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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한·중 정상회담은 중국 정책 성찰의 계기 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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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희옥 성균관대 정외과 교수·성균중국연구소장

이희옥 성균관대 정외과 교수·성균중국연구소장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을 국빈 방문해 새 정부 출범 이후 시진핑 국가주석과 세 번째 정상회담을 했다. 그 결과는 공동성명 대신 각각의 언론 브리핑으로 발표했다. 이는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도 있지만 한·미 동맹, 일본 문제, 한반도 통일, 북핵 등의 변수가 한·중 관계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외부 환경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양국은 공동 이익을 위해 각각의 정책을 변화시키는 국제협력의 기본으로 돌아가 주요 현안과 미래 한·중 관계의 대강에 대해 합의했다고 볼 수 있다.

얼음 깨는 데는 성공했지만 #물밑의 많은 복병도 확인돼 #강약 조절의 섬세함과 함께 #판을 읽는 전략적 지혜 중요

우선 남북관계 개선이 한반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며, 그 방식도 평화적·외교적 해법이 중요하다고 합의했다. 이것은 한·중이 한·미 정상회담과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도 그 목표는 대화에 있다는 점을 확인한 연장선에 있다. 특히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북한 핵·미사일 실험을 잠정 중단하자는 이른바 ‘쌍중단’,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를 동시에 논의하자는 ‘쌍궤병행’이 교착상태에 있고, 북·중 관계가 악화한 상황에서 남북관계 개선 카드를 활용하는 것이 정책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판단한 결과다. 여기에 북한이 ‘핵 무력 건설’을 완성했다고 선언한 상태에서 저강도 도발을 통해 긴장을 조성하거나 평화 공존을 걸고 대화 공세를 전환할 수도 있는 ‘진실의 순간’에 대한 대비도 필요했을 것이다. 한국이 중국에 대해 ‘더 많은 제재’를 요구하는 대신 ‘더 많은 협력’을 강조한 맥락도 여기에 있었다.

둘째,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 양국은 물밑 대화를 거쳐 민감도를 낮추는 데 성공했다. 사실 한국은 사드 배치가 북핵 위협과 긴밀하게 연계된 것으로 보지만 중국은 북핵과 사드가 별개라는 입장을 고수하는 상황에서 쟁점을 남겨둔 채 전략적 소통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추가 사드 배치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고, 문 대통령도 방중 기간 “한·중 관계가 외부 갈등 요인에 흔들리게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중국도 한·중 관계의 모든 현안이 ‘사드’로 환원되며 중국의 한반도 정책에 부담으로 작용한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출구전략을 모색하고자 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이 “누구나 알고 있는 이유”라고 사드 문제를 에둘러 표현하며 절충점을 찾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시론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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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한·중 수교 이후 양자 관계는 전방위적으로 발전해 왔지만, 상위 정치(high politics)가 흔들릴 때마다 경제협력과 인문교류가 어려움을 겪고, 정치·안보 리스크가 경제 리스크로 전환되는 현상도 나타났다. 이것은 한·중 간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라는 외교 형식을 구축했지만 내실을 채우지 못했다는 점을 방증한다. 정상회담에서 중국의 경제 보복 해제의 실마리를 찾고 잠재력이 큰 경제·무역·에너지·보건 등 7개의 양해각서를 교환하는 한편, 핫라인을 개통해 위기관리시스템을 확보한 것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양국의 인식 차이가 프레임으로 고착되면서 막대한 외교 비용을 지불하는 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체감할 수 있고 쌍방향적이며, 미래지향적이면서 지속가능한 전략대화 기제를 얼마나 내실 있게 운영하는가에 달려 있다.

이번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얼음을 깨는(破氷) 데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물밑에 많은 복병이 숨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사드 배치 갈등을 ‘봉합’할 수 있는 궤도로 올려놓았지만 한·중 관계가 과거의 좋은 관계로 그대로 돌아가기 어렵고, 재발 위험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는 점도 확인했다. 특히 현재 한·중 관계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모든 문제를 예방하는 것이 어려워졌고, 양국 모두 여론의 영향을 크게 받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전략 협력의 공간도 위축됐다.

특히 중국의 한반도 정책이 미국이 원하는 대로 따라가지 않을 것을 분명히 하면서 미·중의 경쟁과 협력 양상이 고스란히 한반도에 투사될 개연성이 높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관계와 한·중 관계의 상관성을 높이면서 한국 외교의 중심을 지켜야 하는 고차방정식의 숙제를 받아들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중 관계 발전을 조급하게 서두르는 것은 금물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모든 지도자는 피아노를 쳐야 한다’는 말처럼 강약을 조절하는 섬세함과 열 손가락 모두를 움직이는 판을 읽는 전략적 지혜가 중요해졌다. 따라서 정상회담의 성과를 정부가 나서서 120%를 거두었다고 자평할 일이 아니다. 빛나지만 번들거리지 않게 하는 ‘광이불요(光而不耀)’의 메시지 관리가 중요하고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대중국 정책 전반을 성찰의 칼날 위에 올려놓고 손질하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이희옥 성균관대 정외과 교수·성균중국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