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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987' 김윤석 "올해의 마지막 선물이 될 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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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1987’ 김윤석 / 사진=전소윤(STUDIO 706)

‘1987’ 김윤석 / 사진=전소윤(STUDIO 706)

[매거진M] 김윤석(49)이 영화 '1987'(12월 27일 개봉, 장준환 감독)에서 연기한 박 처장은 폭력의 시대, 일그러진 공권력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의 은폐를 지시하는 대공수사처의 수장으로, 악랄한 일을 자행하면서도 자신이 애국자라 믿고 있는 사람이다. 이미 여러 영화에서 다양한 악인(惡人)을 연기해 온 김윤석에게도 박 처장은 간단치 않은 인물이었다. 1987년을 소환하고 조명하는 것이 그만큼 엄중한 일이기 때문이리라. 김윤석은 인터뷰 내내 한 마디 한 마디 말을 골라 신중하게 답했다.



━‘1987’ 시나리오의 첫인상은 어땠나. 
“장준환 감독과 개인적으로 친해서 초고부터 몇 가지 (수정) 버전을 보며 의견을 주고받았다. 일단 1987년 1월부터 6월까지 약 6개월을 집약시킨 이야기의 힘이 굉장했다. 87년 이전에 있었던 시대적 문제까지 6개월 안에 함축시켜놓은 것을 보고 무척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나도 87년에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그때의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박종철 열사부터 이한열 열사까지, 그분들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 우리가 하나 되어 정말로 밝은 세상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시나리오에 잘 나타나 있더라.”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고, 실존 인물의 이름이 그대로 등장한다. 다큐멘터리와 드라마 사이에서 어떤 톤을 취했을지 궁금하다. 
“영화를 보면 1월부터 6월까지 현실 자체가 굉장히 드라마틱하단 걸 알 수 있다. 우리가 영화에 어떤 터치를 하지 않아도 그것을 잘 집약시키는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는 집합체로서의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1987’

‘1987’

━박 처장에 대해 ‘시대의 어둠을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등장인물이란 것이 사실 개인을 넘어 어떤 의미를 갖고 있지 않나. 대공수사처장인 그는 소위 ‘멸공 방첩’의 선두에 있던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와 그가 이끈 조직의 굉장히 편협하고 왜곡된 가치관 자체가 시대의 어두운 자화상이었다.”

━박 처장이란 인물은 평안남도 지주 집안 출신에, 6·25전쟁 때 월남했고 그때 겪었던 고초로 ‘빨갱이’라면 치를 떤다. 영화는 그가 어쩌다 이런 악행을 저지르게 됐는지 설명하고 있는데. 
“우리가 겪었던 역사, 즉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쳐서 어떻게 이런 괴물이 탄생했는가를 탐구한다. 두 번 다시 이런 사람이 나오지 않기 위해, 이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 박 처장은 왜 그런 일을 저질렀을까 깊이 있는 접근이 필요했다. 그는 ‘타짜’(2006, 최동훈 감독)의 아귀나 ‘황해’(2010, 나홍진 감독)의 면가(면정학)처럼 캐릭터화된 인물은 아니니까.”

━시나리오 첫 장에 보면 박 처장이 대통령에게 ‘태산처럼 당당하게 거수경례를 한다’는 지문이 나온다. 이마도 드러냈는데 박 처장의 겉모습이 어떻게 보이길 바랬나. 
“박 처장의 모티브가 된 실제 인물의 자료가 별로 없었다. 자료가 없는 것부터 어두운 단면인데, 주변의 증언이나 남아있는 몇장의 사진을 참고했다. 우선 굉장한 거구더라. 머리를 모두 뒤로 넘겼고, 하관 쪽이 강조되는 인상이었다. 박 처장의 외향에 대해선 장 감독이 특별히 실제 인물과 닮도록 주문했을 정도로 철저히 준비했다. M(엠)자 이마라인을 만들었고, 아래 입속에 마우스피스를 껴서 하관을 두텁게 보이려고 했다.”

━부패한 공권력의 민낯을 보여준 대표적 말이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였다. 이 대사를 직접했는데, 어떻게 찍었나. 
“당시 신문 일간지마다 ‘탁 치니까 억’이란 헤드라인으로 다 도배됐었다. 관객들에게 이게 얼마나 난센스인지 보여주는 게 이 장면의 포인트였다.”

━대사를 끝에 얼버무리더라. 
“말하는 자기도 이상하거든. 사실 우리는 그 장면을 찍다가 헛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고, 그게 가능한 시대였구나 싶어서. 불과 30년 전 일인데 지금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하다.”

‘1987’ 김윤석 / 사진=전소윤(STUDIO 706)

‘1987’ 김윤석 / 사진=전소윤(STUDIO 706)

━1987년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나. 
“휴교. 대학생들이 모이면 집회를 하니까, 휴교령을 내렸다. 시험도 안 보고 리포트로 대체했다. 그러니 다들 학교 밑에 있는 막걸릿집에 모여있다가, ‘자, 가자. (집회) 한다더라’ 그러면 같이 하러 가고. 87년에 최루탄 냄새를 맡아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거다. 곳곳에서 데모가 일어났고, 결국 그것이 6.29 선언을 끌어냈다. 국민투표로 대통령을 뽑을 수 있는, 대통령 직선제를 획득한 거다. 이렇게 빨리 국민투표로 전환된 역사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하더라.”

━올해 1980년대를 다룬 영화로 ‘택시운전사’(8월 2일 개봉, 장훈 감독)가 있었다. ‘택시운전사’가 택시 운전기사 만복(송강호)이라는 시대의 빛을 따라가는 영화라면 ‘1987’은 박 처장이라는 시대의 어둠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 같았다. 
“그토록 단단했던 어둠을, 하나둘 개인이란 빛이 모여 무너뜨리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박 처장은 최 검사(하정우), 윤 기자, 한병용(유해진) 등 계속해서 누군가를 상대한다. 어떤 상대가 가장 힘들었나. 
“박 처장의 입장에서 보면 다 적들인 건데, 가장 상대하기 어려웠던 사람은 정작 조 반장이었다. 나의 심복이 나에게 반항할 때 가장 힘들더라. 어둠의 힘이 무너지고 있는 과정인데, 박 처장이 가장 흔들리는 장면이었다.”

‘1987’ 김윤석 / 사진=전소윤(STUDIO 706)

‘1987’ 김윤석 / 사진=전소윤(STUDIO 706)

━장준환 감독과는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2013, 이하 ‘화이’) 이후 다시 만났다. ‘화이’에서는 다음 세대를 가로막는 악의 상징, 석태를 연기했는데 ‘1987’에서도 거악을 담당한다. 왜 장 감독은 김윤석에게 이런 역할을 맡기는 걸까. 
“장 감독의 영화엔 늘 괴물이 등장한다. 그가 볼 때 이 괴물을 연기할 수 있는 사람이 지금 나밖에 없나보다(웃음).”

━장 감독의 괴물을 연기한다는 것은. 
“장 감독의 괴물은 악인이거나 악당은 아니더라. 빛과 어둠은 어떻게 보면 종이 한장 차이일 수 있다는 거다. 장 감독은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에 주목한다. 결국 그것은 인간이란 존재를 더 잘 알려는 것이다. 괴물이 나오지 않기 위해서, 괴물을 잘 알아야 한다는 것. 그래서 되게 어렵다. 굉장히 힘든 영화를 찍는 감독이다.”

━최근작인 ‘남한산성’(10월 3일 개봉, 황동혁 감독)에서 척화파 김상헌을 연기했는데, 차가운 불덩이를 보는 것 같았다. 언제나 그렇지만 김윤석이란 배우의 에너지는 스크린을 넘어 관객을 압도하고 만다.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나. 
“그런 캐릭터를 연기한 것뿐인데, 사실 연기든 뭐든 열정이 없으면 되는 일이 있을까. 차곡차곡 대학 시절부터 연극을 하면서 지금까지 왔던 것들, 세월이 흘러 이 바닥에서 연기자로 작업해 온 것들이 쌓여서 나온 것 아닐까. 어느 날 갑자기 ‘빡’ 나타난 것은 아닐 거고, 내가 평소엔 아주 나른하게 사는 사람이라(웃음). 모두가 자기만의 열정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연기자니까 연기로 나타나는 것이고.”

━‘1987’을 보러 온 관객들이 마음속에 무엇을 가져갔으면 좋겠나. 
“이 영화는 무엇을 안 가져가려도 안 가져갈 수 없는 영화다. 보따리를 비우고 오시면 거기에 정말로 유익한 선물을 집어 넣어드릴 거다. 12월 27일 개봉하니까 올해의 피날레다. 올해의 마지막 선물이 될 거다.”

김효은 기자 hyo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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