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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청관계 첫 시험대 된 근로시간 단축... 청와대 “낮은수준의 출발이라도”, 당 강경파 “대법판결 기다려야”

중앙일보

입력

근로시간 측정기준과 해석변화

근로시간 측정기준과 해석변화

근로시간 단축에 맞물린 휴일 연장근로 ‘중복 할증’ 문제를 두고 여당과 청와대가 미묘한 이견을 보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은 늦출 수 없는 과제”라며 입법을 촉구하고 있으나 더불어민주당에선 의원들 간 합의도 이루지 못한 상태라 사실상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연내 처리는 쉽지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를 두고 근로시간 단축이 당·청 관계의 첫 시험대가 됐다는 분석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야 3당 간사는 지난달 28일 ^주당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고 ^휴일에 연장근로를 할 경우 휴일수당(50% 가산)과 연장수당(50%)을 동시 인정(200%, 중복할증)할 게 아니라 하나만 인정해 150%의 임금을 주는 쪽으로 근로기준법을 개정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법안소위에서 관련 내용이 처리되지 못했다. 합의 중 휴일 연장근로 수당이 문제가 됐다. 여당 일부 의원과 정의당이 “휴일 연장근로를 할 경우 수당을 모두 인정해 통상임금의 200%를 지불해야 한다”고 반발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그러자 근로시간 단축만이라도 우선 시행하자고 압박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은 더는 늦출 수 없는 과제”라고 강조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도 12일 당·정·청 회의에서 “환노위 여야 3당 간사가 합의한 대로 시행하자”고 강조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도 15일 기자들에게 “입법 사항인데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 수는 없는 문제”라면서도 “일단 낮은 수준이라도 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의원들이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고용노동소위원회에서 근로시간 단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 전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임현동 기자/20171128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의원들이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고용노동소위원회에서 근로시간 단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 전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임현동 기자/20171128

이에 비해 민주당은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박홍근 원내수석부대표는 “청와대의 입장은 존중하지만, 당은 여야 의견, 노동계와 경영계의 입장을 다 아울러 고민해야 할 수밖에 없다”며 “이해당사자 간, 의원들 간 접점이 있는지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당장 당내 의원들, 정의당 등과 합의가 필요하다. 환노위 소속인 한국노총 위원장 출신 민주당 이용득 의원은 “이미 고등법원이 휴일 연장근로 관련한 사건에서 중복할증을 대부분 인정하고 있고, 내년 초에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진다”며 “사법부의 최종 판결을 앞두고 입법부가 법 개정 논의를 서두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강병원 의원은 “현행법대로라면 주당 52시간 노동, 휴일연장근로에는 중복할증을 하게 돼 있는데 잘못된 행정해석(연장근로를 주당 68시간으로 인정) 때문에 논란이 된 것”이라며 “우리 당이 지난정부때부터 행정해석을 폐기하라고 주장했고, 김영주 고용노동부장관이 이에 대해 사과까지 했는데 이제 와 휴일연장근로수당을 인정하지 않도록 법 개정을 하자는 것은 개악”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주요 지지세력인 노동조합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노총,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중복할증을 주장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14일 추미애 대표가 2009년 민주당 반대 무릅쓰고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을 빗대어 “근로기준법이 제2의 추미애 법이란 오명 쓰도록 할 것인지 청와대, 정부, 민주당은 답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환노위 관계자는 “이미 근로기준법의 연내처리는 물 건너갔다. 노동계, 재계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 청와대가 요구한다고 해서 서두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그동안 순항한 당·청 관계가 ‘중복할증’을 두고 긴장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라크 파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문제 등으로 당·청 관계가 갈등을 빚었던 노무현 정부와 달리 문재인 정부는 현재까지 별다른 ‘소음’이 없는 상태였다.

채윤경 기자 pch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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