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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 전문가들 분석···종현의 유서 내용 보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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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현의 유서로 본 우울증 

아이돌그룹 샤이니의 고(故) 종현(본명 김종현)의 유서가 동료 가수의 SNS를 통해 19일 공개됐다. 전문가들은 “전형적인 우울증 환자의 인지적 오류가 담긴 유서”라고 분석했다. 자칫 우울증 환자의 모방 자살을 유발할 우려도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자책은 우울증 환자의 인지 오류"

[일러스트=강일구]

[일러스트=강일구]

신의진 연세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출구 없는 괴로움 속에서 혼자 뱅글뱅글 도는, 전형적인 우울증 환자의 인지적 오류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스스로 좀 더 나은 상태로 올라가지 못하고 자책하는 대목이나, 생각을 바꿔보면 어떻겠냐는 말에 '내가 못하겠는데 어떡해'라는 반응을 보인 부분이 그렇다"고 설명했다. 유서에는 '난 속에서부터 고장 났다' '난 나 때문에 아프다' 등 자책하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는 또 유서에서 '눈치채주길 바랐지만 아무도 몰랐다', '이미 이야기했잖아. 혹시 흘려들은 거 아니야' 등 고통을 이해받지 못해 답답함을 호소했다. 서천석 행복한아이연구소 소장은 "유서 내용으로 추측건대, 상담이나 주변 사람들과 대화에서 '그 문제를 왜 그렇게 깊게 생각하느냐' '남들도 다 이겨내지 않느냐'는 식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그런 말이 더 상처가 된다. 나는 이런 작은 일도 못 이겨내는구나, 나는 애초부터 글러 먹었구나 생각하게 한다"고 말했다.

"자살 예방 팬들 성숙한 대응"

스스로 생을 마감한 스타의 유서는 비슷한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는 위험한 자극이 될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서 소장은 "종현을 사랑했던 팬들에게는 그를 애도하는 게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부모나 주변 사람들이 충분히 슬퍼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에 우울해 하고, 의욕 없어 하고, 삶에서 즐거움을 찾지 못하던 경우가 아니라면 사건을 계기로 갑자기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팬 카페 등에는 소식이 전해진 후 자살예방 핫라인이나 조심하자는 이야기가 올라왔다고 한다. 기성세대나 언론에서는 보도 준칙을 어기는 자극적인 보도가 나오는데 이 친구들이 오히려 성숙하게 대응하고 있어 대견했다. 이런 것들을 격려해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우울증을 앓고 있거나 조금이라도 자살 위험이 있었던 사람은 주변에서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신의진 교수는 "만약 유서를 보면서 '내 마음도 이런데…'라고 강하게 공감이 되면 정신과 전문의를 찾아가서 원인이 뭔지 진단을 받아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살과 유서를 미화하거나 호기심을 자아내는 이야깃거리로 취급하는 것도 삼가야 할 태도다.

"한국의 약물치료 거부감 너무 커"

[일러스트 강일구]

[일러스트 강일구]

전문가들은 약물에 대해 거부감이 큰 사회 분위기도 우울증 치료를 어렵게 하는 장애물이라고 지적한다. 홍창형 중앙자살예방센터장 겸 아주대병원 교수는 "항우울제는 중독이나 내성이 생기는 향정신성의약품이 아닌데도 한국은 약을 먹는데 거부감이 크다. 우리나라 항우울제 소비량은 OECD 평균의 3분의 1 수준, 칠레 다음으로 적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또 "우울증 치료에 1달러를 투자하면 사회경제적 비용 4달러를 벌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번 사건에서 보듯 우울증이 자살로 이어질 수 있음에 경각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의사들은 약물치료의 필요성을 위궤양에 빗대 설명한다. 위염 정도라면 약을 먹지 않고 식단 관리와 규칙적인 생활로 극복이 되지만, 위궤양이 되면 약을 먹지 않고서는 통증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스트레스 때문에 위액이 과다 분비되어 더 악화한다. 마찬가지로 우울증은 질병 자체가 병을 악화시키는 성격이 있기 때문에, 약물치료로 상태를 조금 호전시키는 것만으로도 극복할 힘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현 기자 lee.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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