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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치’ 9달 만에 1000만대 판매 … 부활한 닌텐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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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모바일 게임이 급성장하는 시장 상황을 제대로 읽지 못해 몰락하는 듯했던 게임 명가가 화려하게 부활했다. 오히려 가진 강점들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업계 트렌드마저 극복하고 전 세계 소비자를 사로잡았다. 일본 게임업체 닌텐도 얘기다.

TV에 연결하거나 휴대해서도 즐겨 #슈퍼마리오 등 친숙한 캐릭터 활용 #남녀노소 온 가족이 즐기는 게임 #올해 매출 9조원 넘어 작년의 두 배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CNBC방송은 닌텐도의 가정용 게임기 ‘스위치(Switch)’가 글로벌 판매량 1000만대 를 돌파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3월 북미와 유럽·일본 등지에서 출시됐으니 9개월 만이다. 경쟁사인 일본 소니의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4(PS4)’가 2013년 출시돼 9개월 만에 1000만대 판매를 기록한 것과 비슷한 기세다.

스위치는 한국에선 지난달 예약 주문을 받고 이달 정식 발매됐는데 해외처럼 폭발적인 인기다. 한국닌텐도는 최근 스위치가 국내 출시 3일 만에 판매량 5만5000대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게임 업계는 이를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인다. 국내외 모두 2010년대 들어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한 모바일 게임이 콘솔(TV에 연결해서 즐기는 방식) 게임을 누른 상태에서 나온 ‘뜻밖의 성과’여서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업계 관계자는 “지난 2~3년 사이 모바일 게임이 더 큰 시장 장악력을 갖게 된 걸 고려하면 스위치는 4년 전 PS4보다 사실상 더 빠른 상승세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는 닌텐도의 최근 실적 추이에서도 나타난다. 닌텐도는 2008년 1조8400억 엔의 매출과 5500억 엔의 영업이익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본격 활성화한 2011년부터 3년 연속 적자에 시달릴 만큼 심각한 침체에 빠졌다.

미국 업체와 손잡고 만든 증강현실(AR) 모바일 게임 ‘포켓몬고’가 지난해 흥행에 성공하면서 반등하긴 했지만, 부활은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닌텐도는 지난 10월 4890억 엔이었던 지난해 매출이 올해는 9600억엔(약 9조3283억원)으로 배로 늘 것이라고 전망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93억엔에서 1200억엔(약 1조1660억원)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스위치의 인기 비결을 세 갈래로 분석한다. 우선 하드웨어(HW) 혁신이다. 스위치는 PS4만큼 그래픽 면에서 고성능을 추구하진 않았지만, 콘솔임에도 모바일 수요를 흡수할 수 있도록 하드웨어 성능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뒀다. 그 결과 평소에는 TV로 즐기다가, 외출할 땐 스마트폰처럼 휴대해서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소형·경량화한 하이브리드 제품이 탄생했다.

소프트웨어(SW)에선 지식재산권(IP)의 힘이 주효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높은 완성도로 입소문이 난 스위치 전용 소프트웨어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과 ‘슈퍼마리오 오디세이’는 닌텐도가 1980년대에 자체 개발한 이후 수십 년간 공들여 지켜온 IP 기반 게임이다. 기존에 친숙했던 스토리·캐릭터에다 유행하는 오픈월드(가상세계 안에서 행동의 제약이 거의 없는 높은 자유도의 게임) 방식을 접목해 “두 게임을 해보기 위해 스위치를 구매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여기에 닌텐도 특유의 타깃팅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게임에 집중하는 전략이 통했다는 분석이다. 정보기술 분야 전문 작가인 김정남 씨는 2010년 출간된 책 ‘닌텐도처럼 창조한다는 것’에서 “일반 게임 회사는 18~35세 젊은 남성을 타깃으로 삼지만 닌텐도는 타깃을 5~95세 남녀라고 밝힐 만큼 세분화해서 좁히지 않는 기업 문화가 있다”고 했다. 이번에도 10~30대 남성이 선호하는 폭력·선정성이 있는 게임 대신, 귀엽고 아기자기한 게임 위주로 접근해 게임에 관심 없던 여성 등 온가족이 소비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김경식 호서대 교수는 “시장 상황이 달라졌다고 기존 강점을 포기하는 대신 새 매력 요소를 추가하는 등의 극대화 노력으로 맞서 성공한 사례”라며 “중국 게임업체들의 베끼기와 물량 공세로 쉽지 않은 상황에 처한 국내 기업들이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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