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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고통 느낀 분들께 깊은 사과 … 남은 소망은 병상 아들 손 잡아주는 것”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우리 사회의 다양화가 세계 속의 한류라는 문화융성의 꽃으로 활짝 피어간다는 관점에서 볼 때 제가 문화·예술의 특수성과 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미흡하지 않았나 반성했습니다.” 19일 열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김기춘(78)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이같이 말했다. 최후진술 과정에서였다. 그는 그러면서 정부에 반대하는 단체의 리스트를 만들어 지원을 배제하라고 지시한 적은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항소심서 눈물의 최후진술

서울고법 형사합의3부 심리로 열린 재판에서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1심과 마찬가지로 김 전 실장에 대해 징역 7년, 조윤선(51) 전 정무수석에 대해 징역 6년을 구형했다. 지난 7월 1심 재판부는 김 전 실장에게 징역 3년, 조 전 수석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용복 특검보는 “피고인들은 권력 최상층부에서 단지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문화·예술인을 종북 세력으로 몰고 지원을 배제했다. 피고인들은 북한 공산주의자들과 싸운다는 명분 아래 그들과 똑같은 짓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구형과 변호인들의 최후변론이 끝난 뒤 피고인들이 입을 열었다. 김 전 실장은 “북한과 종북 세력으로부터 이 나라를 지키는 것이 공직자의 사명이라는 제 생각이 결코 틀리지 않다고 믿습니다만 재판을 받으면서 위험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건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 자리를 빌려 불편과 고통을 느낀 분들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혐의는 부인했다. “제가 회의에서 한 발언들은 대한민국에 위협이 되는 각종 활동에 국민의 세금을 지원할 수 없다는 나름의 국가 수호를 위한 소신이었다. 일신상 이익이나 정파의 이익을 위해 그런 발언을 결단코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후진술 말미에 “남은 소망은 늙은 아내와 4년 동안 병석에 누워 있는 쉰세 살 된 아들의 손을 다시 한번 잡아주고 ‘못난 남편과 아비를 만나 고생 많았다’고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는 것이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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