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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법학도가 법 대신 선택한 음악과 영화, 그리고 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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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해피 해피 브레드(미시마 유키코 감독, 2012년 개봉)’라는 영화가 있다. 도시 생활을 접고 외진 곳에 작은 베이커리 카페를 연 젊은 부부가 손님들에게 맛있는 빵과 행복한 시간을 선물해 준다는 내용이다. 아주 많은 관객이 든 영화는 아니었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꽤 있었고, 같은 제목의 책으로도 나왔던 기억이 난다. 같은 감독이 찍은 ‘해피 해피 와이너리’가 2015년 개봉하기도 했다.

이상원의 포토버킷(10) #사법시험 전날 수험표 찢고 방송 PD로 사회 첫발 #미국에서 영화 공부하다 귀국해 대학서 강의 #일본 영화 '해피 해피 브레드' 보고 빵집 열어 #모두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공통점, 다음 일은?

영화 <해피 해피 브레드> 포스터. [사진 이상원]

영화 <해피 해피 브레드> 포스터. [사진 이상원]

명문대 법대를 졸업하고 방송국 PD, 영화과 교수를 지낸 뒤 빵을 굽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인생 스토리가 궁금해 인터뷰하러 갔다. 뜻밖에도 영화 ‘해피 해피 브레드’가 동기를 제공했다고 해 반가운 한편 궁금증도 생겼다. 한남동에서 베이커리 카페 ‘모또(motto)’를 운영 중인 안지혜 씨로부터 한 편의 영화 같고 뮤직비디오 같은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빵을 굽고 싶다는 안지혜 대표. [사진 이상원]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빵을 굽고 싶다는 안지혜 대표. [사진 이상원]

서울법대 졸업후 EBS 입사 

1991년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안 대표에게 대부분 법조계로 진출하는 동문과는 다른 길을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사법시험 준비를 열심히 하기는 했지만, 막상 시험을 보려고 하니 누군가의 죄를 판단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일을 한다는 것이 두려웠어요. 시험 전날 수험표를 찢어버렸죠.” 필자도 같은 질문을 많이 받아왔고(필자는 안 대표와 동문이지만 그가 졸업하던 해에 입학해 학교에서 마주칠 기회는 없었다) 어느 정도는 비슷한 이유에서 다른 선택을 했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오히려 그 이후가 궁금해졌다. 아마 지금까지 진행한 인터뷰 중 ‘그래서요?’ ‘왜요?’ 등의 질문을 가장 많이 한 것 같다.

안 대표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교육방송국 EBS를 첫 직장으로 택했다. 교육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청소년가요제, 청소년 토크쇼 등을 제작하기도 했다. 학창시절 피아노를 즐겨 치고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즐거움이 컸다. 아예 서울예전 실용음악과에 입학해 작곡 공부를 병행했다. 그때를 회상하며 “세상에 이렇게 좋을 수도 있나 싶었어요. 정말 행복했죠”라고 할 정도니 좋기는 정말 좋았나 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과 공부를 함께 열심히 할 수 있어서 행복했지만, 직장을 다니면서 야간도 아닌 주간에 학업을 병행하기는 ‘주경주독’은 쉽지 않았다. 시험과 녹화가 겹치는 일이 잦아지자 어쩔 수 없이 학교를 자퇴할 수 밖에 없었다.

이즈음 음악전문 케이블TV 방송국 ‘m.net’이 개국했다. 좋아하는 음악과 방송을 마음껏 할 기회라 생각해 회사를 옮겼다. 삼고초려를 거듭해 겨우 섭외에 성공한 가수 조동진씨 콘서트를 제작하면서 음악과 영상의 매력에 푹 빠졌다. 뭔가에 빠지면 조금 더 깊게 공부하고 싶어지는 특유의 기질이 또다시 발휘됐다. 이번에는 유학이었다. 미국 뉴욕에 있는 ‘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에서 영화공부를 시작했다. 이후 개인적인 사정으로 귀국해 중앙대학교 영화과(이론전공)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고 강단에도 섰다.

촬영 여행을 다녔을 때 안지혜 대표. [사진 이상원]

촬영 여행을 다녔을 때 안지혜 대표. [사진 이상원]

안 대표가 대학 졸업 이후 취직, 공부, 이직 등을 반복한 것처럼 보이지만 넓게 보면 음악과 영상과 관련된 일을 한결같이 해 왔다고 느껴진다. 꽤 오랫동안 한 길을 가다 갑자기 베이커리 카페를 운영하게 된 사연이 궁금해 “왜, 하필 빵이죠?”라고 물었다. “친구들은 넌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니까 좋겠다고 부러워하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지금까지 한 번도 자유롭게 저의 선택을 했던 적이 없었어요.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차선을 택했던 것뿐이죠. 목표를 정하고 노력하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문득 저에게 휴식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작업실 차리고 뮤직비디오 제작도

안 대표는 한때 모든 걸 내려놓고 2년 동안 온전히 자신에게만 집중하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냈다고 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뭘 하고 지냈나요?”라는 질문에 “작은 작업실을 하나 차려놓고 음악방송국 시절 친하게 지냈던 조동진 씨, 장필순 씨 등가수들의 뮤직비디오를 만들었어요. 일인 듯 아닌 듯했죠”라며 웃었다.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왜 빵이죠?”

“좋아하는 일 하는 건 좋은데, 먹고는 살아야 하잖아요. 그동안 뭔가 거창하게 회사 일, 남의 일, 이론적인 일 등으로 인생을 살다가 내 작은 손을 움직여 뭔가를 만들어 보니까 너무 좋더라고요. 그러다가 예전에 너무 재미있게 봤던 영화 ‘해피 해피 브레드’의 ‘스콘’이 생각났어요. 빵을 구워 팔아보자 생각했지요.”

빵을 만들고 있는 안지혜 대표. [사진 이상원]

빵을 만들고 있는 안지혜 대표. [사진 이상원]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지금은 꿈이 뭔가요?”라고 물었다.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정리하는 의미가 컸지만, 궁금증이 폭발했다. “거창하게 꿈이라고 하기는 뭣하지만, 개인 작업실에 놀러 온 손님들에게 맛있는 빵과 커피를 내어놓는 분위기로 모또에서 지내는 거예요. 조금 익숙해지면, 목공을 배우고 싶고요. 나중에,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만들다가 중단했던 우리나라 포크 가수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완성하고 싶어요.”

안지혜 대표가 직접 구운 스콘. [사진 이상원]

안지혜 대표가 직접 구운 스콘. [사진 이상원]

포크 가수들의 다큐멘터리 만들고파 

마지막 안 대표의 답을 들으면서 앞에서 소개했던 영화 ‘해피 해피 브레드’의 한 장면이 오버랩 되었다. 원래 카페에자연스럽게 들르는 손님들과 빵과 커피를 나누며 행복하게 일상을 만들어 가는 주인공처럼 안 대표도 곧 자신이 직접 깎아 만든 도마에서 자른 빵을 접시에 맛있게 담아 가져올 것 같다. 필자도 그 장면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손님 중 하나로 ‘모또’를 찾을 것이다.

인터뷰에서 깜빡하고 못 물어본 마지막 질문을 문을 열다 말고 던졌다. “카페 이름 ‘모또’가 무슨 뜻이에요?” “일본어로 ‘조금 더’라는 뜻이에요.”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진정 본인이 원하는 선택을 한 그에게 참으로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 생각했다. 사람들을 단죄할 자신이 없어 법조인 대신 선택했던 방송, 음악, 영화, 빵…. 모두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들이다. 참 잘 어울렸다.

인터뷰하는 날이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는데 몇 걸음 옮기다 뒤를 돌아보니, 따스하게 주황색 불을 밝히고 있는 빵집 덕분에 동네가 다 따듯하게 느껴졌다. 동네마다 이런 빵집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따뜻한 느낌의 베이커리 카페 &#39;모또&#39;. [사진 이상원]

따뜻한 느낌의 베이커리 카페 &#39;모또&#39;. [사진 이상원]

이상원 밤비노컴퍼니 대표·『몸이 전부다』저자 jycyse@gmail.com

우리 집 주변 요양병원, 어디가 더 좋은지 비교해보고 싶다면? (http:www.joongang.co.kr/Digitalspecial/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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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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