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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은 익명, 돈은 국가가…日 '비밀출산' 도입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비밀출산'제도 도입하려는 日 병원, 왜?

“우리 딸이 임신했을 때 ‘비밀 출산’ 제도가 있었더라면 이용했을 텐데…”

'베이비박스' 10년 운영 구마모토시 지케이병원 #'나홀로 출산' 산모ㆍ아이 위험 노출 #병원에서 익명 출산 '비밀 출산'도입 검토 #"무책임한 출산" 비판, 제도 지원책도 필요

고등학생 딸이 원치않는 임신을 했던 한 40대 일본 여성은 ‘비밀출산’ 제도에 대해 아쉽다는 듯 말했다. 딸은 사귀던 남성에게 강제로 성관계를 당해 임신을 했다. 학교에서 퇴학당할 것이 두려워 주변에 말도 못하고, 행정기관에서도 처리해주지 않을 것 같아 병원 검진도 받지 못했다.

이처럼 예기치 못한 임신으로 괴로워하는 산모를 위해 일본 구마모토(熊本)시가 ‘비밀출산’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나섰다. 최근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구마모토시 지케이(慈恵)병원은 2007년부터 ‘베이비 박스’ 즉 버려지는 아이를 받아주는 제도를 시행해왔다. 그런데 산모가 병원이 아닌 집이나 자동차 등에서 ‘나홀로 출산’을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베이비 박스’로 들어오는 아이의 출산 상황을 보니, 2014년에는 80%가 ‘나홀로 출산’으로 태어난 아이였다.

 서울 난곡동 주사랑공동체의집교회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이. 자원봉사자가 이들을 돌보고 있다. [중앙포토]

서울 난곡동 주사랑공동체의집교회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이. 자원봉사자가 이들을 돌보고 있다. [중앙포토]

지케이병원 하스다 켄(蓮田健) 부원장은 “10년 간 ’베이비 박스’ 제도를 운영해보니 집에서 출산하는 등 ‘나홀로 출산’의 문제가 생겼다. ‘나홀로 출산’은 산모와 아이, 모두에게 위험하다”며 ‘비밀출산’ 제도를 착안한 이유를 설명했다.
‘베이비 박스’를 찾는 산모들은 임신, 출산 사실을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이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을 마련해주겠다는 취지다. 하스다 타이지(蓮田 太二) 이사장은 “출산은 대량의 출혈을 동반한다. 집에서 혼자 낳는 것은 무척 위험하다”고 말했다.
‘베이비 박스’ 개설과 동시에 시작한 ‘24시간 임신상담전화’ 건수도 첫 해에는 500건이었지만 지금은 6000건을 넘는다고 한다. 예기치 못한 임신으로 고립된 여성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밀출산’ 제도는 독일에서 2013년 법률이 제정돼, 2014년부터 실시되고 있다. 산모는 상담기관에 실명으로 상담을 하고 신원관련 서류를 봉인해 맡겨둔다. 출산은 의료기관에서 익명으로 하고, 출산비용은 국가가 부담한다. 아이는 원칙적으로 16세가 되면 자신의 출신을 알 수 있다. 예기치못한 임신에 의한 신생아 유기, 살해를 막기 위해 익명으로 아이를 맡아주는 ‘베이비 박스’를 설치하거나 장래까지 익명을 유지해 출산이 가능하도록 해왔으나, 아이의 ‘출신을 알 권리’를 지켜준다는 관점에서 비밀출산제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다만 ‘비밀출산’은 법적 제도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 일본에선 아이가 나중에 호적을 만들기가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그동안은 부모의 신원을 모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홀로 호적을 만드는 방법을 택해왔지만, ‘비밀출산’으로 태어난 아이는 부모의 신원을 완전히 모르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또 산모 신원의 익명성을 장기간 어떻게 지킬 것인지 등도 과제로 꼽힌다.
지케이병원과 연계해 '베이비 박스'를 운영해 온 구마모토시 오니시 가즈후미(大西一史) 시장은 “한 지자체, 한 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호소하며, 후생노동성에 '비밀출산' 제도에 대해 법 정비 검토를 요청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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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제도가 무책임한 출산을 증가시킨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오사카대 유카다니 후미오(床谷文雄) 교수에 의하면 독일에선 2016년 9월까지 약 2년 반 동안 ‘비밀출산’ 상담을 한 1200명 가운데, 전문가와 상담을 통해 20%가 '비밀출산'을 선택했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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