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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017 영화 결산 ④ 매거진M 추천 올해의 영화

중앙일보

입력

[매거진M] 우리 각자의 마음을 오랫동안 저미는 영화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magazine M 기자 7인이 흥행 성적, 수상 결과와 상관없이 개인적 감성으로 꼽은 올해 최고의 영화를 소개한다.

제목 | 감독 | 개봉일

장성란 기자의 '패터슨'

'패터슨'

'패터슨'

패터슨 | 짐 자무시 | 12월 21일

누구나, 삶이 시처럼 아름답다고 느낄 때가 있다. 문제는, 그것은 찰나요, 그렇지 않은 순간이 더 장구하며 끈질기다는 사실이다. 미국 뉴저지주의 패터슨에 사는 패터슨(아담 드라이버)은 버스 운전기사다. 그의 버스가 매일 같은 노선을 운행하듯, 그는 매일같이 쳇바퀴 돌 듯 살아간다. 그 틈틈이 패터슨은 시를 쓴다. 그의 비밀 노트에서 그 하루하루의 작은 차이와 균열은 아름다운 시가 된다. 별 볼 일 없는 삶이 아름다운 시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그의 시는 산산이 조각난다. 그 찬란한 의미들이 알아볼 수 없는 단어들로 찢겨 나간다. 그 끝에 패터슨이 다시 시를 쓰는 장면이 없었다면, 영원히 울어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대도, 찢겨 나간 오늘 하루도 언젠가 시가 될 수 있다. 그렇게 오늘 하루를 버틸 힘을 얻었다.

김효은 기자의 '맨체스터 바이 더 씨'

'맨체스터 바이 더 씨'

'맨체스터 바이 더 씨'

맨체스터 바이 더 씨 | 케네스 로너건 | 2월 15일

상실의 계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를 조용히 안아주는 영화였다. 감당할 수 없는 비극을 마주한 인물. 잔인하게 계속되는 삶. 영화는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안은 인물이 어떻게 오늘을 살아낼 것인가, 그들을 살아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묻고 있다. 케네스 로너건 감독은 미국 북동부의 해안도시인 맨체스터에서 이 영화를 찍었다. 한 겨울 찬바람을 정면으로 맞고 서 있는 인물들. 결국 그들을 감싸 안은 건 맨체스터의 바다였던 것 같다. 지금도 가끔, 그 넓고 따뜻한 바다가 무언의 위로를 건넨다. 거대한 비극 속에도 섬광처럼 스쳐가는 희극이 있고 결국 그것이 삶을 지탱한다는 믿음. 이 영화의 성숙하고 사려깊은 태도가 올 한 해 마음의 온도를 올려주었다.

나원정 기자의 '꿈의 제인'

'꿈의 제인'

'꿈의 제인'

꿈의 제인 | 조현훈 | 5월 31일

절망할 때 내게 세상은 그저 새카맣다. 암울을 이불처럼 뒤집어쓰고 혼자 며칠을 앓고 나면 간신히 그 절망을 외면할 용기가 생긴다. 극복 아니고 외면. 세상의 아픔을 덮어놓고 슬퍼할 줄만 알지 헤아리고 품어 안을 깜냥이라곤 없는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일 거다. 삶이 바스라지기 직전, 물안개처럼 희미한 온기로 심장을 적시는 영화에 유독 약한 이유. 마음이 차게 식었던 날 ‘꿈의 제인’을 만났다. “이런 개 같은 인생 혼자 살아 뭐 하니. 아무튼 그래서 같이 사는 거야.” “태어날 때부터 안 끊기고 쭉 이어지는 불행” 속에 손에 잡히지 않는 행복(미러볼·비치볼)을 가끔은 훔쳐 가며 버티는 트랜스젠더 제인(구교환). 내내 받아쓰고 싶었던 그의 대사 중 가장 뇌리에 박힌 말은 이거였다. “얘!” 다시 외톨이가 된 가출 소녀 소현(이민지)을 불러 세운 그 찰나의 한마디. 소현의 고통스러운 나날에 아주 오랫동안, 유일한 빛이 돼준. ‘스치듯 지나간 인연이 평생을 버틸 힘이 되기도 한다.’ 영화를 본 날, 어딘가 이렇게 적어두었다. 그 한 자락 온기를 부여잡고 올해도 무사히 버텨냈다.

백종현 기자의 '사일런스'

'사일런스'

'사일런스'

사일런스 | 마틴 스코세이지 | 2월 28일

참신하다거나 기념비적이란 생각은 안 든다. 하나 올해 본 영화 가운데 ‘사일런스’는 가장 완전했다. 경지에 이른 백전노장 감독과 자신을 기꺼이 내던지는 젊은 배우와, 위대한 원작과 절정에 오른 촬영감독, 그리고 경이로운 풍광이 만나면 이런 영화가 나오는 걸까. 이 영화는 편집이나 음악 등에서 기교가 거의 빠져있다. 스펙터클을 위한 요소를 모두 덜고, 오직 무대와 카메라만 남아 한 인간의 종교적 신념이 뿌리째 흔들리는 과정을 지켜본다. 덕분에 영화는 굉장히 사실적이다. 영적 신비나 감응의 차원을 넘어, 그 고통과 신념의 무게를 온몸으로 체험케 한다. 그리하여 ‘고난의 순간, 신은 어디 계신가?’라는 종교적 딜레마에 닥쳤을 때, 종교가 없음에도 자못 무섭고 고통스럽고 격한 상태에 미쳤다. 기술이나 연출, 미학에 관한 수식이 있었다면 ‘덩케르크’ ‘블레이드 러너 2049’ 같은 영화를 앞세웠지도 모르지만, 올해의 영화는 아니다. ‘사일런스’만큼 강한 여운을 남긴 영화는 없었다.

이지영 기자의 '로건'

'로건'

'로건'

로건 | 제임스 맨골드 | 3월 1일

“이런 기분이었구나.” 로건(휴 잭맨)의 마지막 말. 자신의 과오를 정리하고, 희생으로서 죄를 씻어낸 로건의 마음은 편안했을까. 자가 치유 능력인 힐링 팩터 덕분에 영원히 죽지도, 늙지도 않던 그는 자신의 업보를 몸속에 쌓으며 점차 지쳐갔다. 2029년, 세상에서 자신을 지우며 살아가던 그는 절뚝거리는 걸음과 마른기침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수퍼 히어로도 늙는다’는 슬픈 명제. 엑스맨의 명예도, 돌연변이의 능력도 점차 잃고 죽지 못해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참으로 슬프고 서글펐다. 그러나 로건은 자기 죽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건 영원히 혼자여야 한다는 것. 고독에 익숙해진 그는, 치매를 앓는 찰스(패트릭 스튜어트)를 보호하며 천천히 삶의 종착역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돌연변이로 태어난 로건은 결국 인간으로 죽었다. 물론 죽는 순간까지 울버린은 울버린이었다. 처절하게 싸우며 그는 자신과 똑 닮은 소녀 로라(다프네 킨)의 미래를 지켜냈으니까. 2017년의 마지막 로건의 당부가 큰 힘이 되고 있다. “그들의 뜻대로 살지 마.” 2018년엔 내 뜻대로 살아갈 수 있기를.

고석희 기자의 '분노'

'분노'

'분노'

분노 | 이상일 | 3월 30일

좋은 영화는 때때로 관객을 압도한다. 시각적으로, 혹은 정서적으로 캐릭터의 상황과 감정을 관객에게 처절하게 투사하는 게 영화라면, 그런 면에서 올해 ‘덩케르크’의 해변보다 더 나를 압도했던 영화는 단연 ‘분노’다. ‘분노’는 엽기적인 살인범으로 추정되는 세 명의 용의자와, 이들 각각과 관계를 맺는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다. 주인공들은 자신의 삶에 나타난 낯선 용의자들에게 마음을 내주고도, 곧 그들의 진의를 의심하며 얄궂은 시험에 빠진다. 어디까지 타인을 신뢰할 것인가. ‘분노’ 속 인간 군상들은 막연한 불안과 배신감에 떨면서도, 폭풍에 나부끼는 실 한 올처럼 인간을 향한 파리한 희망을 놓지 못한다. ‘덩케르크’가 그랬듯, ‘분노’는 세 겹으로 갈린 이야기와 인물들의 감정을 하나의 맥락으로 촘촘하게 엮는다. 스산하게 긴장을 쌓다가 분노와 전율, 슬픔과 안도감을 일거에 게워낸다. 감정의 격랑이 모여 만드는 경이로운 소용돌이. ‘분노’는 확실히, 내게 그런 ‘정서의 스펙터클’을 경험하게 했다.

김나현 기자의 '몬스터 콜'  

M231_몬스터 콜

M231_몬스터 콜

몬스터 콜 |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 | 9월 14일

이 영화를 보며 몇 번이고 눈물이 차올랐다. 아픈 엄마를 떠나보내야 하는 열두 살 소년 코너(루이스 맥더갤)의 성장담을 환상의 존재 몬스터(목소리 출연·리암 니슨)로 풀어낸 영화에 왜 그리 공감했을까. 나는 부모나 형제와 이별한 적도 없는데. 다만 친구 혹은 연인과 헤어진 기억이 떠올랐다. 상실은 상대가 누구든 아프고 두렵다. 그래서 애꿎은 데 화를 낸다. 할머니가 아끼는 고가구를 모두 부숴버리는 코너처럼. 이 영화가 놀라웠던 건, 극중 누구도 못된 행동을 하는 코너를 혼내지 않는 점이었다. 너무 아픈 아이가 성내는 것을 뭐라 할 수 없다는 걸 아는 어른들. ‘몬스터 콜’은 이렇듯 상실에 대면하는 인간의 보편적 심리를 성숙하게 그려, 코너를 연민의 대상으로 만들지 않는다. 코너는 몬스터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과 엄마를 향한 슬픔과 분노, 나약함과 마주한다. 변화는 여기서 시작된다. 인간을 향한 희망, 그리고 상실을 겪은 모든 이에게 보내는 위로의 메시지. 귀하고 아름답다.

장성란 ·김효은 ·나원정 ·백종현 ·이지영 ·고석희 ·김나현 기자 hairp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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