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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쏭부부의 잼있는 여행]47 유럽 최고봉은 몽블랑이 아니라네

중앙일보

입력

흑해에서 카스피해까지 뻗어 있는 코카서스 산맥. 이 산맥에는 러시아 최고봉이자 유럽 최고봉이 있어요. 바로 엘브루스산(Elbrus, 5642m)이에요. 러시아와 조지아의 국경 부근는 이 산에 조지아 한 달 살기 체험 중 다녀왔어요.

유럽 최고봉 엘브루스.

유럽 최고봉 엘브루스.

조지아 카즈베기에서 시작해 엘브루스의 베이스캠프 마을 테스콜(Terskol)까지 279km를 이동하는 여정이에요. 테스콜까지 가는 길에는 블라디캅카스(Vladikavkaz)·날치크(Nalchik) 같은 러시아 서남부의 중소도시를 지나게 되죠. 카즈베기에서 택시를 대절해 바로 테스콜까지 가는 방법도 있지만, 가격이 부담되어 국경까지만 택시를 타기로 했어요. 걸어서 국경을 통과한 후 러시아 국경을 지나 러시아에서 다른 택시를 잡아탈 계획이었죠. 하지만 국경에서부터 우리의 계획은 꼬이기 시작했어요.

카즈베기 마을 전경.

카즈베기 마을 전경.

러시아로 가기 위해서는 우선 조지아 군사도로(Georgian Military Road)를 따라 국경을 넘어야 해요. 1799년 러시아군의 군사 목적으로 만들어졌는데,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Tbilisi)와 러시아 블라디캅카스(Vladikavkaz)를 잇는 200km의 도로에요. 코카서스 산맥을 가로지르는 길인데 코카서스의 남과 북을 잇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죠. 게다가 도로에서 보이는 풍경도 빼어나서 일부 가이드북에서는 이 도로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악 도로 중 하나로 표현하고 있어요. 트빌리시에서 카즈베기로 가는 통로이기도 해서 카즈베기를 방문하는 여행자라면 꼭 지나게 되는 길이죠. 해발 2000m 지점에 세워진 러시아 수교기념탑(모자이크 전망대)이 전망 포인트에요.

조지아-러시아의 수교 기념탑.

조지아-러시아의 수교 기념탑.

조지아 군사 도로를 따라 우선 카즈베기에서 11km 북쪽에 있는 국경까지 택시를 타고 이동했어요. 택시비는 인당 10라리. 그러니까 한국돈으로 1만원도 안 한다고 좋아했는데 막상 도착해 보니 20분 만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여서 조금 더 흥정할 걸 하고 후회했어요. 조지아 국경은 생각보다 한산했어요. 출국 절차가 5분도 채 걸리지 않았죠. 문제는 이때부터였어요. 조지아 국경을 통과해 러시아 입국사무소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우리를 군인이 갑자기 막아섰어요. “노 워킹(No Walking). ” 군인은 짧은 영어와 보디 랭귀지를 섞어 가며 우리가 여기서부터는 걸어갈 수 없다고 설명했어요. 당황한 우리는 타고 온 차는 이미 가 버렸다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다른 차를 잡아 줄테니 기다리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군인이 히치하이킹 해준 차를 타게 되었는데, 차에 탄 지 1분 만에 왜 차를 잡아 주었는지 알 수 있었죠. 이 국경은 코카서스 산맥의 중심을 가로지르기 때문에 거대한 협곡을 뚫은 긴 터널을 두 개나 지나야 하거든요. 두 국경 오피스 간의 거리만 해도 3km 넘게 떨어져 있고요. 이런 길을 걸어갈 생각을 하다니. 정말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어요. 그래도 무사히 군인과 현지 주민의 도움으로 러시아 국경에 도착할 수 있었어요.

러시아로 넘어가는 조지아 국경.

러시아로 넘어가는 조지아 국경.

조지아 국경과는 다르게 입국 심사 때는 차가 길게 줄지어 서 있었어요. 우리가 걸어서 오피스에 가자 러시아 국경 직원들이 우리를 갸우뚱하며 쳐다보았죠. 다들 차를 타고 통과하기 때문에 우리처럼 큰 짐을 들고 걸어서 통과하는 사람은 없거든요. 여기서 택시나 히치하이킹해서 가려고 한다고 직원에게 말하자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했어요. “블라디캅카스로 가는 차를 잡아줄게. 기다려.” 한 시간 동안의 약간은 까다로웠던 입국 심사가 끝나고 이번엔 러시아 국경 직원이 잡아준 차를 타고 국경에서 30km 떨어진 블라디캅카스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어요. 군인과 직원이 직접 히치하이킹을 해주다니, 지금까지 지나 보았던 어떤 국경보다도 따뜻한 국경이었어요.

러시아 도착! 저 멀리 보이는 러시아어 간판이 여기서부터 러시아임을 알려준다.

러시아 도착! 저 멀리 보이는 러시아어 간판이 여기서부터 러시아임을 알려준다.

블라디캅카스는 러시아 서남부 도시로 북 코카서스의 요충지에요. 코카서스의 러시아어 발음은 캅카스에서 따온 지명이죠. 여기서부터는 대중교통으로 테스콜(Terskol)까지 갈 수 있어요. 혹시나 해서 엘브루스까지의 택시 요금을 물어보았는데 가격은 3500루블(6만 원)이라고 하네요. 물론 택시를 타면 편하게 갈 수는 있지만 아직 늦지 않은 시간이라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죠. 블라디캅카스 버스 터미널에서 테스콜까지 바로 가는 버스는 없어서, 블라디캅카스~날치크(115km), 날치크~테스콜(124km), 이렇게 두 번 버스를 갈아타기로 했어요.
블라디캅카스 버스 터미널까지는 택시를 타고 갔어요. 택시 아저씨가 이번엔 택시를 주차한 후 몸소 버스까지 데려다주겠다며 따라오라고 하네요. 러시아에 갓 도착한 여행자를 상대로 사기를 치는가 싶어 바짝 긴장했는데 정말로 우리 부부를 도와주고 싶어서 그런 거였어요. 티켓도 대신 구매해주고 날치크까지 가는 버스에 타는 걸 본 뒤 악수를 하고 떠났어요. 아저씨의 선행을 의심했던 게 괜히 죄송스러웠어요. 이번엔 택시 기사의 도움으로 무사히 날치크로 향하는 마슈룻카에 탔고 2시간 걸려 날치크에 도착했어요. 블라디캅카스에서 날치크까지의 마슈룻카 요금은 234루블(4000원).

블라디캅스 터미널. 그리고 터미널까지 안내해주신 친절한 택시 아저씨의 뒷모습.

블라디캅스 터미널. 그리고 터미널까지 안내해주신 친절한 택시 아저씨의 뒷모습.

날치크는 엘브루스로 가는 관문 도시에요. 이제 차를 타고 2시간만 더 가면 엘브루스의 베이스 캠프 마을 테스콜에 도착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었죠. 하지만 또 문제가 터져버렸어요. 우리가 날치크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 그런데 테스콜로 가는 막차는 3시였던 거예요! 결국 날치크에서 테스콜까지는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고 이동했어요. 택시요금은 2000루블(3만 원). 그렇게 카즈베기에서 출발한 지 10시간 만에 테스콜에 도착했어요. 여섯 번의 이동 끝에 도착한 목적지라 그런지 더 감회가 새로웠어요. 특히 우리 대신 차를 잡아주었던 군인과 국경 직원, 대가 없이 차를 태워 준 기사 아저씨, 버스터미널까지 친절하게 안내해준 택시 기사까지! 러시아 사람들은 불친절하고 무섭다고들 해서 걱정했는데 러시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 날이었어요.

테스콜 마을에서 한 컷.

테스콜 마을에서 한 컷.

다음 날은 엘브루스 등반을 위한 준비를 했어요. 10월 초라서 이미 많은 장비점들이 문을 닫은 상태였죠. 다행히 딱 한 곳 아직 영업 중인 곳을 찾아서 등산화·아이젠·얼음도끼(피켈)·안전벨트(하네스) 등을 대여했어요. 주로 여름 나라만 여행하다 보니 가진 옷이라고는 반소매 반바지뿐이라 두툼한 패딩 상·하의 및 침낭도 대여했죠. 10월의 엘브루스 정상은 섭씨 영하 20도를 웃돌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하루 1인 5만 원 정도의 금액으로 장비를 빌렸어요. 장비 대여와 더불어 식량도 준비하고 가이드도 고용했어요. 이제 엘브루스로 향할 일만 남았어요!

장비 렌털숍.

장비 렌털숍.

엘브루스를 오르는데 필요한 장비들.

엘브루스를 오르는데 필요한 장비들.

정리=양보라 기자

코카서스 산맥 엘부르스산으로 #무식해서 시도한 도보로 국경 넘기 #군인 도움으로 히치하이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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