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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실에 그림을 걸어야 하는 이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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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2호 14면

김상훈의 컬처와 비즈니스<18·끝> 예술에 의한 경영

페이스북의 사옥 곳곳에는 예술가의 숨결이 스며 있다. 사진은 반달 작가의 그래피티가 그려진 페이스북 서울 오피스.

페이스북의 사옥 곳곳에는 예술가의 숨결이 스며 있다. 사진은 반달 작가의 그래피티가 그려진 페이스북 서울 오피스.

청와대 본관에 민중미술가 임옥상 작가의 작품 ‘광장에, 서’가 걸렸다. 광화문 촛불집회 풍경을 그린 가로 16m가 넘는 대작을 11.7m로 줄여 청와대 본관 벽면을 채웠다. 대통령이 국무회의 직전 이 작품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고, 작은 논란이 일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청와대 방명록에 싸인 할 때에는 오병욱 작가의 ‘바다’가 배경이 되었고, 영부인 접견실에는 제주의 숲속 풍경을 그린 김보희 작가의 ‘향하여’가 긴급 설치됐다. 그림이 미술관이 아닌 업무 공간에 걸릴 때, ‘환경미화’ 이상의 어떤 의미와 효과를 가지게 된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예술 작품이 만들어내는 창의력

근무 공간을 미술 작품으로 가득 채운 회사가 있다. 페이스북이다. 이 소셜미디어 기업과 예술가의 만남은 그야말로 전설적인데, 2005년 데이비드 최(David Choe)에게 팔로알토 오피스의 첫 벽화를 의뢰하면서 스톡옵션을 지불한 것이 그 시작점이다(그림의 대가로 몇 천 달러의 현금 대신 받은 스톡옵션이 7년 후 기업 공개로 2억 달러가 되어 화제가 된 바 있다). 멘로파크에 있는 페이스북 본사의 벽과 복도, 라운지, 회의실은 모두 그림으로 덮여 있다. 올해에는 뉴욕 오피스의 엘리베이터 대기장소를 20대 아티스트 랄라 아바돈(Lala Abaddon)에게 맡겨 테크니컬러 비닐과 깨진 유리, 그리고 빛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공간으로 만들었다.

페이스북은 2012년부터 아예 ‘FB AIR’라는 아티스트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 5년간 전세계 페이스북 오피스에 예술을 입히는 225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동남아시아·아프리카·남미 등의 지역 작가들이 참여하는 이 프로젝트들은 하이테크 기업의 예술후원 모델로 거론될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서울 오피스에는 반달 작가의 그래피티 벽화가 있다).

그런데 페이스북은 왜 회사 벽면을 그림으로 채우고 로비와 회의실을 미술로 도배하는 걸까? 이른바 ‘예술적 단서(artistic cues)’의 효과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예술에 노출된 개인의 창의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사람이 환경에 주어진 단서(cue)에 노출되는 것만으로 특정 태도와 행동이 유발된다는 사실을 입증한 연구가 많이 있다. 애플 로고를 보게 했더니 IBM 로고를 본 집단보다 창의성이 높게 나타났다는 연구도 있고, 서류 가방에 노출된 사람들보다 배낭에 노출된 사람들이 협력적 행동을 더 많이 선택했다는 등의 믿기 힘든 연구결과도 있다.

예술작품에 노출된 사람은 창의성이 높아진다. 물론 장기적인 효과를 가지는 건 아니고 일시적인 점화(priming) 효과다. 많은 심리학, 교육학 분야의 실증연구 결과가 미세한 예술적 단서와 상상력, 비유적 사고 능력과의 상관관계를 입증했다. 더 많은 창의성을 요구하는 IT기업들이 예술작품을 더 많이 설치하는 이유다.

국내 기업들의 로비와 복도, 회의실을 한번 둘러보자. 그래도 꽤 많은 회사의 로비에 그림이나 조각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에는 강익중, 로메로 브리토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가득 차 있다. 포스코 센터 로비에도 백남준, 프랭크 스텔라 등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들이 배치돼 있다. 종로 SK서린빌딩과 을지로 SK텔레콤 빌딩에도 다수의 회화 및 미디어 아트 작품이 설치되어 있으며, 논현동 준오헤어 본사에는 마크 로스코의 그림이 걸려 있다. 여의도 현대카드 사옥의 직원식당 벽에는 영국 yBA(young British Artists)의 대부 마이클 크레이그-마틴의 그림이 여럿 걸려 있다. 필자의 SNS 계정을 통해 회사 로비나 회의실에 좋은 그림이 걸려 있는 사례를 제보해 달라고 했더니, “우리 회사 로비에도 그림이 있어요”라는 제보가 꽤 들어왔다.

여의도 현대카드 사옥의 직원식당에는 영국 개념미술의 거장 마이클 크레이그-마틴의 그림이 걸려 있다.

여의도 현대카드 사옥의 직원식당에는 영국 개념미술의 거장 마이클 크레이그-마틴의 그림이 걸려 있다.

텅 빈 공간에서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그런데 문제는 회의실이다. 회의실에 그림이 걸려 있는 경우는 찾아 보기 힘들다. 왜냐하면 회의실은 회의에 집중해야 하는 공간이고, 팀장님이나 상무님 말씀 중에 벽에 붙은 그림에 한눈을 팔아서는 절대 안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회의실 이름이 ‘창조의 방’이거나 ‘혁신 룸’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간혹 세계 전도나 자사제품 홍보용 포스터, 아니면 비전 2020 같은 구호를 액자에 넣어 걸어 둔 회의실이 있지만, 텅 빈 벽이 회의실의 전형이다. 그러니 회의 중에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샘솟을 까닭이 없다.

창의성 제고 목적도 있지만, 회의실에 그림을 걸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림을 본 사람은 (이번에도 단기적 효과이지만) ‘인지적 유연성(cognitive flexibility)’이 높아져서 이타적 행동을 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인지적 유연성이란 개방적이고 탄력적인 마인드를 말하는데, 다소의 부조화와 모순을 드러내는, 이를테면 살바도르 달리나 르네 마그리트 같은 초현실주의 미술을 볼 경우 그 효과는 더 커진다. 필자도 두 차례의 연구를 통해 예술적 단서가 이타적(prosocial) 태도와 행동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입증한 바 있다(마그리트와 칸딘스키 그림을 사용했다).

그러니까 회의실에 그림을 걸면,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의견에 더 자주 공감을 표현하거나 타인의 잘못에 너그러워지고(소극적인 이타적 행동), 협력과 도움의 손길을 베풀 가능성이 높아진다는(적극적인 이타적 행동) 얘기다.

예술의 힘은 생각보다 크다. 그리고 ‘예술에 의한 경영(MBA, Management by Art)’은 들이대지 않고 살며시 다가가는 데 핵심이 있다. 직선적 구호보다는 회사 아이덴티티에 부합하는 그림과 예술로 조직 구성원과 소통해 보면 어떨까?

김상훈 :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미술경영협동과정 겸무교수. 아트 마케팅, 엔터테인먼트 마케팅 등 문화산업 전반에 걸쳐 마케팅 트렌드와 기법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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