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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사대 논란' 만절필동(萬折必東) 새긴 가평 조종암 르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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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대보리 조종암. 전익진 기자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대보리 조종암. 전익진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 저자세 외교' 논란과 노영민 주중대사의 '사대 외교' 논란이 겹치면서 경기도 가평의 조종암(朝宗巖)에 세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국빈 방중 기간이던 지난 15일 베이징대 연설에서 "한국도 작은 나라지만 책임 있는 중견 국가로서 그 꿈에 함께 하겠다"고 발언했다. '한국은 작은 나라'라는 언급이 국내에서 후폭풍을 일으켰다. 앞서 지난 5일 노 대사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신임장을 전달하면서 방명록에 ‘만절필동 공창미래(萬折必東 共創未來)'라고 적었다. 일각에서는 '천자를 향한 제후들의 충성'을 의미하는 '만절필동'을 한국의 대사가 쓴 것은 부적절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경기 가평군 바위에 한자 새긴 조종암 #‘경기도 기념물 제28호’ 1975년 지정 #‘만절필동(萬折必東)’ 암벽에 새겨져 # #조선시대에 '소중화의 성지'로 여겨 #기념물 지정돼 있는 조종암 의견 분분 #“사대주의 사상이 지금은 맞지 않아” #“조선의 사상과 역사 담긴 문화유산”

이런 뜨거운 논란과 엮인 가평 조종암을 기자가 직접 찾아가 봤다.
지난 19일 오후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대보2리 산176-1 대금산 자락. 조종암은 야트막한 바위산에 위치해 있었다. 조종천(朝宗川)을 끼고 왕복 2차로 대보간선로와 맞닿은 곳에 조종암이 있다.
인근엔 주택은 두 채가 전부이고, 오가는 차량도 드물었다. 42년 전인 1975년 9월 5일 경기도 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된 이곳에는 간단한 안내 간판과 울타리·계단 등이 갖춰져 있다. 하지만 방문객은 거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거의 잊혀진 공간 같았는데 이곳이 요즘 세간에서 일고 있는 뜨거운 논란의 중심으로 갑자기 떠올랐다.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대보리 조종암. 전익진 기자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대보리 조종암. 전익진 기자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대보리 조종암. 전익진 기자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대보리 조종암. 전익진 기자

이 마을 이영태(64) 이장은 “조종암을 가기 위해 더러 문의해 오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평소 방문객은 거의 없다”며 “이곳이 마을과 떨어져 있는 데다 특별한 행사도 거의 열리지도 않고 있어 조종암의 의미와 내용에 대해 아는 주민들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곳은 조선 시대 당시 명나라를 숭상하고 청나라를 배척했던 숭명배청(崇明排淸) 사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유적으로 불린다. 안내판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에 조선에서는 성리학의 명분론에 입각하여 숭명배청 의식이 널리 퍼지게 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효종과 송시열이라 할 수 있다. 조종암의 글씨는 바로 당시 인물들의 사상을 보여주는 유물이라 할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소중화(小中華)의 성지’로 부르는 이곳의 바위 암벽에 글씨가 새겨져 있다. 조선 선조의 글씨인 ‘만절필동 재조번방(萬折必東 再造蕃邦:일만 번 꺾여도 반드시 동쪽으로 흐르거니 명나라 군대가 왜적을 물리치고 우리나라를 다시 찾아 주었네)’이란 글귀가 뚜렷하게 보였다.
송시열이 쓴 효종의 글귀 ‘일모도원 지통재심(日暮道遠 至痛在心:해는 저물고 갈 길은 먼데 지극한 아픔이 마음속에 있네)’, 낭선군 이우가 쓴 ‘조종암(朝宗巖:임금을 뵈이는 바위)’이란 글귀도 새겨져 있었다. 명나라 마지막 황제 의종의 글씨 ‘사무사(思無邪:'논어'에 나오는 구절로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는 의미)’도 보였다.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대보리 조종암. 전익진 기자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대보리 조종암. 전익진 기자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대보리 조종암. 전익진 기자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대보리 조종암. 전익진 기자

바위에 새겨진 글은 조선 숙종 10년(1684)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베풀어준 은혜와 병자호란 때 청나라로부터 당한 굴욕을 잊지 말자’는 뜻의 여러 글귀를 가평군수 이제두와 허격·백해명 등이 새겨 놓았다. 이후 조선 순조 4년(1804)에는 이런 유래를 적은 비석을 암벽 앞에 세운 뒤 단을 만들어 제사를 지내면서부터 ‘조종암’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비문은 조진관이 짓고 김달순이 썼다. 단의 이름은 큰 은혜를 갚는다는 의미로 대보단(大報壇)으로 지었다고 한다.

이후 순조 31년(1831)에는 명나라 구의사(병자호란 때 청에 잡혀간 봉림대군과 합심해 인조 23년 대군이 귀국할 때 조선으로 망명했던 명나라 사람들)의 후손이 조종암 인근에 대통행묘(大統行廟)를 세우고 명나라 태조와 구의사를 위한 제사를 지내오고 있다.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지금 세인들이 가장 뜨거운 논란 소재로 삼고 있는 것은 조종암 바위에 새겨진 ‘만절필동(萬折必東)’이란 글귀다.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는 지난 16일 언론 기고문에서 “고대 중국에서는 제후가 천자를 알현하는 일을 조종(朝宗)이라 한다. 만절필동은 황허(黄河) 강물이 수없이 꺾여도 결국은 동쪽으로 흐르는 것을 묘사하며 충신의 절개를 뜻한다. 의미가 확대되어 천자를 향한 제후들의 충성을 말한다”며 비판했다.
최 교수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노영민 주중) 대사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신임장을 제정하는 날 방명록에 ‘만절필동’이라는 글을 남겼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라고 반문했다.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대보리 조종암. 전익진 기자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대보리 조종암. 전익진 기자

이 논란에 대해 주중 한국대사관 측은 “만절필동의 원전상 의미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며 “노 대사는 한·중 관계가 우여곡절을 겪어도 반드시 좋아질 것이라는 의미로 쓴 것”이라고 해명했다.

가평 현지에서 만난 주민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한 60대 주민은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 정신을 담은 조종암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는 것은 지금의 시대 정신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다른 60대 주민은 “조선 시대 당시의 사상과 역사를 담은 소중한 역사 유산인 만큼 기념물로 지정해 보존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대보리 조종암. 전익진 기자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대보리 조종암. 전익진 기자

가평군 관계자는 “조종암이 경기도 기념물인 만큼 경기도와 가평군이 함께 주변 정비 등 관리를 맡고 있다”며 “지금도 매년 가을 구의사 후손들이 가평군문화원 관계자 등과 조종암 인근 대통행묘를 함께 찾아와 구의사를 위한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가평=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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