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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혼밥’ 사진은 왜 비난을 받아야 했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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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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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장면을 보자. 문재인 대통령이 베이징의 한 평범한 식당에서 아침 식사로 유탸오(油条)를 먹고 있다. 중국을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혼밥'했다고 비난할 때 자주 등장한다. '의전 홀대'의 상징처럼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아침 식사 [사진 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의 아침 식사 [사진 중앙포토]

그런데 중국 미디어에서는 이 사진이 '한국 대통령이 서민적인 모습을 보였다'며 긍정적인 측면이 강조된다. 인터넷에 '문재인'을 치면 연관 검색어로 '문재인의 아침 식사(早餐)'가 등장할 정도다. 똑같은 사진인데 중국에서는 '중국인의 마음을 움직인 장면'으로 비치는 데 반해 정작 한국에서는 '혼밥의 외로움'으로 비난받는다.

'문재인 아침 식사'를 입력해 나온 중국 모바일 사이트 캡처 [사진 차이나랩]

'문재인 아침 식사'를 입력해 나온 중국 모바일 사이트 캡처 [사진 차이나랩]

의전 문제는 문 대통령 방문 내내 언론에 오르내린 주제다. 혼밥, 기자 폭행,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무례, 베이징에 있었던 리커창의 식사 거부 등 홀대를 당했다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삼전도 외교'를 거론하고, 반대 진영에서는 폭행당한 기자를 '기레기'라고 공격한다. 대통령 정상외교조차 진영 논리에 휘둘리고 있다.

문 대통령을 툭툭 친 왕이 외교부장의 무례? [사진 중앙포토]

문 대통령을 툭툭 친 왕이 외교부장의 무례? [사진 중앙포토]

이래도 되는가?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청와대는 솔직하지 못했고, 외교부는 역량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청와대가 아무리 부인을 하더라도, 중국 측의 의전에 문제가 있었던 건 사실이다. 국빈으로 방문한 대통령이 겨우 2번 그들과 밥을 먹었다는 건 외교 참사에 가까운 일이다. 우리는 왜 그랬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청와대는 솔직하게 말했어야 했다. 이런 '수모'를 당하면서도 중국 방문을 강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이다.

이번 방문은 말 그대로 '얼음을 깨는 여행(破氷之旅)'이 목표였다. 얼어붙었던 양국 관계, 끊긴 정상외교를 복원시키는데 일차적인 목적이 있었다. 그래서 다소 의전상에 무리가 있어도 진행했을 것으로 믿고 싶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굴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굳이 머리 숙이고 들어갈 필요가 있었느냐'는 주장이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이웃 나라, 그것도 정치 경제적으로 협력이 필요한 나라와 언제까지 담을 쌓고 살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들과 척지고 산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청와대는 의전 논란에 대해 하나하나 변명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수모'를 당하더라도 한반도 평화 관리와 경제 운용을 위해 가야 했다"라고 자신 있게 설명해야 한다.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무거운 결단을 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이다.

일각에서는 평창 올림픽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바람에 잃은 게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진 청와대 홈페이지]

일각에서는 평창 올림픽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바람에 잃은 게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진 청와대 홈페이지]

이번 의전 참사는 우리나라 대중 외교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다. 가장 큰 문제는 외교 범위가 중국 외교부에 그친다는 것이다. 당(黨)이나 군사 쪽에는 외교 역량이 미치지 못한다.

어느 나라고 외교부는 나라 사이의 문제를 외교적으로 풀려는 성향이 강한 집단이다. 이번 정상회담을 놓고도 한국과 중국의 외교 당국은 성실하게 논의를 진행했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사드는 외교부가 아닌 당이나 국방 쪽이 주도권을 가진 사안이다. 당이나 국방부가 외교 일정에 브레이크를 걸었을 가능성이 높다.

방문 이틀 전인 11일 베이징에서 만났던 한국대사관 고위 인사는 "아직도 일부 일정이 정해지지 않았고, 저쪽 외교부도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가 다른 기관과 협의 중이라는 얘기다.

외교부는 우리 외교 역량이 한계가 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 다음 '중국의 정치 일정상 지금이 아니면 안 되었기에 다소 무리가 있어도 성급하게 일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한다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중국은 곧 경제공작회의가 열리고, 내년 넘어가면 3월 전인대 체제로 넘어간다. 설(구정)도 끼어있다. 지금 가지 않으면 안 될 이유다. 너무 서둘러 추진하다 보니 당과 군 쪽의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했고, 그래서 의전에 문제가 발생했다고 솔직하게 얘기할 수는 없을까….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얼후 연습을 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얼후 연습을 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이번 방문은 어느 쪽으로 보느냐에 따라 기대 이상의 결과를 냈다고도 볼 수 있다. 얼음을 깬 게 가장 큰 성과다. 정상외교도 복원됐다. 경제 일선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의전 문제로 성과가 흐트러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다고 기자 폭행 문제를 적당히 넘어가자는 게 아니다. 이 사건은 충분히 해명될 때까지 중국 정부의 해결책을 끈질기게 요구해야 한다. 다만 기자 폭행 사건이 정상회담 성과와 엉키어 둘 다 마이너스 효과를 보는, 그런 상황은 막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제 우리는 한중 정상회담에서 불거진 파편을 어떻게 수습하느냐의 과제를 안게 됐다. 중국 측과 합의한 4개 원칙에 대해 미국의 의구심을 어떻게 풀지, 한-중 정상회담 분위기 조성의 수단으로 난징학살을 끌어들인 것에 대해 일본을 어떻게 설득시킬지 등은 새로운 숙제다. 더 강해진 중국 기업과 어떻게 협력할지도 연구가 필요하다.

'혼밥'에 묶여있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다.

차이나랩 한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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