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여성 할례’도 난민 인정사유” 판결

중앙일보

입력 2017.12.17 09:53

업데이트 2017.12.17 09:55

대법원이 '여성 할례'를 피해 국내에 들어온 아프리카 라이베리아 국적 소녀에 난민 지위를 인정하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사진 연합뉴스]

대법원이 '여성 할례'를 피해 국내에 들어온 아프리카 라이베리아 국적 소녀에 난민 지위를 인정하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사진 연합뉴스]

‘여성 할례’를 피해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소녀에게 난민 지위를 인정하라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여성 할례를 난민 인정 요건으로 본 첫 사례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아프리카의 라이베리아 국적 소녀인 D양(14)이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장을 상대로 낸 난민 불인정 결정 취소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17일 밝혔다.

여성 할례는 의료 목적이 아닌 전통적·문화적·종교적 이유에서 여성 생식기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제거하거나 여성 생식기에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말한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여성 할례는) 여성의 신체에 극심한 고통을 가져올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로, 박해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D양의 어머니 A씨는 자신 여성 할례를 강요하는 라이베리아 전통단체에 가입하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이 단체 회원들에게 아버지가 살해됐고, 그로 인한 친척들의 원망과 살해 위협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A씨는 가나로 건너가 2002년 12월 난민캠프에서 D양을 낳았고, 2012년 3월 한국에 들어왔다. A씨 모녀는 “라이베리아로 돌아가게 되면 교육시설에 들어가 여성 할례를 받을 수밖에 없다”며 난민으로 인정해달라고 신청했다. 그러나 서울출입국관리소는 “D씨의 어머니가 난민으로 인정되지 않아 D씨도 난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불인정 결정했다.

1, 2심은 이런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라이베리아 전통 단체로부터 받은 박해에 대한 진술의 신빙성이 떨어지고, A씨가 도망친 때가 25년 전인데다 살해 위협에 대해선 라이베리아 정부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봤다. 2심 재판부도 “라이베리아 정부가 여성 할례와 같은 전통적 악습을 퇴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라이베리아 내에서 여성 할례가 없는 지역으로 이주가 가능하기 때문에 ‘박해를 받을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가 있는 경우’에 대항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국적국을 벗어나 대한민국 안에 있으면서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인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수 있다고 인정할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보호를 원하지 않는 외국인은 법령에 따른 신청절차를 거쳐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이 정하는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난민 인정 신청을 받은 행정청은 법령이 정한 난민 요건에 해당하는지를 심사해 난민 인정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뿐이다”며 “원고가 국적국으로 돌아갈 경우 여성 할례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지는 언급하지 않은 채 ‘원고 어머니가 난민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원고도 난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원고를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은 결정은 위법한 처분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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