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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희의 맛따라기] “흑돼지 구이는 내가 대통령”…고기에 인생 건 국중성의 ‘육통령’

중앙일보

입력

‘육통령’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메뉴는 지례 흑돼지 오겹살로, 전체 매출의 50%를 차지한다. 저온으로 15일 이상 숙성해 100% 대나무 비장탄으로 구운 오겹살이 먹기 좋게 익었다. 보기만 해도 입안에 뭔가 물씬 고일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육통령’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메뉴는 지례 흑돼지 오겹살로, 전체 매출의 50%를 차지한다. 저온으로 15일 이상 숙성해 100% 대나무 비장탄으로 구운 오겹살이 먹기 좋게 익었다. 보기만 해도 입안에 뭔가 물씬 고일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친구가 도시락 반찬으로 자주 싸 오던 돼지비계 고추장 볶음을 늘 부러워하던 소년이 있었다. 친구에겐 아픈 사연이 젖은 반찬이겠지만, 얻어먹은 소년에게는 그게 고기 맛의 원체험(原體驗)이 됐다. 소년은 자라서 돼지고기구이 음식점을 열어 유명해졌다. 원체험이란 기억에 오래 남아 있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는 어린 시절의 체험을 말한다.

대나무 숯으로 구운 흑돼지 오겹살·목살 
“중학교(담양중 35회) 때 친구가 싸 온 고추장에 볶은 비계의 사각거리면서 고소한 맛을 잊을 수 없다. 고기 다루면서 보니 흑돼지 비계였다. 어릴 때 추억의 맛, 그런 돼지고기를 찾아다녔다. 요즘 나이 든 손님들이 우리 음식점 고기를 먹으면 ‘어렸을 때 먹던 그 비계 맛’이라고 좋아한다.”

서울 핵심상권인 명동·교대 앞·홍대 앞에서 흑돼지 오겹살·목살 구이로 기세를 올리고 있는 ‘육통령’의 국중성(50) 대표 얘기다. 그는 부인 김옥경(43) 씨와 3개 사업장을 직영하고 있다.

대표 음식은 흑돼지 오겹살 구이다. 직원이 구워주는 대로 한 점 입에 물면 ‘육즙이 폭발’한다. 육즙이라 하지만 실은 비계의 기름이 녹아 흐르는 액체라 해야 맞을 것이다. 신선한 흑돼지 고기를 15일 이상 저온 숙성해 두툼한(2.5㎝) 스테이크 식으로 잘라 좋은 숯에 굽기까지 3요소가 빚어낸 하모니다.

여주인이 익은 고기 한 점을 앞접시 대신 놓은 돌판에 올려주며 아무것도 찍지 말고 먹어보라고 권했다. 먹어 보니 간이 모자라지 않았다.

여주인이 익은 고기 한 점을 앞접시 대신 놓은 돌판에 올려주며 아무것도 찍지 말고 먹어보라고 권했다. 먹어 보니 간이 모자라지 않았다.

잘 익은 흑돼지 오겹살. 직원들이 일일이 구워준다.

잘 익은 흑돼지 오겹살. 직원들이 일일이 구워준다.

두툼한 고기 양면을 노릇하게 구운 다음 한입 크기로 잘라 나란히 펼쳐놓고 속살을 익히고 있다.

두툼한 고기 양면을 노릇하게 구운 다음 한입 크기로 잘라 나란히 펼쳐놓고 속살을 익히고 있다.

고기 토막 한쪽 면을 노릇하게 구워 뒤집었다.

고기 토막 한쪽 면을 노릇하게 구워 뒤집었다.

오겹살은 스테이크 자르듯 2.5㎝로 두툼하게 잘라 굽는다.

오겹살은 스테이크 자르듯 2.5㎝로 두툼하게 잘라 굽는다.

‘육통령’의 대표 상품인 흑돼지 오겹살과 목살. 1인분은 150g씩이다.

‘육통령’의 대표 상품인 흑돼지 오겹살과 목살. 1인분은 150g씩이다.

고기를 굽기 위해 숯불에 실석쇠를 올렸다. 숯은 대나무를 갈아 반죽한 다음 진공상태에서 가래떡처럼 뽑아서 말리고 구운 중국산 비장탄이다.

고기를 굽기 위해 숯불에 실석쇠를 올렸다. 숯은 대나무를 갈아 반죽한 다음 진공상태에서 가래떡처럼 뽑아서 말리고 구운 중국산 비장탄이다.

고기는 1인분(150g)이 한 덩어리로 나온다. 통째로 실석쇠에 올려 숯불로 굽는다. 양쪽 표면이 노릇노릇 익으면 껍질부터 오도독뼈까지 오겹살 층이 고루 들어가도록 한입 크기로 자른다.  다시 석쇠에 가지런히 정렬해 익지 않은 표면을 익힌 다음 접시 대신 놓은 작은 돌판에 올려준다. 돌판에는 이 집 특유의 순태젓과 볶은 소금이 올려져 있다. 반찬은 그린 샐러드, 파 채와 상추 섞음 겉절이, 깻잎지, 명이나물 장아찌, 풋고추·마늘 편·쌈장이 나온다.

2.5㎝ 두툼한 고기를 사골 깻잎지에 싸서...

고기를 뺀 음식은 부인이 다 관리하지만, 특히 깻잎지와 순태젓은 특별히 공을 들인다. 구운 고기를 싸 먹는 깻잎지의 비밀은 사골국물이다. 간장에 양념 즙과 직접 곤 사골국물을 섞어 깻잎이 잠기도록 통에 담은 후 다진 파로 두툼하게 표면을 덮어 저온 숙성한다. 파가 빛과 공기를 차단해 깻잎의 푸른색이 변하지 않게 하고, 파 맛이 깻잎에 배도록 한다. 고기를 찍어 먹는 순태젓은 갈치속젓과 밴댕이젓을 갈아서 섞은 뒤 갖은 양념을 해 일정 기간 재워뒀다가 쓴다. 맛이 진하고 깊지만 짜지 않다. 소금은 간수를 9년 뺀 천일염에 와인을 뿌려 볶았다.

다진 대파를 걷어내자 속에서 깻잎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깻잎은 맛이 잘 들었지만 색은 생 채소일 때와 별 차이가 없다. 다진 대파를 두툼하게 덮어둔 덕분이다.

다진 대파를 걷어내자 속에서 깻잎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깻잎은 맛이 잘 들었지만 색은 생 채소일 때와 별 차이가 없다. 다진 대파를 두툼하게 덮어둔 덕분이다.

여주인 김옥경씨가 특별히 공을 들이는 깻잎지는 다진 대파를 두툼하게 덮어 보관한다.

여주인 김옥경씨가 특별히 공을 들이는 깻잎지는 다진 대파를 두툼하게 덮어 보관한다.

대파 덮은 걸 걷어내자 황금빛 노란 백김치가 드러난다. 김치가 익어도 배추 색이 변하지 않게 하려고 대파를 덮었다.

대파 덮은 걸 걷어내자 황금빛 노란 백김치가 드러난다. 김치가 익어도 배추 색이 변하지 않게 하려고 대파를 덮었다.

대파의 거친 잎으로 덮인 채 익어가는 백김치. 김치말이국수에 들어간다.

대파의 거친 잎으로 덮인 채 익어가는 백김치. 김치말이국수에 들어간다.

오겹살이 구워지자 주인 부부는 우선 아무것도 찍지 말고 먹기를 권했다. 의외로 간이 싱겁지 않았다. 즙이 물씬하면서 부드럽게 씹히는 고기에서 기분 좋은 육향이 올라왔다. 단단한 비계는 사각거리면서 고소하고, 비계에 이어진 껍질은 쫀득했다. 평소 고기를 즐기지 않는데도 당겼다. 주인은 이어서 볶은 소금, 순태젓, 깻잎지, 명이나물 순으로 곁들여 먹기를 추천했다. 한 덩이를 잘라 구운 고기를 다 먹으니 “고기 좀 아는 남자, 국중성” “돼지고기 맛의 기준이 되다”라는 홍보문구가 터무니없는 자기 자랑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운 고기를 찍어먹는 순태젓과 볶은 소금. 순태젓은 갈치속젓과 밴댕이젓을 갈아서 섞은 다음 갖은 양념을 했고, 소금은 9년 동안 간수를 빼고 포도주를 부어 볶았다.

구운 고기를 찍어먹는 순태젓과 볶은 소금. 순태젓은 갈치속젓과 밴댕이젓을 갈아서 섞은 다음 갖은 양념을 했고, 소금은 9년 동안 간수를 빼고 포도주를 부어 볶았다.

기본 세트에 들어가는 그린 샐러드.

기본 세트에 들어가는 그린 샐러드.

파·양파 채와 상추 겉절이.

파·양파 채와 상추 겉절이.

여주인 김옥경씨가 특별히 공을 들이는 사골국물 깻잎지.

여주인 김옥경씨가 특별히 공을 들이는 사골국물 깻잎지.

명이나물 장아찌.

명이나물 장아찌.

2003년부터 고깃집을 했지만 오겹살에 주력하기는 2012년 12월 자체 브랜드 ‘육통령’으로 출범할 때부터다. 오겹살을 팔려고 삼겹살을 함께 취급했다. 손님들은 앉으면 일단 삼겹살을 부른다. 그때 “오겹살도 맛있으니 드셔 보시라”며 반반을 권유한다. 한번 먹어보면 다시 주문할 때는 대부분 오겹살을 선택한다. 5년 만에 오겹살이 전체 판매량의 50%까지 차지했다. 쓰는 고기는 흑돼지가 전체의 70%, 백돼지·소가 30%쯤 된다. 흑돼지 판매량은 오겹살 70%, 목살 25%, 앞다릿살(구이용) 5% 정도다. 갈비와 삼겹살은 백돼지를 쓴다.

상에 나가기 전 저장고에서 마무리 숙성 중인 흑돼지 오겹살.

상에 나가기 전 저장고에서 마무리 숙성 중인 흑돼지 오겹살.

진공포장 상태로 저온 장기 숙성되고 있는 흑돼지 오겹살과 목살. 이 상태로 14일을 뒀다가 포장을 풀어 1~2일 더 숙성한다.

진공포장 상태로 저온 장기 숙성되고 있는 흑돼지 오겹살과 목살. 이 상태로 14일을 뒀다가 포장을 풀어 1~2일 더 숙성한다.

‘육통령’ 교대점의 전용 숙성실. 내부 온도는 영하 1.7도 안팎이다(고기 양에 따라 유동적). 흑돼지 오겹살·목살은 진공포장 상태로 14일, 포장을 풀고 손님상에 나갈 크기로 잘라서 1~2일 숙성 과정을 거친다. 저장고 바닥에서는 김치가 익어간다.

‘육통령’ 교대점의 전용 숙성실. 내부 온도는 영하 1.7도 안팎이다(고기 양에 따라 유동적). 흑돼지 오겹살·목살은 진공포장 상태로 14일, 포장을 풀고 손님상에 나갈 크기로 잘라서 1~2일 숙성 과정을 거친다. 저장고 바닥에서는 김치가 익어간다.

명동에 본점, 교대·홍대 앞에는 직영점

흑돼지는 경북 김천 (주)지례흑돼지에서 공급한다. 양돈장에서 매주 월·목요일 도축을 의뢰하고, 음식점에서는 고기 팔리는 사정에 따라 주 1~2회 주문한다. 월요일 도축한 고기가 수요일 서울에 도착하면 영하 1.7도(고기양에 따라 약간 유동적) 숙성실에서 진공포장 상태로 14일 정도 뒀다가 포장을 풀고 1~2인분 크기로 잘라 1~2일 공기를 쐰 다음 상에 나간다. 긴 시간 숙성은 고기를 부드럽게 해준다. 맛의 차이는 크지 않다. 웬만한 집은 저장고 놓을 자리가 없어서 장기 숙성을 못 하지만 ‘육통령’은 명동점 4층 66㎡(20평) 전체를 조리실로 쓰니까 그만한 공간이 나온다. 교대점에는 입구에 속이 다 들여다보이는 숙성실이 따로 있다.

‘육통령’ 명동 본점은 작은 건물 4층 전체를 사용한다. 처음엔 층마다 개성이 다르게 운영하려고 간판도 다르게 달았으나 흑돼지 오겹살·목살 구이 손님이 넘쳐 구상대로 되지 않았다.

‘육통령’ 명동 본점은 작은 건물 4층 전체를 사용한다. 처음엔 층마다 개성이 다르게 운영하려고 간판도 다르게 달았으나 흑돼지 오겹살·목살 구이 손님이 넘쳐 구상대로 되지 않았다.

세련된 감각으로 꾸민 ‘육통령’ 교대점 외관. 서울교육대학교 맞은편 큰 건물 1층 전체를 쓰고 있다.

세련된 감각으로 꾸민 ‘육통령’ 교대점 외관. 서울교육대학교 맞은편 큰 건물 1층 전체를 쓰고 있다.

‘육통령’ 홍대점 전면. 특이하게 흑돼지 구이 집을 클럽 분위기로 꾸몄다. 실내에 들어가면 ‘6tong0’이라는 준 브랜드 장식을 하기도 했다.

‘육통령’ 홍대점 전면. 특이하게 흑돼지 구이 집을 클럽 분위기로 꾸몄다. 실내에 들어가면 ‘6tong0’이라는 준 브랜드 장식을 하기도 했다.

매장 위치·운영 시간은 ▷명동 본점(서울 중구 명동8나길 37-2/전화 02-778-8592): 120석. 명절 당일 휴무. 오전 11시 30분~다음날 오전 2시 ▷교대직영점(서울 서초구 반포대로20길 69 지온 빌딩 1층/전화 010-3942-8592): 100석. 명절 전날·당일 휴무. 오전 11시 30분~오후 11시 30분(오후 3시~5시 준비시간) ▷홍대 직영점(서울 마포구 와우산로17길 25/전화 010-5879-8592): 68석. 명절 당일 휴무. 낮 12시~다음날 오전 3시.

메뉴는 ▷흑돼지 오겹살·목살(각 150g 1만5000원) ▷흑돼지 소금구이(앞다릿살 150g 1만3000원) ▷삼겹살(백돼지 150g 1만4000원) ▷수제 돼지갈비(백돼지 250g 1만5000/1만6000원) ▷숙성 김치찌개 7000원 ▷숙성 김치말이국수 6000원 ▷토장찌개 5000원 ▷교대점 2인 이상 주문 가능한 육통령정식 1만1000원(평일 할인 9000원) ▷갈비정식 1만5000원(평일 할인 1만2000원). ※홍대점은 고깃값이 1인분 1000원 정도 싸다.

점심 메뉴는 숙성 김치찌개, 토장찌개
점심 때 단골들은 숙성 김치찌개, 토장찌개를 번갈아 먹는다 가끔은 숙성 김치말이 국수를 별식으로 찾는다. 토장찌개에는 국 대표의 음식 취향이 깊이 반영됐다. 토속된장찌개를 줄여 이름을 ‘토장찌개’라 했다. 부부가 고깃집을 다니면서 가장 마음에 안 들었던 음식이 된장찌개였다. 파나 애호박이 채 익지도 않은 채 나오는 된장찌개에 숟가락이 잘 가지 않았다.

교대점의 점심 메뉴 육통령정식. 10가지 반찬에 숙성김치찌개나 토장찌개를 선택할 수 있다. 2인 이상 주문할 수 있는데 평일 1인 9000원, 주말 1만 1000원. 찌개 대신 돼지갈비로 하면 평일 1만2000원, 주말 1만5000원이다.

교대점의 점심 메뉴 육통령정식. 10가지 반찬에 숙성김치찌개나 토장찌개를 선택할 수 있다. 2인 이상 주문할 수 있는데 평일 1인 9000원, 주말 1만 1000원. 찌개 대신 돼지갈비로 하면 평일 1만2000원, 주말 1만5000원이다.

남편의 취향과 의중을 반영해 부인이 1년에 걸쳐 개발했다는 ‘육통령’의 토장찌개는 감자·호박·양파 같은 채소를 숭덩숭덩 큼직하게 썰어 넣고 짜지 않게 오래 끓인다는 특징이 있다.

남편의 취향과 의중을 반영해 부인이 1년에 걸쳐 개발했다는 ‘육통령’의 토장찌개는 감자·호박·양파 같은 채소를 숭덩숭덩 큼직하게 썰어 넣고 짜지 않게 오래 끓인다는 특징이 있다.

앞접시에 덜어낸 토장찌개 속 호박은 오래 끓여 형체가 뭉개졌다.

앞접시에 덜어낸 토장찌개 속 호박은 오래 끓여 형체가 뭉개졌다.

끓이면서 먹던 토장찌개에 현미를 도정할 때 나온 속쌀겨를 두어 숟갈 넣자 음식 모양과 맛이 확 달라졌다. 더 구수하고 부드러운 맛이었다.

끓이면서 먹던 토장찌개에 현미를 도정할 때 나온 속쌀겨를 두어 숟갈 넣자 음식 모양과 맛이 확 달라졌다. 더 구수하고 부드러운 맛이었다.

짜지 않고 맛있는 ‘육통령’ 스타일의 된장찌개를 만드는 데 1년이 걸렸다. 강원도 횡성에서 덜 짜게 담근 막장을 공급받아 큰 감자를 반 자르고 호박·양파는 숭덩숭덩 썰어 넣어 호박이 무르도록 끓여 뒀다가 여린 채소와 두부를 더 넣고 상에서 재탕해 깊은 맛이 나게 한 찌개다. 국 대표는 “이런 된장찌개를 세 번 끓이면 호박이 다 뭉그러진다. 거기에 무생채 넣고 밥을 비벼 먹으면 고향의 맛이 나온다”고 했다. 토장찌개는 고향의 맛을 추구한 음식이라는 얘기겠다.

교대점에는 점심 메뉴로 두 가지 정식이 있다(2인 이상 가능). 육통령정식과 갈비정식이다. 상에는 반찬 10가지가 차려진다. 잡채·전(채소 또는 해초)·두부조림·양념코다리튀김·김치찜·얼갈이나물·방풍나물·다래순·무생채·오징어채볶음. 육통령정식을 먹으면 토장찌개나 숙성 김치찌개를 선택할 수 있다. 갈비정식에는 돼지갈비 구이가 나온다.

교대점엔 갓 지은 밥+10찬 정식 2가지
토장찌개를 반쯤 먹다가 정미기에서 현미 도정할 때 나온 속쌀겨[米糠]를 한 숟갈 퍼 넣자 맛이 구수하고 부드럽게 변했다. 속쌀겨는 맛도 맛이지만 영양성분이 쌀보다 윗길이다. 정미기가 있는 교대점에서만 가능하며, 아는 사람이 해달라고 할 때만 해준다.

점심에 숙성김치찌개를 먹으면 24시간 이상 숙성한 반죽으로 수제비를 떠 넣어준다.

점심에 숙성김치찌개를 먹으면 24시간 이상 숙성한 반죽으로 수제비를 떠 넣어준다.

끓는 김치찌개에 수제비를 떠 넣고 있다.

끓는 김치찌개에 수제비를 떠 넣고 있다.

백김치, 얼갈이·열무물김치, 오이지가 어우러져 깊고 시원한 맛을 내는 김치말이국수.

백김치, 얼갈이·열무물김치, 오이지가 어우러져 깊고 시원한 맛을 내는 김치말이국수.

점심시간에는 김치찌개에 수제비도 떠 넣어준다. 24시간 숙성한 반죽으로 뜬 수제비는 차지고 부드럽다. 김치는 업체에 주문해 담가오지만 고기 숙성고에서 익힌다. 일정하게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익기 때문에 메뉴에 ‘숙성 김치’를 특별히 강조한다. 시원하고 깔끔하면서 깊게 익은 맛, 고기 냉장고에서 익은 김치를 나는 ‘팔판정육점’에서 몇 번 먹어봤다. 그때마다 김치 맛을 내는 데 양념보다 중요한 것은 일정한 온도에서 천천히 숙성하는 거라고 생각했다.(※[이택희의 맛따라기] 암소 1등급만 파는 ‘암소 고집’…이경수 ’한우 명장’의 팔판정육점 http:www.joongang.co.kr/article/20472556 참조)

돼지갈비는 백돼지를 쓴다. 양념이 너무 진하지도 않고 오래 재워두지도 않아 고기와 양념 맛이 다투지 않고 서로 제 몫을 한다.

돼지갈비는 백돼지를 쓴다. 양념이 너무 진하지도 않고 오래 재워두지도 않아 고기와 양념 맛이 다투지 않고 서로 제 몫을 한다.

잘 구워 잘라놓은 ‘육통령’ 돼지갈비.

잘 구워 잘라놓은 ‘육통령’ 돼지갈비.

한국인이 외식할 때 가장 흔히 먹는 게 삼겹살이다. 외국에서 수입하는 돼지고기의 절반이 삼겹살이고, 세계에서 생산되는 삼겹살의 20~25%를 한국에서 소비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렇게 되기까지 역사는 길지 않다. 내 어린 시절인 1960년대에는 고기를 구워 먹는 일이 드물었다. 그럴 고기가 없었다. 돼지고기를 구워서 먹은 첫 기억은 1967년 겨울쯤이다. 그 시절 시골 마을에서는 설이 가까워지면 돼지 두어 마리를 잡았다. 차례상에 올릴 돼지고기가 집집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몇 사람이 추렴을 하고 예약을 받아 한 마리 분량이 차면 ‘거사’를 한다. 당시 생돼지 한 마리는 보통 60㎏(100근)이었고 90㎏(150근)이면 큰 돼지라고 했다. 요즘은 110㎏이 도축 규격돈이다.

양념 안 하고 굽는 고기 원조는 '방자구이'
동네에서 돼지를 잡으면 아버지는 다리 하나를 사 왔다. 굵직한 정강이뼈가 박힌 채였다. 고깃덩어리는 껍질 한쪽에 칼집을 내고 새끼줄 고리를 끼워 기둥이나 서까래에 박힌 못에 걸어뒀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니 그렇게 보관할 수밖에 없었다. 고기를 걸면서 귀퉁이 한 덩이를 잘라 손가락 굵기로 썰어 부엌 아궁이 불잉걸을 조금 끌어내 석쇠 구이를 했다. 아무 양념도 하지 않고 구워 소금 찍어 먹었다. 나는 아버지 옆에 앉아 구워주는 고기를 제비 새끼처럼 받아먹었다. 그 맛을 잊을 수 없어서 내 아들이 대여섯 살 무렵 고향 집에 갔을 때 바로 그 자리에서 고기를 그렇게 구워준 적이 있다. 아들은 두고두고 가장 맛있는 고기였다고 말하곤 했다.

말하자면 ‘방자(房子)구이’였다. 조선 시대 지방 관아에서 심부름하던 남자 하인 방자가 관원을 수행해 출타했을 때 상전이 대접받는 동안 마당에서 기다리다가 부엌에서 고기를 얻어 양념은 못 하고 아궁이나 모닥불에 구워 소금만 뿌려서 먹은 데서 방자구이라는 음식이 유래했다. 오늘날의 등심구이 또는 소금구이의 원형이라 할 만한 음식이다.
방자구이로 구운 고기 맛을 처음 경험한 내가 삼겹살 구이를 처음 사 먹었을 때는 1982년 가을 어느 토요일로 기억한다. 광화문 동화면세점 뒤 세종대로21길에 편입됐을 텐데, 현재 커피숍과 삼계탕집이 입주해 있는 서울 중구 세종대로21길 55(태평로1가 76-1) 맞은편 밥집에서였다. 학보사 조교였던 나는 기사를 마감하느라 오후 2시쯤 늦게 점심으로 삼겹살을 먹었다. 냉동이었지만 시장해서 그랬는지, 고기를 구워 먹는 게 흔치 않을 때여서 그랬는지 아주 맛나게 먹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기름소금, 저민 마늘, 김치 같은 게 따라 나왔지만 요즘 같은 파 채나 쌈 채소는 없었다.

돼지 목살도 2.5㎝로 두툼하게 잘라 양면을 30~40초씩 구운 다음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먼저 구운 고기는 더 익지도, 식지도 않게 접시에 담아 석쇠에 올려두고 먹는다.

돼지 목살도 2.5㎝로 두툼하게 잘라 양면을 30~40초씩 구운 다음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먼저 구운 고기는 더 익지도, 식지도 않게 접시에 담아 석쇠에 올려두고 먹는다.

목살 덩어리 양면을 구운 다음 잘라서 속살을 익히고 있다.

목살 덩어리 양면을 구운 다음 잘라서 속살을 익히고 있다.

삼겹살구이 흔히 먹은 역사 길어야 40년

삼겹살구이의 유래에 대해 정설은 없으나 1970년대 중반 설이 유력하다. 역사가 40년쯤 됐다는 얘기다. 삼겹살이 식당에서 빠르게 퍼진 시기는 1970년대 말~1980년대 초 아닌가 싶다. 삼겹살이라는 말은 1959년 신문에 처음 등장(경향신문 1월 20일 자 4면)했고 1994년에야 국어사전에 올랐다. 그 전에는 세겹살 또는 삼층저육(三層猪肉)이라 했다. 가장 앞선 기록은 방신영(1890∼1977) 옛 이화여전 교수가 쓴 『조선요리제법』(1931년 6판)에 나오는 “세겹살(뱃바지) 배에 잇는 고기(돈육 중에 제일 맛잇는 고기)”라는 구절이다.

신문에 처음 등장한 건 동아일보 1934년 11월 3일 자(조·석간 발행 때 석간 4면)였다. ‘육류의 조코(좋고) 그른 것을 분간해 내는 법’이라는 기사에서 “도야지(돼지) 고기의 맛으로 말하면 … 뒤 넓적다리와 배 사이에 있는 세겹살이 제일 맛이 있고 그 다음으로는 목덜미 살이 맛이 있다”고 했다. 같은 신문에 ‘세겹살’이 마지막 쓰인 건 1974년 12월 5일 자 5면이라고 한다. ‘값싸고 영양가 높은 돼지고기 조리법’ 기사에서 ‘돼지고기 세겹살 조림’을 소개했다.

2014년 7월 23~27일 나는 강원 영월군 북면 마차리 920-5 외딴 산골 ‘내 마음의 외갓집’이라는 농가민박에서 휴가를 보낸 적이 있다. 물건 살 게 있어 면사무소가 있는 마을까지 나갔더니 어느 음식점에 ‘삼겹살 발상지’라는 큰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1960년대 영월·태백 등지의 광산에서 광부들에게 목에 낀 석탄가루를 없애는 데 좋다 하여 돼지고기를 먹도록 매월 교환권을 나눠줬다고 한다. 그때 고기를 많이 먹으려고 값이 싼 삼겹살로 바꿔 구워 먹거나 두루치기를 해 먹었는데, 그게 오늘날 삼겹살의 원형이라는 설명이었다. 예전 광부나 납 활자를 다루는 인쇄소 종사자들은 목에 낀 중금속 먼지를 제거한다고 돼지고기 비계를 먹었다(지금도 관행이 남아 있다).

중앙일보에서도 컴퓨터 제작 시스템이 도입되기 전까지는 공무국 사원들에게 돼지고기 쿠폰을 지급했다. 문선-조판-윤전 전 과정에 납이 쓰였기 때문이다. 명목은 ‘위생수당’이었다. 남대문시장 정육점에서 고기와 바꿀 수 있는 쿠폰으로 줬다. 1990년대 초반까지 있었는데 당시 가치로 월 1만5000원쯤이었다고 한다.

조리복을 갖춰 입고 표면을 익힌 오겹살을 자르는 국중성 대표. 점포 세 곳을 직영하다 보니 돌아다니느라 이런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다.

조리복을 갖춰 입고 표면을 익힌 오겹살을 자르는 국중성 대표. 점포 세 곳을 직영하다 보니 돌아다니느라 이런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다.

대학졸업 10년 새 5번째 직업 고깃집 주인

중앙일보에서 돼지고기 쿠폰 지급이 중단될 무렵인 1993년 ‘육통령’의 국중성 대표는 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주택건설회사에 입사했다. 회사 일이 적성에 맞지도 않았고, 회사 출퇴근에만 하루 4시간이 걸렸다. 10개월 다니다가 그만뒀다. 1년쯤 감정평가사 시험 준비를 했다. 어느 날 친구의 건재상(벽돌 납품)에 놀러 갔더니 영업을 해보라 했다. 1년쯤 하다가 1995년 전세금을 빼서 회사를 차렸다. 사업도 순항했고 1996년엔 결혼도 했다.

1997년 하반기에 들어서자 웬일인지 수금이 안 되기 시작했다. 외환위기의 전조였다. IMF 구제금융을 받는 사태가 오자 거래 회사들이 줄줄이 무너졌다. 다음 해 6월까지 수금하러 쫓아다녔지만 돈은 안 들어오고 마음만 상했다. 채무자를 만나도 돈 나올 구석이 없는 걸 뻔히 알면서 채근하는 마음이 좋을 리 없었다. 마음고생에 잠도 안 오고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돈보다 마음이 편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수금을 포기했다. 받아둔 어음은 모두 폐지가 됐지만 작정을 하니 마음은 홀가분했다.

회사 정리에 앞서 외환위기 사태가 절정이던 1998년 초 처가(양천구 목2동 염창역 부근) 앞에 있는 수퍼마켓을 인수했다. 채소전을 겸하는 수퍼마켓을 2년 운영했지만 일이 체질에 맞지 않았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저녁형 인간인데 매일 새벽 4시에 트럭 몰고 채소 도매시장에 나가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

 그는 담양 읍내서 8㎞(20리)쯤 떨어진 전남 담양군 월산면 광암리에서 장손으로 태어났다. 산골 마을이다. 광주의 고등학교와 서울에서 대학을 마칠 때까지 자취 경력이 7~8년 되는 그는 막연하나마 ‘음식점을 하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틈날 때마다 동네 PC방에 가서 음식점 정보를 검색했다. PC방 주인은 “음식점보다 PC방을 해라. 1억5000만원 들이면 한 달에 1500만원은 번다”고 솔깃한 말을 했다. 스스로 “귀가 얇다”고 말하는 국 대표는 PC방을 인수하고 수퍼마켓은 처남에게 넘겼다.

소고기구잇집 열고 열흘 만에 광우병 파동
PC방도 나쁘지 않았지만 음식점 생각이 머리에 맴돌았다. PC방 관리하면서 음식점 검색도 꾸준히 하고, 궁금한 집은 찾아가 먹어보고 했다. 2003년 12월 10일, 결국 그는 서울 종각역 근처에 100m²(약 30평) 규모로 소 갈빗살 화로구이 전문점 ‘화로명가’를 열었다. 승산이 있어 보여 전재산과 주변에서 2억 넘는 돈을 빌려 올인했다. 그랬는데 개업 열흘 만에 광우병 파동이 왔다. 임기응변으로 삼겹살을 급하게 들였다. 뜻한 바와 다르게 ‘돼지고기 전문가’의 길로 들어선 계기다. 발 빠른 대처로 위기를 넘긴 ‘화로명가’는 한 달 평균매출이 7000만~8000만원 오를 만큼 성공적이었다. 음식점이 자리를 잡자 점장에게 맡겨 운영하던 PC방은 다음 해 4월 처분했다.

자신이 생겨 2005년 명동 현재 ‘육통령’ 자리에 ‘떡쌈시대’라는 전수창업(傳受創業) 음식점을 하나 더 차렸다. 한 층이 66㎡(20평)인 4층 건물 전체를 빌렸다. 인테리어가 아닌 리모델링 수준의 공사를 하고 개점을 했다. 잘되고 있는데 2006년 ‘화로명가’ 건물주가 바뀌면서 명도소송에 휘말렸다. 한마디로 나가라는 요구였다. 서울 중심상권 1층에 규모가 커 임대차보호법 대상도 아니었다. 1년 가까이 소송을 했지만 그해 12월 패소했다. 자리를 내놓고 싶지 않고, 오기도 생겨 임대료 3배를 주고 새 주인과 재계약을 했다. 처형이 맡아 지난 8월까지 14년을 운영했지만 소송, 철거 후 원상회복, 재시설 비용으로 번 돈 다 들어가고 임대료도 비싸서 남은 게 없다고 국 대표는 말했다.

경북 김천시 (주)지례흑돼지에서 고기를 보내온 택배 상자에 붙은 배달표에는 ‘지례면 교리 530-1번지’라는 보낸 사람 주소가 선명하다.

경북 김천시 (주)지례흑돼지에서 고기를 보내온 택배 상자에 붙은 배달표에는 ‘지례면 교리 530-1번지’라는 보낸 사람 주소가 선명하다.

좋은 삼겹살 찾다가 만난 흑돼지 오겹살

명동 ‘떡쌈시대’는 2011년 전수 본부에서 상호를 쓰지 말라는 통보가 왔다. 급한 대로 ‘떡삼겹돌김치’라고 이름을 바꿔 또 한 번의 임기응변을 했다. 고기 다룬 지 8년, 가게도 뺏겨 보고 이름도 뺏겨 보니 그는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서게 됐다. 내 브랜드, 나만의 음식이 화두였다.

“삼겹살은 너무 기름져서 좋아하지 않는다. 양념한 돼지갈비를 더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돼지고기를 찾으러 나섰다. 양돈장과 직거래 하고 싶었다. 양돈장과 맛집을 찾아 매주 두어 곳씩 전국을 돌아다녔다. 강원도·제주도와 경북 김천시 지례까지.”

정보도 인맥도 없으니 발품밖에 길이 없었다. 더듬더듬 찾아다니고 듣고 먹어보는 순행을 했다. 평소에 밥을 잘 안 먹는 편인데 그런 날은 하루 5~6끼를 먹었다. 좋아하지 않는 삼겹살만 종일 먹기도 했다. 오로지 ‘정말 맛있는 삼겹살’만 생각했다. 고향이 담양이어서 처음에는 브랜드 이미지를 담양으로 만들어가고 싶었다. 고향 돼지고기를 대나무 숯으로 굽고, 다른 식재료도 담양에서 조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돼지고기를 택배로 정기적으로 보내줄 직거래 양돈장을 찾을 수 없었다. 가장 입에 맞는 돼지고기를 강원도에서 만났지만 그곳 또한 직거래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는 지역 특산 돼지가 있었다고 전한다. 강화돈·정읍돈·지례돈 같은 말이 있어 그 지역을 찾아다녔다. 명맥이 남은 곳은 지례뿐이었다. 흑돼지 고기는 먹어 보니 뭔가 달랐다. 비계가 치밀한 조직감으로 사각사각 씹히고 고소하면서 단맛이 돌았다. 중학교 친구가 도시락 반찬으로 싸 와 얻어 먹은 비계 고추장 볶음이 떠올랐다. 처음부터 흑돼지를 찾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맛있는 돼지고기를 찾았는데 흑돼지에서 그 맛을 찾았다. 주인은 집에서 따로 키우는 씨돼지를 보여줬다. 선대부터 대물림한 후계 씨돼지라고 했다. 다른 지역 흑돼지와 달라 보였다. 직거래도 가능하다고 했다. ㈜지례흑돼지와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교대점의 테이블 사이 칸막이 장식. ‘요리 좀 하는 여자-김옥경/고기 좀 아는 남자-국중성’이라는 문구에서 주인 부부의 음식에 대한 열정과 자신감이 읽힌다.

교대점의 테이블 사이 칸막이 장식. ‘요리 좀 하는 여자-김옥경/고기 좀 아는 남자-국중성’이라는 문구에서 주인 부부의 음식에 대한 열정과 자신감이 읽힌다.

'내 브랜드 만들자' 6개월 고심해 "육통령"

고기를 찾으러 다니는 동안에도 머릿속에는 브랜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전문회사 2곳에 의뢰했는데 한 곳은 스스로 포기했고, 다른 한 곳은 후보작 10개를 제시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6개월을 그 생각에 빠져 살았다. 문득 ‘육도락’이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특허청 등록 상호를 검색해보니 이미 주인이 있었다. 스마트폰 붙잡고 매일 검색하고 생각하기를 반복하다가 고기 대통령이라는 뜻의 ‘육통령’이 홀연 떠올랐다. 키워드 ‘통령’을 검색하자 ‘양통령’은 있는데 ‘육통령’은 주인이 없었다. 2012년 12월 ‘육통령’이 출범했다. 주황색 네온사인으로 요란하게 간판을 만들어 달고 메뉴도 개편하면서 기세 좋게 깃발을 올렸다.

‘육통령’이라는 이름을 지을 때만 해도 1등 해야 한다는 의욕이나 자신감은 없었다. 간판을 내걸고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고기 대통령, 1등을 해야겠다는 의욕이 꿈틀댔다. 육통령 초기에는 주물 판에 고기와 김치를 구워 먹는 보통 스타일로 했다. 물론 원육은 지례 흑돼지로 하고, 김치 숙성 관리도 나름의 비법으로 했다.

이 시기 손님들 반응은 맛있다, 그저 그렇다가 10명 중 4명쯤으로 갈렸고, 1~2명은 맛없다고 했다. 이대로는 1등의 가망이 없었다. 1년 만에 노선을 완전히 바꿨다. 숯불로 굽기로 했다. 차별화·고급화의 기본이라 생각했다. 숯불구이에 맞춰 내부시설을 완전히 새로 고쳤다. 직화에 굽는 고기는 2.5㎝ 두께 스테이크 식으로 잘랐다. 직원들이 석쇠에서 일일이 표면을 구운 다음 잘라 내부까지 익혀서 그릇에 담아 놓으면 손님이 먹을 수 있게 했다. 두툼한 고기를 자르기 위해 직원들은 한복 집에서 쓰는 재단 가위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서울 여자 김옥경씨와 시골 남자 국중성씨 부부. 아내는 소스와 반찬, 남편은 고기를 책임진다.

서울 여자 김옥경씨와 시골 남자 국중성씨 부부. 아내는 소스와 반찬, 남편은 고기를 책임진다.

고기는 남편, 일반 음식은 부인이 담당

숯은 대나무 100% 비장탄(備長炭)을 선택했다. 생대나무를 갈아서 반죽한 다음 진공상태에서 가래떡처럼 성형해 말려서 구운 숯이다. 일반 백탄보다 불이 오래 가고 냄새가 적어 손님 옷에 배지 않는 장점이 있다. 주물 불판 대신 실석쇠에 고기를 구웠다. 반찬 구성도 선택과 집중, 꼭 필요한 것만 맛있게 만들어 올렸다.

대나무를 갈아서 반죽하고 성형해 구운 비장탄. 100% 대나무로 만들어 흔히 고깃집에서 쓰는 합성탄과는 다르다.

대나무를 갈아서 반죽하고 성형해 구운 비장탄. 100% 대나무로 만들어 흔히 고깃집에서 쓰는 합성탄과는 다르다.

100% 대나무 비장탄은 중국에서 만든 것을 수입해서 쓴다.

100% 대나무 비장탄은 중국에서 만든 것을 수입해서 쓴다.

숯불을 피우는 착화기. 닫으면 뚜껑 쪽에서 가스 불이 나와 숯을 달궈 불이 붙는다.

숯불을 피우는 착화기. 닫으면 뚜껑 쪽에서 가스 불이 나와 숯을 달궈 불이 붙는다.

고기는 국 대표가 조달하고 반찬은 부인이 전담한다. 부인은 주방 일에 관여하지 않았었다. 문제는 주방장 바뀔 때마다 음식 맛과 스타일이 바뀌는 거였다. 주방장들은 전임자 하던 대로 한다고 하지만 결국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바꿨다. 일정한 맛을 지켜가려면 한 사람이 지속해서 관리할 필요가 있었다. ‘육통령’ 출범과 함께 부인이 직접 나섰다. 국 대표는 “음식점 시작할 때 장모님에게 아내는 주방 일 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하다 보니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아내가 손을 대지 않을 때는 몰랐는데 일단 시작하니 일손이 무척 빨라 놀랐다”고 말했다.

숙성김치말이국수에 쓰는 열무·얼갈이물김치. 부인 김옥경씨 작품이다.

숙성김치말이국수에 쓰는 열무·얼갈이물김치. 부인 김옥경씨 작품이다.

부인은 세 살 때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었다. 어머니는 어린 4남매와 살아내려고 하숙집을 크게 했다. 하숙생은 지방에서 전근 온 선생님들 위주로 직장인이 20~30명이나 됐다. 막내였던 부인이 중학생일 때 설상가상 어머니는 중풍이 왔다. 여중생이지만 집안 살림을 나 몰라라 할 처지가 아니었다. 밥도 하고, 상도 차리고, 이불 꿰매는 일까지 도와야 했다. 그 덕에 일을 무서워하지 않게 됐고 솜씨도 단련됐다. 부인은 “기성품 소스는 쓰지 않는다. 모두 만들어서 쓴다. 한식 찬모들은 저울을 잘 안 쓴다. 눈대중으로 다 하기 때문에 맛이 안정적이지 않다. 그래서 ‘육통령’만의 맛을 내고 지켜가려고 저울로 달아 표준화하고 직접 만들고 관리한다”고 말했다.

교대점에 들어서면 9개의 밥솥이 먼저 손님을 반긴다. 한창 바쁜 점심시간에 직원이 밥을 푸고 있다. 교대점에는 정미기(맨 왼쪽 밥솥 옆)를 설치하고 현미를 매일 즉석 도정해 밥을 짓는다. 정미기 위의 비닐봉지에 든 노란 가루는 현미를 도정할 때 나오는 속쌀겨다. 원하면 토장찌개에 풀어주고 나눠주기도 한다.

교대점에 들어서면 9개의 밥솥이 먼저 손님을 반긴다. 한창 바쁜 점심시간에 직원이 밥을 푸고 있다. 교대점에는 정미기(맨 왼쪽 밥솥 옆)를 설치하고 현미를 매일 즉석 도정해 밥을 짓는다. 정미기 위의 비닐봉지에 든 노란 가루는 현미를 도정할 때 나오는 속쌀겨다. 원하면 토장찌개에 풀어주고 나눠주기도 한다.

솥에서 갓 퍼낸 쌀밥. 어른들 말처럼 밥알이 탱글탱글하고 기름이 자르르 흐른다.

솥에서 갓 퍼낸 쌀밥. 어른들 말처럼 밥알이 탱글탱글하고 기름이 자르르 흐른다.

밥솥 9개 중 하나는 현미밥을 지어 원하는 손님에게 서비스로 준다. 보통 밥은 30분이면 짓지만 현미밥은 1시간이 걸린다. 이 밥을 먹으려고 일부러 오는 손님도 있다고 한다. 꼭꼭 오래 씹어서 먹으니 고소한 맛이 일반 밥보다 좋았다.

밥솥 9개 중 하나는 현미밥을 지어 원하는 손님에게 서비스로 준다. 보통 밥은 30분이면 짓지만 현미밥은 1시간이 걸린다. 이 밥을 먹으려고 일부러 오는 손님도 있다고 한다. 꼭꼭 오래 씹어서 먹으니 고소한 맛이 일반 밥보다 좋았다.

정미기에서 현미를 9분도 쌀로 도정하고 있다. 아래 오른쪽 손잡이로 쌀을 깎는 정도를 조절할 수 있다.

정미기에서 현미를 9분도 쌀로 도정하고 있다. 아래 오른쪽 손잡이로 쌀을 깎는 정도를 조절할 수 있다.

럭셔리한 교대점..."그래도 구상의 70% 수준"

교대점은 입구에 들어서면 정미기 옆으로 전기밥솥 9개가 먼저 손님을 맞는다. 현미로 받은 쌀을 매일 즉석 도정해 밥을 짓는다. 솥 1개는 현미밥을 짓고 나머지는 9분도 쌀로 밥을 짓는다. 10인용 솥이지만 가득 지으면 밥맛이 안 나기 때문에 5인분씩 짓는다. 밥을 짓는 데 30분(현미밥은 1시간) 걸려 평일 점심에는 밥솥이 쉴 틈 없이 돌아간다. 현미밥은 원하는 손님에게만 따로 제공한다. 쌀은 파주에서 한 포대 10㎏짜리 경기미 현미를 일주일에 한 번씩 받는다. 포장을 보니 품종은 ‘혼합’이라 하고 ‘경기미’라는 표시만 했다.

교대점 출입구에 쌓아둔 천일염 자루. ‘육통령’은 저렇게 9년간 간수를 뺀 소금을 쓴다. 옆 TV화면에는 ‘육통령’을 ’바삭한 껍질! 지례 흑돼지 오겹살집“이라고 소개하는 케이블 채널 tvN의 ‘수요미식회’ 방송 내용이 흐르고 있다.

교대점 출입구에 쌓아둔 천일염 자루. ‘육통령’은 저렇게 9년간 간수를 뺀 소금을 쓴다. 옆 TV화면에는 ‘육통령’을 ’바삭한 껍질! 지례 흑돼지 오겹살집“이라고 소개하는 케이블 채널 tvN의 ‘수요미식회’ 방송 내용이 흐르고 있다.

숙성육에 즉석 도정 쌀밥을 내면서도 국 대표는 미흡하다고 했다. “시설과 분위기가 꿈꾸는 고깃집 수준에 한참 못 미친다. 그나마 교대점이 나은 편이지만 구상의 70%밖에 안 됐다”고 했다. 모자란 게 무언지 내 눈으로는 찾기 어려웠는데 30%가 모자라다 하니 완성된 모습이 자못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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