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데이터데이트]'금(金)징어'가 된 오징어, 그 이유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경북 포항시 인근에서 한 어민이 바닷바람에 오징어를 말리고 있다. [중앙포토]

경북 포항시 인근에서 한 어민이 바닷바람에 오징어를 말리고 있다. [중앙포토]

"오징어 튀김 팔면 팔수록 손해에요."

얼마 전 서울 강서구 재래시장의 한 떡볶이 점포를 찾았습니다. 벌건 고추장 국물이 바글바글 끓자 떡을 떼어 넣던 주인장 아저씨가 오징어 이야기에 얼굴을 찡그립니다. 이 집은 떡볶이 '짝꿍'인 오징어 튀김을 만드는데 생물 오징어를 써왔다네요. 그런데 올 초부터 오징어 값이 올라, 더는 생물 오징어로 튀김을 만들기 힘들다는 겁니다.

실제로 농수산물유통공사가 집계한 오징어 소매가격(1마리 기준 월평균)은 올 1월 3132원에서, 12월 4643원으로 48%나 뛰었습니다. 서민들의 체감 물가는 이보다 더하겠지요. 문득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오징어는 어쩌다 '금(金)징어'가 된 걸까요? 우리 바다와 그곳에서 잡히는 물고기들의 데이터를 들여다봤습니다.


90년대 절반밖에 안 잡히는 '금(金)징어'
오징어 몸값이 뛴 것은 공급이 부족한 탓입니다. 오징어가 덜 잡히는 거죠. 1970년부터 지난해까지 통계청이 집계한 오징어 어획량을 들여다봤습니다. 분석 결과 어획량 감소세가 또렷하게 드러났습니다. 오징어는 1996년 가장 많이 잡혔습니다(25만2618t). 하지만 2000년대 들며 어획량이 급감했습니다. 지난해에는 96년 대비 절반 이상 줄었습니다(12만1756t). 70년대부터 보면, 누워있는 S자 커브가 한눈에 들어오시죠?

그 많던 오징어는 다 어디로 갔을까?
오징어가 안 잡히는 첫 번째 이유는 수온 때문입니다. 김중진 국립수산과학원 박사님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오징어는 난류성 어종이에요. 따뜻한 물을 좋아한다는 겁니다. 최적 수온이 12~18도에요. 오징어는 남중국해에 살다가 수온이 올라가면 동해를 회유해 러시아 쪽까지 올라갑니다. 날씨가 추워지면 다시 남쪽으로 내려오고요. 그런데 최근 수년 사이 우리 바다의 수온이 올라가면서 오징어들이 일찍 북상하기 시작했어요."

오징어가 일찍 북상한다는 건, 우리 어민 기준에서 보면 오징어가 빨리 어장을 벗어난다는 의미입니다. 오징어 밀집도가 떨어지니, 당연히 그만큼 잡기가 어렵겠죠?

국립수산과학원 통계를 보면 1970년 동해의 평균 수온은 16.3도였습니다. 1981년 15도로 저점을 찍은 뒤, 2000년 들어 오름세를 타기 시작해 지난해 18.2도를 기록했습니다. 1970년과 지난해를 단순 비교하면 1.9도나 오른 셈입니다.

수온과 오징어 어획량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따져봤습니다. 2000년 이후 동해 수온과 오징어 어획량은 '약한 음의 상관관계'를 보였습니다. 쉽게 말해 수온이 올라갈수록 어획량이 줄어드는 반비례 경향을 보였다는 이야기입니다.

북한과 중국, 그리고 오징어
지금부터는 씁쓸한 이야기입니다. 오징어가 '금징어'가 된 두 번째 이유는 북한과 중국어선 때문입니다. 다시 김중진 박사님의 설명입니다.

"여름에 러시아 쪽으로 북상했던 오징어가 9월부터 남하하는데, 그 내려오는 길목이 북한 어장입니다. 북한은 경제난 타개를 위해 2004년 어업권을 중국에 팔기 시작했어요. 중국 어선들이 오징어가 내려오는 길목인 북한 어장에서 마구잡이로 오징어를 잡으니, 더 남쪽에 있는 우리 어장에서 잡을 오징어가 사라지게 된 겁니다."

강원도 환동해본부에 따르면 중국어선이 북한 어장에서 조업을 시작한 2004년(144척), 강원도의 오징어 생산량은 2만 2243t이었습니다. 그런데 중국 어선 1268척이 북한어장에서 오징어잡이를 한 지난해에는 7297t밖에 잡지 못했습니다. 2004년 대비 생산량이 67.2%나 줄은 겁니다.

오징어가 '금징어'이던 시절의 기록이 남아있는『조선왕조실록』. [사진=문화재청]

오징어가 '금징어'이던 시절의 기록이 남아있는『조선왕조실록』. [사진=문화재청]

오징어가 '금징어'이던 조선시대로
오징어가 '금징어'가 되다 보니, 이러다 조선 시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원래 오징어는 서민들이 먹기 힘든 해산물이었거든요.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종 때 오징어(烏賊魚)에 대한 기록이 처음 등장합니다. 1421년 '제주에서 오징어를 진상했다'는 내용이지요.

문종 시절(1452년)에는 중국 사신에게 오징어 2000마리를 선물로 보냈다고 합니다. 성종 시절에도 중국 황제가 마른 전복과 다시마, 김, 미역과 함께 마른오징어를 달라고 요청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또 하나 재미있는 기록은 1472년 성종 때 것입니다. 성종은 "오징어 등을 진상할 때 생산에 따라 하고 백성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고 지시합니다. "오징어가 생산되지만 몸이 작아 제주도에서 생산되는 것과 같지 않았는데, 이제 큰 것을 얻어 진상하려고 하는데 폐단이 적지 않다"는 경상·전라도 관찰사의 하소연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제주도에서 왕에게 올려도 될 정도로 큼지막한 오징어가 잡혔던 모양입니다. 지금처럼 강원도가 아니라 아랫녘인 제주도가 오징어 주산지가 아니었을까, 성종 시절에는 제주뿐 아니라 남해에서도 잡힌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오징어만큼 안 잡히는 생선들
옛날처럼 "심심풀이 오징어, 땅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귀한 몸'이 된 오징어. 한데 오징어만의 문제가 아닌 듯합니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우리 바다에서 나는 수산물은 80년대 152만t을 정점으로 줄기 시작했습니다. 쥐치(1970~1980년대)·명태(1990년대 이후)에 이어 정어리(2000년대 이후)가 점차 잡히지 않는다고 합니다. 정말일까요? 1970년 이후 지난해까지 우리 바다에서 나는 수산물 데이터를 꼼꼼히 뜯어봤습니다.

과연 '명태의 후예' 후보군이 보였습니다. 오징어 외에 꽁치·정어리·갈치가 확연히 덜 잡혔습니다. 꽁치는 경제적인 이유로 꽁치잡이 어선 숫자가 줄며 어획량이 줄었다고 합니다. 반면 갈치는 오징어 같은 경우랍니다. "난류성 어종으로 수온이 오르며 일찍 북상 회유를 하며 오징어처럼 어획량이 줄었다"는 게 수산과학원 설명입니다. 계속 감소세를 보이다가 유독 올해만 갈치가 많이 잡힌 것은 중국이 예년과 다르게 휴어기(6월부터 3~4개월)를 한 달 앞당긴 탓이랍니다. 중국 어선이 덜 잡으니 우리 어선에 기회가 돌아온 것이죠. 정어리 어획량이 줄어든 원인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답니다. 이제 막 세계적으로 연구가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아열대성 어종인 노랑가시돔 [사진 국립수산과학원]

아열대성 어종인 노랑가시돔 [사진 국립수산과학원]

노랑가시돔, 넌 누구냐
명태·쥐치 등이 사라진 우리 바다에 새로 출현한 물고기들도 있습니다. 수온이 오르면서 아열대성 어종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거죠. 대표적인 예가 2014년부터는 제주도 해역에서 발견된 노랑가시돔입니다. 청새치와 제비활치류·구실우럭·꼬리줄나비고기·꺼끌복도 마찬가지 경우인데요, 이들 어종은 상업적 가치가 낮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 우리 식탁 위에 오를 생선은 아니라는 것이죠.

'국민 생선'인 오징어·갈치는 안 잡히고, 못 먹을 아열대 생선들만 잡힌다니 걱정입니다. 국산이 시나브로 사라져 이제 수입산만 먹어야 하는 명태 생각이 납니다. 설마 이러다 우리 식탁을 몽땅 수입산으로만 채워야 할 날이 오는 것은 아니겠죠?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배여운 데이터분석가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