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패킷 감청' 위헌 여부 두고 헌재서 공방

중앙일보

입력 2017.12.14 17:49

국가정보원 등 정보기관이 인터넷 회선의 디지털 정보를 수집하는 ‘패킷 감청’의 위헌 여부를 두고 14일 헌법재판소에서 날선 공방이 펼쳐졌다.

인터넷 송·수신 정보 빼내 범죄수사
"범죄 무관 정보까지 수사기관 습득"
"수집 허용 범위 범죄수사로 제한적"
이진성 소장 취임 후 첫 공개변론

이날 헌재는 대심판정에서 패킷 감청의 근거법률인 통신비밀보호법 5조 등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의 공개변론을 진행했다. 지난해 3월 문모 목사는 이 법조항이 통신의 비밀‧자유와 사생활의 비밀‧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패킷 감청은 인터넷 회선에서 오가는 전자 신호를 중간에서 빼내 판독하는 것을 말한다. 패킷은 디지털 정보가 전송되는 단위다. 패킷 감청을 하면 감청 대상이 사용하는 컴퓨터 화면을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다. 인터넷 검색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한 대화 내역도 파악된다.

패킷 감청은 서버를 압수수색할 수 없는 외국 업체의 e메일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정보를 얻는 데 효과적이다. 대공수사를 전담하는 국정원이 이를 주로 활용해왔다. 통신비밀보호법 5조는 범죄수사를 위해 통신제한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한다.

이날 공개변론에는 패킷감청을 통해 수집되는 정보의 범위가 쟁점이 됐다. 문 목사 측 참고인으로 나온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패킷 감청의 기술적 한계로 인해 수사기관이 해당 인터넷회선을 통해 송‧수신되는 모든 디지털 정보를 들여다보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제3자의 정보나 범죄와 무관한 정보까지 수사기관이 습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국정원 측은 “통신제한조치의 허가 및 집행 범위가 특정 인터넷회선으로 한정되고, 자료취득의 범위는 범죄수사 관련 내용으로 제한되기 때문에 포괄적이라고 할 수 없다”고 반론을 폈다.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오른쪽)이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국가정보원의 인터넷회선 '패킷 감청' 공개변론에 임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오른쪽)이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국가정보원의 인터넷회선 '패킷 감청' 공개변론에 임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 교수는 “패킷 감청 자체가 비밀에 부쳐져 있어 감청한 패킷이 다른 정보 수집이나 별군 수사에 사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이어 “패킷은 포괄적인 정보이므로 현행법으로는 감청이나 압수수색의 대상으로 볼 수 없다. 적법하게 패킷 감청을 하려면 입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은 “패킷 감청은 패킷의 수집, 재조합, 분석 과정을 거치도록 하며 엄격한 사법적 통제로 남용을 방지하고 있다. 범죄와 무관한 정보는 국정원에 오기 전에 폐기된다”고 반박했다. 또 “수사기법상 감청은 본래 밀행성과 포괄성을 특징으로 한다. 전화 감청이나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에서도 불가피하게 발생하므로 포괄성이 패킷 감청만의 특성은 아니다”고 맞섰다.

이날 공개변론은 이진성 헌재소장이 취임한 뒤 처음 열린 것이다. 패킷 감청 위헌 논란은 7년 전에 시작됐다. 2010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국정원이 전직 교사인 김모씨 명의로 가입된 인터넷 전용회선과 인터넷전화통화내역을 감청한 사실이 공개되면서부터다. 2011년 3월 김씨는 헌법소원을 냈다. 그러나 헌재는 5년간 판단을 미뤘다. 김씨가 지난해 2월 간암으로 사망하자 헌재는 심판을 종결했다.

이후 김씨와 같은 사무실에서 인터넷회선을 함께 썼던 문 목사가 소송을 이어갔다. 문 목사는 자신도 패킷 감청을 당했다며 지난해 3월 헌법소원을 냈다.

이 사건에 대한 헌재 결정은 3개월 안에 나올 가능성이 크다. 헌재는 통상 사회적 논란이 첨예한 일부 사건을 제외하고 공개변론 후 3개월 이내에 결론을 제시한다.

이 소장이 취임으로 헌재가 정상화됨에 따라 지연돼왔던 양심적 병역거부, 낙태죄 등에 대한 심리도 빨라질 전망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2011년 8월 7대 2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사회적 논쟁이 계속됐고, 헌재에는 비슷한 사건이 28건 계류돼 있다. 낙태죄의 경우 2012년 8월 합헌과 위헌 의견이 4대 4로 팽팽히 맞섰지만 위헌 결정 정족수(6명)에 미치지 못해 합헌 결정이 났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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