집 ‘나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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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패니스 다이닝 ‘나스’에서는 서울에서 가장 굵은 후토마끼를 내지 않나 싶다. 직경이 밥공기보다 커 보인다. 속을 채운 내용도 화려하다. 참치(또는 방어), 겉만 구운 연어, 일본식 계란말이를 어른 손가락 굵기로 2~3가닥씩 넣고 저민 문어, 새우튀김, 우엉과 줄기상추 절임, 날치·연어 알, 차조기잎, 무 순, 채 친 양배추·적양배추 등이 들어간다. 지난달 16일의 안주용 후토마끼 반 접시(2만5000원).

재패니스 다이닝 ‘나스’에서는 서울에서 가장 굵은 후토마끼를 내지 않나 싶다. 직경이 밥공기보다 커 보인다. 속을 채운 내용도 화려하다. 참치(또는 방어), 겉만 구운 연어, 일본식 계란말이를 어른 손가락 굵기로 2~3가닥씩 넣고 저민 문어, 새우튀김, 우엉과 줄기상추 절임, 날치·연어 알, 차조기잎, 무 순, 채 친 양배추·적양배추 등이 들어간다. 지난달 16일의 안주용 후토마끼 반 접시(2만5000원).

최고라거나 아주 훌륭하다고 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일본에 유학한 본격 일식 조리사들이 우후죽순처럼 곳곳에서 여는 새 업소들에 밀리지 않으면서 여러 가지 숨은 장점이 있는 한국형 일본음식점이다. 서교동이지만 홍대 앞이라 하기엔 약간 떨어진 곳에 있어 번잡하지 않다. 주상복합건물 1층에 자리 잡아 지하 주차공간이 여유롭다. 큰길을 약간 벗어난 곳이어서 음식값은 품질에 비해 비교적 싼 편이다. 재미있는 메뉴도 있다.

‘양배추’라는 닉네임으로 홍대 상권에서 영향력이 막강했던 맛집 파워블로거(https://blog.naver.com/jsjung1999) 1세대 정재성(46)씨가 운영하는 재패니스 다이닝 ‘나스(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5나길 18 서교동 대우미래사랑 105호/전화 02-324-6469/블로그 http://blog.naver.com/nasu2014)’가 주인공이다. 상호 ‘나스’는 정씨의 이름 끝 글자의 한자[成]를 일본말로 훈독한 소리다.

회·튀김·날치알·우엉...상상 못한 후토마끼
이 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점심 후토마끼 정식(1만6000원)이다. 후토마끼[太巻き]는 다른 뜻은 없고 그저 크게 말았다는 말이다. 말만으로 보자면 초대형 김밥이다. 그런데 크기와 내용을 보면 누구라도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잘라놓은 말이 하나가 작은 접시만 하기 때문이다. 들어간 재료가 어마어마하다. 맛도 덩치 값을 한다.

 ‘나스’의 점심 메뉴인 후토마끼 정식. 후토마끼 2토막과 죽, 회, 치킨 가라아게, 미니 우동 등이 한 상으로 나온다. 값(1만6000원)에 비해 식사 겸 안주로 손색이 없는 푸짐한 차림이다.

‘나스’의 점심 메뉴인 후토마끼 정식. 후토마끼 2토막과 죽, 회, 치킨 가라아게, 미니 우동 등이 한 상으로 나온다. 값(1만6000원)에 비해 식사 겸 안주로 손색이 없는 푸짐한 차림이다.

정식에 올라온 후토마끼 2토막. 어떤 사람은 저걸 한 입에 욱여넣기도 한다. 속 재료 일부를 뽑아서 먹고 얇게 눌러서 손에 들고 베어 먹으면 편하다.

정식에 올라온 후토마끼 2토막. 어떤 사람은 저걸 한 입에 욱여넣기도 한다. 속 재료 일부를 뽑아서 먹고 얇게 눌러서 손에 들고 베어 먹으면 편하다.

조리실장이 마는 과정을 살펴봤다. 김밥용 김 2장을 밥풀로 이어 붙이고 초밥물 넣어 비빈 밥을 깐 다음 그 위에 참치(또는 방어), 겉만 구운(아부리) 연어, 일본식 계란말이를 어른 손가락 굵기로 2~3가닥씩 넣고 저민 문어다리, 새우튀김, 우엉(야마고보)·줄기상추 절임, 날치·연어 알, 차조기 잎, 무 순, 채 친 양배추·적양배추 등을 성처럼 쌓는다. 과연 무너지거나 터지지 않고 말아질까 싶은데 바퀴가 굴러가듯 말린다. 김을 이어 붙인 자리가 가끔은 벌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얼른 다른 김을 잘라 밥풀 발라서 때운다. 저걸 어떻게 자르나, 보는 사람은 조마조마한데 잘 드는 칼이 순식간에, 본래 한 덩어리가 아니었던 것처럼 잘라놨다. 8토막이 나온다. 2토막이 1인분이다. 전체 한 접시에 4만원이니 1토막은 5000원꼴이다.

지난달 16일의 후토마끼. 잘라서 접시에 담고 계란노른자 가루를 뿌리면 음식이 완성된다. 초기 후토마끼보다 굵기가 2배 넘게 커진 듯하다.

지난달 16일의 후토마끼. 잘라서 접시에 담고 계란노른자 가루를 뿌리면 음식이 완성된다. 초기 후토마끼보다 굵기가 2배 넘게 커진 듯하다.

자르다가 터지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순식간에 깔끔하게 잘랐다.

자르다가 터지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순식간에 깔끔하게 잘랐다.

성공적으로 말은 후토마끼(절반 사이즈). 보는 사람이 조마조마했지만 조리실장은 채친 채소가 흩어지지 않도록 능숙하게 말았다.

성공적으로 말은 후토마끼(절반 사이즈). 보는 사람이 조마조마했지만 조리실장은 채친 채소가 흩어지지 않도록 능숙하게 말았다.

모든 재료가 다 올라간 상태.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모든 재료가 다 올라간 상태.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후토마끼 주용 내용물을 다 쌓은 상태. 채친 채소만 올리고 말면 된다. 2인분 4토막이 나오는 절반 사이즈다.

후토마끼 주용 내용물을 다 쌓은 상태. 채친 채소만 올리고 말면 된다. 2인분 4토막이 나오는 절반 사이즈다.

워낙 커서 어떻게 먹을지도 걱정이 앞선다. 관찰해보니 한입에 욱여넣는 사람도 있고, 재료를 한 가지씩 끝까지 젓가락으로 꺼내 먹는 사람도 있다. 나는 뉘어진 상태에서 가닥이 여럿인 재료를 하나씩 뽑아 먹고 나서 말이를 갸름하게 눌러 입에 들어갈 크기로 펼친 다음 손으로 들고 베어 먹는다. 그래도 세 번은 잘라 먹어야 할 만큼 크다.

우동·회·튀김도 곁들여 한 상 1만6000원 
후토마끼가 원래 이렇게 컸던 건 아니다. 다른 음식점과 마찬가지로 한국 김밥보다 약간 굵은 정도다. 그랬던 것이 이 집에서는 점점 자랐다. 정 대표에게 왜 그렇게 커졌는지 물었더니 “초기에는 단골이 오면 대접한다고 재료를 한두 가지를 더 넣고 말아 드렸다. 그걸 본 사람 중에는 불만을 얘기하는 경우도 생겼다. 조금씩 키우다 보니 지금처럼 커졌다”고 답했다. 그 ‘성장’은 이제 말기도, 자르기도, 먹기도 한계선에 다가온 듯하다.

2017년 8월 25일 후토마끼. 8토막이 담긴 한 접시가 정상 제품이다.

2017년 8월 25일 후토마끼. 8토막이 담긴 한 접시가 정상 제품이다.

2017년 7월 8일 후토마끼. 새우튀김이 2줄로 들어갔다. 후토마끼의 내용은 날마다 조금씩 다르다. 이날은 주방에서 손님에게 크게 인심을 쓴 듯하다.

2017년 7월 8일 후토마끼. 새우튀김이 2줄로 들어갔다. 후토마끼의 내용은 날마다 조금씩 다르다. 이날은 주방에서 손님에게 크게 인심을 쓴 듯하다.

2016년 9월 3일 후토마끼

2016년 9월 3일 후토마끼

2016년 3월 15일 후토마끼

2016년 3월 15일 후토마끼

2015년 5월 3일 후토마끼

2015년 5월 3일 후토마끼

이 정식에는 후토마끼 2점, 회 3점, 그린 샐러드, 죽, 일본 된장국, 미니 우동, 치킨 가라아게, 이크라와 오크라를 올린 마즙, 단무지와 염교(락교) 절임이 한 상으로 차려져 나온다. 가격에 비하면 정말 아름다운 차림이다.

카이센동 저녁 안주용(2만5000원)

카이센동 저녁 안주용(2만5000원)

짜장·짬뽕 사이의 고민만큼 선택을 어렵게 만드는 또 하나의 점심 메뉴가 카이센동(海鮮丼)이다(1만8000원). 이름대로 풀면 바다생선덮밥이다. 초밥물로 비빈 밥을 오목한 그릇에 먼저 담고 그 위에 참치 붉은살(아카미), 연어회, 단새우(아마에비), 성게 알(우니), 연어 알(이크라), 해삼내장, 대게내장된장소스(카니미소) 등을 올린 뒤 계란노른자 가루와 얇게 자른 오크라(고추처럼 생겼는데 자르면 별 모양이 나오는 채소)를 흩뿌렸다. 이걸 한국 비빔밥처럼 전체를 비비면 안 된다. 그냥 둔 채로 젓가락으로 밥과 생선을 흩어지지 않게 잘 떠서 김밥용 김에 싸 먹으면 된다. 이 음식은 하늘의 꽃밭에 별이 뜬 듯한 화려한 색감이 미각을 먼저 일깨운다. 후토마끼와 카이센동은 저녁 메뉴가 되면 양이 늘어나면서 값도 비싸진다.

‘나스’에는 코스 손님을 받는 3개의 별실이 있다. 별실 좌석은 전체 20석쯤 된다.

‘나스’에는 코스 손님을 받는 3개의 별실이 있다. 별실 좌석은 전체 20석쯤 된다.

조리대 앞의 카운터 테이블에는 8명이 앉을 수 있다.

조리대 앞의 카운터 테이블에는 8명이 앉을 수 있다.

홀에는 4인 테이블 4조가 있다.

홀에는 4인 테이블 4조가 있다.

‘나스’는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1시까지 문을 연다. 준비시간 오후 3시~5시(토요일엔 준비시간 없음). 일요일엔 쉰다. 좌석은 코스 손님을 받는 룸 3실에 최대 20석, 단품 손님을 위한 홀 테이블 4인석 4개, 카운터 자리 8석 등 약 40석이다.

주요 메뉴는 ▷사시미 코스: 9만5000원/7만5000원/5만5000원 ▷스시 코스 7만7000원/4만5000원 ▷사시미 모둠 7만5000원/4만5000원 ▷시메사바, 아귀 가라아게 각 2만2000원 ▷카이센동(안주) 2만5000원 ▷후토마끼 4만원(절반 2만5000원) ▷(이하 점심)▷나스 정식 3만5000/2만5000원 ▷초밥·지라시 스시 각 2만원 ▷우동·메밀 정식 9000원 ▷규동·가츠동·돈가스 8000원.

인절미와 똑같이 생긴 아이스크림도
점심 특정식(3만5000원)은 ▷전채(죽과 샐러드) ▷11~12가지로 구성되는 모둠회 ▷초밥 1인 5점 ▷생선구이(취재한 날엔 청어 소금구이) ▷찜(스키야키 스타일의 소고기 나베) ▷조림(전갱이) ▷무 순과 날치 알 들어간 김말이 ▷3종 튀김(생선·새우·채소) ▷미니 우동(여름엔 메밀국수) ▷특정식에만 나가는 ‘인절미 아이스크림’ 디저트 순서로 진행된다. 인절미 아이스크림은 우유와 꿀을 넣고 저어서 얼린 일종의 분자요리인데, 네모로 잘라서 콩가루 입혀 모양이 인절미 비슷해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점심 특정식의 전채에 이어 나가는 사시미 모둠 접시에는 11~12가지 회가 오른다.

점심 특정식의 전채에 이어 나가는 사시미 모둠 접시에는 11~12가지 회가 오른다.

특정식 사시미에 이어 나온 초밥은 1인 5점씩이다.

특정식 사시미에 이어 나온 초밥은 1인 5점씩이다.

청어구이

청어구이

찜 요리 순서에 나온 스키야끼 스타일의 소고기 나베.

찜 요리 순서에 나온 스키야끼 스타일의 소고기 나베.

전갱이 무조림

전갱이 무조림

무 순, 날치 알 김말이

무 순, 날치 알 김말이

생선·새우·채소 3종 튀김

생선·새우·채소 3종 튀김

미니 우동. 여름엔 메밀국수가 나간다.

미니 우동. 여름엔 메밀국수가 나간다.

특정식과 코스에 나가는 디저트인 ‘인절미 아이스크림’.

특정식과 코스에 나가는 디저트인 ‘인절미 아이스크림’.

정 대표는 “개업하기 전 10년 동안 맛집 블로그 활동하면서 일식집들 많이 다녔다. 비싼 정식인데 회는 적고 알밥이나 튀김으로 배 채우게 하려는 경향이 있다. 나는 회가 우선이고 중심인 정식으로 바꾸고 싶었다. 1인당 회 11~12점을 먹고 초밥 5점을 더 먹으면 점심때 식사로 먹는 회의 양으로 적지 않다. 음식값은 개업 4년이 다 돼 가지만 한 번도 올리지 않았다. 술값만 1000원쯤 올린 것 같다”고 음식 자랑을 했다.

아귀 가라아게(2만2000원)

아귀 가라아게(2만2000원)

또 하나 새롭던 음식은 아귀 가라아게(2만2000원)였다. 일본 음식에는 방식에 따라 여러 가지 튀김이 있는데 가라아게[唐揚げ]는 재료에 아무것도 묻히지 않거나 밀가루나 녹말 등 가루를 묻혀 튀긴 음식이다. 재료에 계란물과 밀가루 옷을 입혀 튀기면 덴푸라[天ぷら]가 된다. 간간하게 간이 된 아귀 튀김은 이 집에서 처음 먹어봤는데, 겉은 바삭하면서 속은 부드럽고 졸깃한 게 씹는 맛도 있어 안주로 아주 맞춤했다.

손님 상에 스파클링 와인을 따르고 있는 정재성 대표. 맛집 동아리와 블로그 활동을 하면서 와인 경험도 많아 ‘나스’에는 준비된 와인과 일본 술이 다양하다.

손님 상에 스파클링 와인을 따르고 있는 정재성 대표. 맛집 동아리와 블로그 활동을 하면서 와인 경험도 많아 ‘나스’에는 준비된 와인과 일본 술이 다양하다.

‘나스’ 정재성 대표의 '양배추' 블로그 홈페이지.

‘나스’ 정재성 대표의 '양배추' 블로그 홈페이지.

'와쇼쿠[和食]' 표방한 재패니스 다이닝

간판에는 ‘화식(和食)’이라고 자기 정체성을 알렸다. 영어로는 ‘재패니스 다이닝’이라 했다. 다이닝(Dining)은 사전적으로 정찬(Full Course)이라는 말이지만, 음식점 분류상 정찬을 제공하는 중상급 레스토랑을 말한다. 화식이라는 말을 기분 나빠하는 사람도 있다. 화(和)는 일본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는 그들 정신문화의 키워드다. 그들이 자기네 음식에 자긍심을 담아 붙인 이름을 왜 우리가 비판 없이 받아 쓰느냐, 역사를 생각하면 ‘왜식(倭食)’이라 불러야 맞는 거 아니냐고 목청을 높인다. 한바탕 논란을 거쳐 가치 중립적으로 많이 쓰게 된 말이 ‘일식’이다. 그래서 ‘화식’을 내세우는 음식점이 흔하지 않은데 이 집은 그걸 앞세웠다.

동판을 새겨 만든 ‘재패니스 다이닝 나스’의 간판. 음식점의 정체성을 ‘와쇼쿠[和食]’라고 표시했다.

동판을 새겨 만든 ‘재패니스 다이닝 나스’의 간판. 음식점의 정체성을 ‘와쇼쿠[和食]’라고 표시했다.

‘재패니스 다이닝 나스[日本料理 成]’의 입구. 주상복합 건물 지하주차장 출구 옆에 있다. 서교동이지만 한적하고 주차공간이 여유롭다.

‘재패니스 다이닝 나스[日本料理 成]’의 입구. 주상복합 건물 지하주차장 출구 옆에 있다. 서교동이지만 한적하고 주차공간이 여유롭다.

화식은 일본 가정식이다.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정식 명칭은 ‘와쇼쿠[和食], 특히 신년 축하를 위한 일본의 전통 식문화’라고 돼 있다. 일본 가정식만으로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신청을 하면 너무 광범위하고 일상적이어서 특징이 없다 할까 봐 ‘특히 설음식’이라는 꼬리표를 달지 않았나 생각이 들게 하는 명칭이다. 전 세계 어느 집인들 대대로 이어지는 조리와 맛의 흐름이 없을까. 아마 미각 유전자가 혈통만큼 진하게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유네스코 홈페이지에서 이 항목을 찾아보면 “와쇼쿠와 관련된 기본 지식이나 솜씨를 ‘오후쿠로노아지(御袋の味, 엄마의 손맛)’라고 한다. 와쇼쿠는 가정에서 부모 또는 조부모 세대로부터 후손에게 전승되어 왔다”라고 설명했다.

정 대표에게 실제로는 어떤지 물었다. 그는 “한국형 와쇼쿠라 할 수 있다. 2014년 2월 2일 개업해 처음 2년은 단품 요리 없이 5가지 코스(사시미 특/A/B, 스시 특/A)만 팔았다. ‘다이닝’이라는 이름의 자부심에 맞게 메뉴에 힘을 줬다. 하지만 일본 유학파 젊은 요리사들이 대거 현업에 뛰어들면서 일식이 점점 캐주얼해지고 갓포요리가 유행하면서 거기에 대응하려니 초기의 고급화 전략은 많이 퇴색하고 단품이 많이 생겼다”고 고충과 변화를 설명했다.

초기엔 5가지 코스만 하던 고급 일식집
카운터 테이블과 조리실 사이에 설치한 냉장 선반에 올린 재료들을 보니 어떤 음식들을 만들지 대략은 알겠다. 연어, 초절임 고등어(시메사바), 참치 붉은살(아카미), 밍크고래 뱃살(우네), 방어, 간장 절임 청어, 단새우(아마애비), 겉만 구운(아부리) 대왕오징어와 키조개 관자, 삶은 피조개 살, 산 우엉 절임, 일본식 계란말이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조리대 앞의 냉장 선반에 올린 음식재료들. 왼쪽부터 연어, 초절임 고등어(시메사바), 참치 붉은살(아카미), 밍크고래 뱃살(우네), 방어, 간장 절임 청어, 단새우(아마애비), 겉만 구운(아부리) 대왕오징어와 키조개 관자, 삶은 피조개 살, 산우엉 절임, 일본식 계란말이.

조리대 앞의 냉장 선반에 올린 음식재료들. 왼쪽부터 연어, 초절임 고등어(시메사바), 참치 붉은살(아카미), 밍크고래 뱃살(우네), 방어, 간장 절임 청어, 단새우(아마애비), 겉만 구운(아부리) 대왕오징어와 키조개 관자, 삶은 피조개 살, 산우엉 절임, 일본식 계란말이.

갓포(割烹)요리를 사전은 “요리되는 대로 한 가지씩 내어놓는 일본요리”라 했는데,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미흡하다. 할(割)은 칼로, 烹(팽) 불로 조리하는 법을 말한다. 칼·불을 다루는 기술이 뛰어난 전문 조리사가 만든 고급 요리가 갓포요리다. 예전 요정에서 미리 준비한 음식을 정해진 순서에 맞춰 풀코스로 차려내던 가이세키(會席)요리를 개방적으로 해석해 코스를 해체하고, 좋은 기술로 열린 주방에서 손님이 주문하는 단품을 즉석에서 조리해 바로바로 상에 내는 스타일로 바꾼 것이다. 메이지 시대(1868~1912)에 오사카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메이지 유신의 바람이 음식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도 있겠다.

참치 연어 타르타르(2만4000원)

참치 연어 타르타르(2만4000원)

항정살 시오야끼 유즈코쇼(1만8000원)

항정살 시오야끼 유즈코쇼(1만8000원)

정 대표는 망원동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전남 함평·무안이 고향인 부모님은 망원시장에서 장사를 했다. 채소가게를 오래 했다. 부모님이 함께 일을 하니 어린 시절에는 주로 할머니가 5남매를 보살폈다. 어린 시절 입맛은 할머니를 따라갔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형제들이 음식을 해 먹었다. 그때부터 자신이 음식에 관심이 있다는 걸 알았다.

대학을 마치고 1996년 건축자재 판매회사에 들어갔다. 1998년부터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에 있었던 PC통신 하이텔의 음식동아리에 들락거렸다. 그때만 해도 ‘눈팅(직접 참여하지 않고 글만 읽음)’ 수준이었다. 2000년부터는 식도락 사이트인 이튼쿡(eatncook)에 가입해 글도 올리고 번개 모임에도 많이 참여했다. 모임은 오로지 먹는 게 일이었다. 모일 때마다 ‘경기 북부 냉면을 찾아서’라든지, ‘노포 순례’라든지 하는 주제를 정해 몰려다녔다. 한번 나서면 하루 4~6끼를 먹었다. 한 달에 10회쯤 참여했다. 비용은 자기 몫만 내면 되니까 큰 부담은 아니었다.

굴후라이(1만5000원)

굴후라이(1만5000원)

소고기 완자로 속을 채운 버섯튀김과 가지튀김(코스의 일부)

소고기 완자로 속을 채운 버섯튀김과 가지튀김(코스의 일부)

전갱이후라이(1만7000원)

전갱이후라이(1만7000원)

무리한 외식업 진출 탓에 부도를 맞은 이튼쿡은 2003년 없어지고 활동가들은 흩어졌다. 2003년 12월 예종석(64) 한양대 교수가 이끄는 ‘yepok클럽’으로 일부가 먼저 이동했고, 다른 일부는 성격이 비슷한 ‘다인포유(dine4u)'라는 사이트를 만들어 독립했다. 또 일부는 엠파스 ‘에피큐어(epicure)’에 둥지를 틀었다.

2004년부터 닉네임 '양배추' 블로그 활동
정 대표는 2005년까지 유지된 ‘다인포유’로 갔지만, 이 무렵부터 활동가들은 블로그의 재미를 알기 시작했다. 분란이 잦은 공동 사이트보다 개인 블로그에 힘을 쏟기 시작했고, 블로그 이웃을 맺어 소통하는 방식으로 전체 판도가 변해갔다. 그는 2004년 ‘인티즌(intizen.com)’에 처음 블로그를 개설했다. 닉네임은 지금도 그대로인 ‘양배추’였다. 1년 반쯤 뒤 인티즌은 이찬진(52)씨가 운영하는 ‘드림위즈’에 합병됐다. 드림위즈에서 6개월을 활동하다 2006년 네이버 블로그로 갈아탔다.

도미머리 시오야끼(2만9000원)

도미머리 시오야끼(2만9000원)

부추 해물볶음(코스의 일부)

부추 해물볶음(코스의 일부)

1999년 결혼을 하는 한편, 1998년 초부터 5년간 번 돈을 모아 2003년 초 건축자재 대리점을 차렸다. 사장 1명에 여직원 1명인 회사였다. 그나마 여직원은 친동생이었다. 지금도 음식점과 그 회사를 함께 운영한다. 대기업 건축자재를 건설 단종회사에 중개하는 일종의 중개상이다. 대기업은 단종회사들 일일이 관리하기 어려우니까 대리점을 통해 거래한다. 다니던 회사에서 거래처 하나를 가지고 나와 시작한 회사다. 초기 2년 동안 하루 4시간만 자고 일을 했더니 3년 차에 매출 10억까지 올라갔다. 주요 취급 품목은 외장방수·아스팔트·우레탄이다. 한때 잘 될 때는 연 매출 30억씩 올리기도 했다.

골뱅이 호부추 버터구이(코스의 일부)

골뱅이 호부추 버터구이(코스의 일부)

계란해물쌈(코스의 일부)

계란해물쌈(코스의 일부)

잘되던 회사는 2011년부터 2년 사이 약 8억원의 부도를 맞았다. 본인 잘못이 아니라 건설회사가 부도나면 납품하고 받아둔 어음이 공중에 뜨는 것이다. 지금도 5억원 넘는 어음을 가지고 있지만, 건설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자산이 모두 동결되기 때문에 돈을 받을 길이 막연하다. 페인트 회사 어음 3억5000만원은 돈을 못 받는데 대금은 갚아야 해서 2013년 3월부터 올해 초까지 4년에 걸쳐 어렵게 전액 상환하기도 했다. 그는 “성격이 욱하는 것도 있지만 잊기도 바로 잊는 편이다. 안 그랬으면 자꾸 부도 맞을 때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그간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건축자재 회사 운영하며 음식점 낼 구상
회사를 경영하면서도 식당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다. 음식을 잘하던 어머니는 좋은 재료를 써야 맛있다는 원칙을 지켰다. 음식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의 미각은 어머니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할머니 돌아가신 후 집에서 음식을 해 먹으면서 익힌 김치찌개 솜씨에는 어느 정도 자신도 있었다. 스무 살 이후부터 스스로 해 먹던 음식에 대한 레시피도 다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의욕을 냈으나 아내가 만류했다.

‘나스’를 개업하던 2014년 초에는 벌어둔 돈도 어느 정도는 있었고, 아내도 남편이 부도를 거듭 맞으니까 건자재 일 말고 뭔가 다른 일을 할 것 같다는 예상은 하고 있었다. 홍대 주변에서 잘되는 음식점은 다 다니고, 블로그에 열심히 정리해둔 것도 아니까 이번엔 말리지 않았다. 회사 사무실이 홍대입구역 2번 출구 옆에 있어 블로그 활동을 그 주변에서 주로 했다. 그는 “블로그 가운데 홍대 상권에 관한 콘텐트는 내가 가장 많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도미 뱃살과 딱새우가 들어간 매운탕(코스의 일부)

도미 뱃살과 딱새우가 들어간 매운탕(코스의 일부)

민어뼈곰탕(코스의 일부)

민어뼈곰탕(코스의 일부)

지금도 하지만 개업 전까지 블로그 활동 10년을 하면서 음식점 사업에 대해 뭔가 아는 듯도 했다. 하지만 막상 열고 보니 딴판이었다. “먹으러만 다니다가 음식점 열고 처음 시장에 갔더니 생선을 모르겠더라. 횟감으로 포 떠서 잘라놓은 상태로만 생선을 봤지 통째로 본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러니 시장에 나와 있는 물건을 골라 사는 데 자신이 없었다. 선도도 알 수가 없고, 그런 게 어렵고 안타까웠다.”

메뉴·코스 직접 구성하면 조리는 주방서
더 큰 난관도 있었다. “가장 어려운 건 사람(직원과 손님)이었다. 우선은 직원이다. 내가 직접 요리를 하는 게 아니라 시켜서 음식이 나오게 하는 거니까 안다고, 생각이 있다고 그대로 다 되는 게 아니다. 장사는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지만, 주방과 홀 직원이 안정이 안 되니까 되는 게 없었다. 다양한 손님이 오는데 개업은 했지만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던 듯하다. 제일 싫어하는 손님은 무조건 ‘사장 오라고 해’라고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은 부부가 홀을 맡고 있다. 조리실장은 일식 경력 20년의 42세 조리사로 ‘나스’의 주방을 2년째 이끌어가고 있다. 메뉴와 코스 구성은 정 대표가 한다. 구상한 걸 설명해 조리사들이 음식으로 만들면 먹어 보고 정 대표가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물건은 노량진에서 들여오는 게 70%이고, 30%는 횟감인데 부산에서 ktx 화물로 받는다. 구이용 작은 생선은 택배로 받기도 한다. 단골 거래는 주로 전화로 처리하기 때문에 시장에 매일 나가지는 않는다.

‘나스’가 받은 블루리본서베이 인증 마크. 개업 만 4년이 안 됐는데 2016년 빼고 매년 받았다. 개업 첫 해에도 받았으니 기세가 보통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나스’가 받은 블루리본서베이 인증 마크. 개업 만 4년이 안 됐는데 2016년 빼고 매년 받았다. 개업 첫 해에도 받았으니 기세가 보통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요즘 경기가 어떤지 물어봤다. 그는 머리를 절레절레했다. “올해처럼 어려운 때가 없었다. 연초에는 안정될 시기라고 예상했는데 예년보다 연휴가 많았고, 마케팅도 효과적으로 하지 못했는지 매출이 외려 떨어졌다. 연말 경기도 작년만 못하다. 12월 절반이 지나간 상황에서 지난해 3분의 2 수준이다. 예년에는 매일 꾸준히 손님이 왔는데 올해는 목·금·토요일에만 몰린다. 지난해 연말에는 거의 날마다 예약이 만석이었는데 올해는 매주 금·토요일 정도만 만석이다.”

의사가 제 병 못 고치는 이치 깨닫는 시간 
두 가지 사업을 병행하면서 돈을 벌지 못한 것은 아닌데 ‘나스’에서 번 돈은 없다고 했다. 블로거로서는 어느 음식점이 제 자리에서 5층 빌딩을 새로 올릴 만큼 돈을 벌게 해주기도 했지만, 그게 자기 일이 되고 나니 뜻과 같지 않은 것이다. 사람 사는 일이 의사가 제 병 못 고치고, 선생이 제 자식 못 가르치는 이치를 벗어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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