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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먹튀’ 사학법이 너무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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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양영유
양영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양영유 논설위원

양영유 논설위원

부부 교사가 목욕탕을 운영해 큰돈을 번다. 남편은 고교 생물교사, 부인은 가정교사였다. 부부는 1977년 두 사람 이름을 딴 학교법인 ‘홍복학원’ 설립인가를 받는다. 그 후 80년대에 고교 3개, 90년대부터는 서남대·광양보건대·한려대·광주예술대 등 6개 대학을 세웠다. 교사 겸 목욕탕 주인이 사학 재벌로 등극한 것이다.

며칠 전 폐교 통보가 내려진 전북 남원에 있는 서남대 설립자 이홍하(79)씨와 그의 부인 서복영(76)씨 얘기다. 비법은 ‘돌려막기’. 학교 하나를 세워 등록금이 들어오면 그 돈을 학생에게 투자하지 않고 땅을 산 뒤 다른 학교를 짓는 문어발식 수법이었다. 일정 요건만 갖추면 설립을 허가해 준 교육부의 설립준칙주의와 허술한 사후 관리가 비리 자양분이 된 것이다.

학교는 속속 부실 덩어리가 됐다. 시설투자는 뒷전이고 등록금은 돈벌이 수단에 불과했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이씨는 서남대 333억원 등 4개 대학에서 1000억원 이상을 횡령해 2013년 9년형을 선고받고 옥살이 중이다. 서남대도 내년 2월 28일 자로 폐교된다. 학교 측이 이씨의 횡령액 333억원을 회수하고, 체불임금 173억원을 해소하라는 교육부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못해서다.

한데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다. 1000억원이 넘는 서남대 잔여 재산이 고스란히 이씨 가족이 운영하는 또 다른 학교법인으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횡령액 333억원 보전 의무도 사라진다. 현행 사립학교법에 해산한 학교의 남은 재산은 학교 정관이 정한 자에게 귀속시킬 수 있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그런 규정을 놓치지 않았다. 각 학교의 법인 운영자를 가족 명의로 해 놓고 줄줄이 정관으로 엮어 놓았다.

이런 ‘먹튀’ 사학법을 바로잡으려는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돼 있다. 비리 사학의 잔여 재산은 국가가 회수하고, 그 돈을 폐교 대학 구성원의 신분 보호 등에 활용하자는 내용이다. 그런데 의원들이 가관이다. 지역구가 전북인 의원들은 폐교를 반대하고,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사학의 재산권을 침해할 수 없다며 법 개정에 반대한다. 학생과 교직원에게 피눈물을 쏟게 한 비리 사학 일가가 떵떵거리며 살도록 학교 재산을 몽땅 넘겨주는 게 옳은 일일까. ‘먹튀’ 사학법 개정 국민청원운동이 벌어져야 의원들이 정신 차릴 듯싶다.

양영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