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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자존의 새 시대 개막" 선언|신·구 대통령 이-취임하던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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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노모·장모에 큰 절 올려>
13대 대통령직 수행 첫날 노태우 대통령의 아침은 평소 연희 동 자택에서 지낼 때의 그 모습으로 시작.
노 대통령은 아침6시에 기상, 오랫동안 다녀왔던 집 근 처 우정 헬드 클럽에 가 간단한 웨이트트레이닝과 목욕을 한 뒤 함께 운동해 왔던 주민 30여명으로부터 축하인사를 받고『앞으로도 시간이 있을 때 종종 들르겠다』고 약속.
노대통령은 오전7시25분 자택으로 돌아와 부인 김옥숙 여사, 노모 김태향여사, 장모 홍무경 여사, 딸 소영양, 아들 재헌군과 함께 연희동자택에서 마지막 아침식사.
이어 노 대통령 내외는 노모와 장모에게 큰절을 올리며『길러 주셔서 감사하며 앞으로 여생을 건강하게 지내십시오』라고 인사.

<이곳은 큰변화 가져온 집>
노 대통령 내외는 오전8시40분쯤 현관을 나와 청와대로 출발하기 앞서 기자들에게 간단한 소감을 피력하고 동네주민들과 일일이 악수.
노 대통령은 기자들이 소감을 묻자 『여기서 8년을 살았는데 여러 가지 나라의 변화 발전과 더불어 지낸 셈』이라면서『8년이 짧다면 짧지만 이곳은 나에게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 집』이라며 잠시 회상.
노 대통령은 또『청와대에 있는 동안이라도 짬이 있으면 이 집으로 오겠다』면서『이 동네는 끊을 래야 끊을 수 없는 정이 있는 곳』이라고 거듭 아쉬운 심정을 토로.

<전대통령 내외 현관서 맞아>
오전8시45분 연희동 자택을 출발한 노 대통령 내외는 9시 정각 청와대본관에 도착, 문밖에서 김윤환 전 청와대 비서실장·김병훈 전 의전수석·최재욱 전 공보수석의 영접을 받고 현관에 마중 나와 서 있던 전두환 전대통령 내외와 반갑게 악수.
전전 대통령은 현관에 들어선 노 대통령에게 큰 소리로『어서 오십시오, 환영합니다』고 인사했고 노 대통령은『감사합니다』고 답례.
이때 한복을 입은 노 대통령 부인 김옥숙 여사와 이순자 여사는 가볍게 손을 잡으며 미소를 교환.
전 전대통령의 안내로 소 접견실로 옮긴 두 대통령과 부인은 약3분간 사진촬영을 하면서 역사적인 수 인사를 나눴다.
▲전전대통령=잘 주무셨읍니까.
▲노대통령=어제 만찬하신 것 TV로 잘 보았읍니다. 정말 감명받았읍니다. 그 장소에 없었으나 마치 내가 있었던 것처럼 착각이 들 정도였읍니다. 국민들도 모두 가슴이 뭉클했을 것입니다.
▲전전 대통령=장소(힐튼호텔)가 적절했던 것 같습니다. IMF총회를 한 곳이었죠.
▲노대통령=각하는 어깨가 홀가분하시겠지만 나는 어깨가 매우 무겁습니다.
▲이 여사=그렇지 않아도 요 며칠 새에 좀 늙으신 것 같습니다.
담소를 마친 두 대통령은 서재로, 두 부인은 부인 영접실로 옮겨 각기 배석자 없이 40여분간 대화를 계속했으며 홍성철 김윤환 신구비서실장, 이현우 안현태 신구경호 실장, 노창희 김병훈 신구 의전수석,이수정 최재욱 신구 공보수석은 대기실에서 업무와 관련한 얘기를 나눴다.
9시45분 취임식장에 가기 위해 현관으로 나온 노대통령은 상석을 사양하는 전전대통령을 떠밀듯이 상석에 앉게 하고 자신은 승용차 뒤를 돌아 옆자리에 착석.
두 부인도 같은 형식으로 승용차에 동승해 식장으로 출발.

<하객들 입장 방송에 기립>
오전10시 신구 대통령 내외가 입장한다는 손관호 총무처차관의 안내방송이 있자 2만5천 여명의 하객들이 기립한 가운데 국악『표정만방지곡』8절 중 마지막 절이 연주되기 시작.
노 대통령과 전전대통령을 태운 승용차가 국회의사당 정문을 통과하자 하객들은 일제히 몸을 정문 쪽으로 돌려 박수를 쳤고 의사당 밖의 시민들도 박수로 환영. 의사당 현관문 앞에 내린 두 대통령은 취임식장을 향해 환하게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었고 이어『제13대 대통령 취임식을 시작한다』는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 단상 앞에 도열해 있던 42명의 군악대는 일제히 팡파르를 울렸다.
국민의례에 이어 대통령 취임행사 준비위원장인 김정렬 총리가 식사를 낭독.
노대통령은 이어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 한가운데 마련된 연단 앞에 서서 왼손으로 선서문을 들고 오른손을 번쩍 치켜든 뒤 대통령 취임선서를 시작.
노대통렴이 우렁찬 목소리로 취임선서를 하는 동안 참석자들은 전원 기립, 새 대통령이 탄생되는 엄숙한 순간을 숙연히 지켜보았다.
선서가 끝나자 참석자 전원은 일제히 박수를 쳤고 육군포대가 21발의 축포를 터뜨리기 시작.
축포가 한발 한발씩 터지는 가운데『동방의 아름다운 대한민국 나의 조국』이라는 조국찬가가 합창단에 의해 우렁차게 메아리 졌고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 1천여 마리가 여의도 하늘을 날았다.
노대통령은 선서가 끝난뒤 뒤로 돌아 전이임대통령과 축하와 답례의 간단한 인사말을 주고받으며 얼싸안아 헌정사상 최초의 평화적 정부 이양이 실현됐음을 국내외에 과시.
노 대통령은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오늘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선언하기 위해 성스런 이 민 의의 전당 앞에 모였다』는 서두로 약 20분간에 걸쳐 새 정부의 국정운영방향을 천명하는 역사적인 취임사를 낭독.
노 대통령은 25분간 진행된 취임연설 중『저는 이 자리에서 바로 그「민족자존의 새 시대」가 열렸음을 국민 여러분 앞에 엄숙히 선언합니다』라는 등 9개 대목에서 참석자들의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노 대통령은『그리하여 우리가 언제나 즐겨 부르는 민족의 노래「희망의 나라」로 가 그리는 자유·평등·평화·행복이 가득한 나라를 향하여 함께 나갑시다』라는 말로 연설을 마쳤다.
이어 폐식을 선언하자 일제히 팡파르가 울렸고 전통음악인 취타 곡이 연주됐으며 두 대통령내외는 단상에 있던 하객들과 악수를 나눈 뒤 올 때와는 달리 노 대통령 내외가 앞차에, 전 대통령 내외가 뒤차에 탑승해 청와대로 출발

<단상좌석 모두 같은 의자>
이날 취임식 행사는 권외주의 색채를 철저히 배제하고「보통사람의 시대」출범을 알리려 애쓴 흔적이 역 력.
취임식장인 국회의사당 주변엔 정문앞 진입로에 대형아치 1개만 설치됐을뿐 플래카드·현수막등이 일체 보이지 않는 등 전체적으로 검소·조촐한 행사.
단상도「제13대 대통령취임」이라고만 쓴 채 일체의 군더더기 장식을 없앴으며 단상 양옆에 국악단과 3군 군악대·합창단이 자리해 동서음악이 어우러지는 가운데 조용·장엄하게 거행됐다.
취임식에서 사회자나 취임 행사준비 위원장은 종전과는 달리「각하」라는 호칭대신「대통령께서」라고 표현했으며 대통령 휘장인 봉황문양도 연단 한군데만 사용. 특히 단상의 좌석은 신구대통령과 다른 귀빈들이 모두 똑같은 목 제 의자에 앉도록 마련.
두 대통령의 좌석도 맨앞열의 3부요인과 동렬선상에 배치했고 지금까지 대통령 참석행사때 항상 연주됐던 대통령 찬가도 자취를 감춘게 특색.
단상은 좌측에 노대통령 내외와 이재형 국회의장·김용철 대법원장·김정렬 취임행사준비위원장이 나란히 앉고 우측에 전이임대통령 내외와 윤보선 최규하 전대통령·이현재 총리서리가 자리.
단상의 뒷줄 중앙에는 채문식 민정당 대표위원·김명윤 민주당 총재권한 대행·김종필 공화당 총재 및 헌법기관장·신임비서·경호실장이 앉았고 뒷줄 오른쪽에는 경축사절, 왼쪽에는 그 뒷줄에 가족친지들과 국정자문위원들이 착석.
단하에는 외국 경축사절·사법부 인사·정당간부·대학총장이 앞줄에 앉고 여성계대표·기자단·국가유공자·노동계대표·공무원대표·지방대표 등 이 앉았다.
이어 전전 대통령내외는 오전11시30분 청와대본관 현관입구에서 노 대통령 내외와 포옹으로 작별의 인사를 나눈 후 두 돌이 지난 손녀 수현 양의 손을 양쪽에서 잡고 도열해 있던 3부 요인, 신구 국무위원, 전·현직 청와대수석, 민정당 의원, 3군장성 등과 일일이 마지막 악수를 교환.
전전 대통령은 노 대통령에게『건강하고 몸조심하십시오』라고 인사했고 노 대통령은 수현 양의 볼을 만지며『갈 가십시오』라고 답례.
전전 대통령은 노신영 전 총리·권익현 민정당 고문·정호용 전 국방장관 등과 악수를 할 때는『수고 많이 하셨습니다』라고 했고 3군장성들의 경례를 받고는『나라를 잘 지켜 달라』고 당부. <박보균·이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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