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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몰카, 옛 애인이 뿌린 영상 ···앞으론 삭제 청구 하세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A씨(27·여)는 3년 전쯤 누군가 화장실에 설치한 몰래카메라에 찍혔다. 영상을 지워주는 업체에 300만원을 주고 삭제를 부탁했다. 한동안 사라진 듯했던 동영상은 1년여 만에 다시 인터넷에 등장해 A씨를 곤혹스럽게 했다. A씨는 동영상을 볼 때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개인영상정보보호 법률안 국무회의 통과, 곧 국회제출 #동영상 관련 개인 정보 보호 현행 보다 대폭 강화 #화장실 등 사생활 침해 우려높은 곳 영상촬영기기 설치 금지 #본인 모르게 촬영된 영상은 삭제 청구…정당한 이유없이 거부시 과태료 #업무목적으로 개인영상 촬영할 경우 촬영사실 반드시 표시해야

지난 9월 B씨(30·여)는 옛 남자친구와 촬영한 동영상이 인터넷에 퍼졌다는 얘기를 듣고 충격에 빠졌다. 인터넷을 뒤져 문제의 동영상을 찾아냈지만 이미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타고 사방으로 퍼져 나간 뒤였다. 이 영상은 비슷한 제목으로 다른 사이트에서 또 발견됐다. B씨는 ‘디지털 장의사’로 불리는 전문업체를 수소문해 수백만원을 들여 동영상을 삭제해야 했다.

지난 9월 21일 광주 서구 치평동 지하철 상무역 공중화장실에서 경찰관이 전파탐지기로 '몰카' 설치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9월 21일 광주 서구 치평동 지하철 상무역 공중화장실에서 경찰관이 전파탐지기로 '몰카' 설치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처럼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 동영상 피해를 막기 위해 앞으로 개인 영상정보 촬영과 유통에 대한 관리·처벌이 대폭 강화된다. 화장실·탈의실·목욕실 등 사생활 침해 우려가 높은 장소에는 영상 촬영기기를 설치·부착하는 행위 자체가 금지된다. 본인도 모르게 촬영된 영상에 대해 열람이나 삭제를 청구할 권리가 강화된다.

행정안전부는 19일 이런 내용을 담은 ‘개인영상정보의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곧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IP카메라 해킹에 의한 사생활 노출. [사진 경남경찰청]

IP카메라 해킹에 의한 사생활 노출. [사진 경남경찰청]

정보통신기술 발달로 개인 영상정보가 손쉽게 촬영·유포돼 사생활을 침해하는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다. 행안부에 따르면 불법 촬영·유포 등 디지털 성범죄는 2012년 2400건에서 2016년 5158건으로 2배 이상으로 늘었다.

그래픽= 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 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행안부 개인정보보호협력과 이윤숙 과장은 “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 등 기존 법률에서 동영상 관련 미비점을 보완하고 관리·처벌 규정을 강화한 특별법이라고 이해하면 된다”며 “네크워크 카메라와 드론 등 기존 법률에 없던 촬영 기기 명칭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몰카 일러스트. [연합뉴스]

몰카 일러스트. [연합뉴스]

 이 법안은 공공이든 민간이든 업무를 목적으로 개인 영상정보를 처리하는 기관·법인·단체 등에 적용된다. 사적인 목적의 경우엔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법 적용을 제외한다.

화장실 등 사생활 침해 우려가 높은 곳에는 고정형(CCTV·네트워크 카메라 등)이든 이동형(스마트폰·디지털카메라 등)이든 영상 촬영기기를 설치·부착하는 행위가 금지된다. 위반할 경우엔 5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지금까지는 몰래카메라 설치 행위만으론 처벌이 안 됐다. 몰래카메라에 특정 신체 부위 등이 담겨 있을 경우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등에 따라 처벌된다. 또 업무를 목적으로 개인 영상정보를 촬영할 경우에는 촬영 사실을 반드시 표시하도록 의무화했다. 개인 영상정보가 도난·유출·위조·변조·훼손되지 않도록 안전성을 확보해야 한다.

지난 9월 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디지털 성범죄 피해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회의 [연합뉴스]

지난 9월 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디지털 성범죄 피해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회의 [연합뉴스]

본인 모르게 개인 영상정보가 촬영되거나 인터넷에 공개된 경우 해당 영상의 촬영자 또는 인터넷 포털 등에 게시한 자에게 열람이나 삭제를 청구할 수 있고 거부하면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지금은 원치 않는 영상이 찍혔을 경우 포털이나 개인 블로거, 관련 기업 등에 열람·삭제를 요구하기 어려운 면이 있는데 이 법안은 열람·삭제 권리를 보장하고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할 경우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사건·사고 발생 시 주요 증거자료로 활용되는 영상정보의 특성을 고려해 해당 영상과 정당한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에게는 열람 등을 청구할 권리도 보장한다.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폐쇄회로 TV(CCTV) 관제 시설은 매년 자체 점검 등 안전조치가 의무화된다. 민간 CCTV 시설도 안전조치 이행 여부를 매년 점검할 계획이다. 김부겸 행안부 장관은 “이번 법률 제정을 통해 사생활 침해가 사라지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영상촬영 문화가 정착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염태정 기자, 세종=신진호 기자 yo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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