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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선거구 획정 전에도 유권자에 향응제공은 '매수죄'"

중앙일보

입력

국회의원 선거구가 획정되기 전이라도 주민들에게 향응을 제공했다면 선거인 매수죄가 성립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지난해 선거구 획정 전 주민에 식사 제공 #1·2심은 "선거구 없어 선거법 위반 아냐" #대법원 "19세 이상 선거인 대상 향응 유죄"

대법원 3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선거구민에게 향응을 제공한 혐의(공직선거법상 선거인매수죄)로 기소된 임모(57)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홍씨는 20대 총선을 앞둔 지난해 2월 14일 충남 아산시의 한 식당에서 지역 주민 23명에게 60여만원어치의 음식을 대접하고 평소 친분이 있던 총선 예비후보 조모씨의 지지를 부탁한 혐의로 기소됐다.

홍씨가 향응을 제공하기 이전인 2015년 12월 31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국회의원 지역선거구의 효력이 상실돼 아직 선거구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국회의원 선거구는 3월 2일에야 비로소 확정됐다. 홍씨는 “사건(향응 제공) 당시 선거구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공직선거법이 금지하고 있는 기부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1, 2심 법원은 홍씨의 주장이 옳다고 봤다. 1심 법원은 “장래 확정될 선거구가 예상 가능하거나 거의 변동이 없으리라고 예상되더라도 그 정도를 명확하게 확정할 수 없는 이상 ‘예상 가능성’을 처벌 여부의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고 밝혔다.

20대 국회의원 뱃지 [중앙포토]

20대 국회의원 뱃지 [중앙포토]

재판부는 “당시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지역구 통폐합 등이 예상되는 특별한 경우에서 기부행위 당시에는 선거구가 어떻게 확정될지 예상하기가 지극히 어렵다”고 덧붙였다. 2심 재판부 역시 “국회의원 선거구역표가 효력을 상실한 기간에 피고인이 한 물품 제공행위는 공직선거법상 기부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선거가 실시되는 지역의 선거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이면 공직선거법이 정한 ‘선거인’에 해당하고, 매수행위 당시에 반드시 선거구가 획정되어 있어야 하거나 유효한 선거구가 존재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향응을 제공한 23명은 모두 19세에 이른 사람들로서 조모씨가 출마하려는 지역에 주민등록을 두고 있어 선거법상 ‘선거인’에 해당한다”며 “원심의 판단에는 위 조항에서 정한 선거인의 의미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밝혔다.

선거구 획정이 뒤늦게 이뤄진 지난 20대 총선과 관련한 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법원은 대체로 선거구 공백 기간 중 벌어진 금품‧향응 제공 행위를 매수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판단을 유지해왔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사건의 쟁점인 매수행위의 상대방을 ‘당해 선거구’라는 장소적 개념으로 특정하거나 한정하지 않았다”며 “선거인매수죄의 행위 상대방인 선거인의 선거권은 ‘다가올 선거일’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고 본 판결이다”고 설명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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