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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풍 시아버지 17년 수발 든 일본인 며느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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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심청효행대상을 받은 마자 히사코(오른쪽)씨와 남편 김봉현씨 부부. [사진 마자 히사코]

심청효행대상을 받은 마자 히사코(오른쪽)씨와 남편 김봉현씨 부부. [사진 마자 히사코]

“아버지(시아버지)의 대·소변을 받는 것보다 맛있게 만든 음식을 못 드시는 모습을 보는 게 더 힘들었습니다.”

올 심청효행대상 마자 히사코 #주변선 요양원에 모시라고 설득 #“남에게 못 맡겨” 요양사 자격 취득

한국으로 시집와 몸이 아픈 시아버지를 17년 동안 수발해 온 일본인 며느리 마자 히사코(真謝久子·50·여)의 말이다. 가장 결혼 후 힘든 게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그는 “뭐라도 조금 드셔야 힘이 날 텐데 아무것도 드시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 마음도 아팠다. 더 오래 사셨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마자씨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5년 남편(53)과 결혼을 하면서다. 종교적 신념이 같아 결혼하게 됐다고 한다. 이후 일본에서하던 간호사 일을 정리하고 97년 한국에 왔다. 신혼의 단꿈도 잠시. 건강하던 시아버지가 2000년 초(당시 75세·올해 92세로 사망)에 중풍으로 쓰러졌다. 그의 나이 33살. 결혼 5년 만이다.

한 달 정도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했지만, 시아버지는 나아지지 않았다. 침을 맞기 위해 남편과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지만 허사였다. 잘 걷다가도 갑자기 쓰러지는 시아버지 곁에는 늘 마자씨가 있었다. 시아버지의 상황은 더욱 악화했고, 급기야 2008년엔 거동도 못 한 채 드러누웠다. 대·소변을 받는 일은 고스란히 마자씨의 몫이 됐다.

주변에서 ‘요양병원으로 모시라’는 말을 했지만 그는 “절대 안 된다”고 거절했다고 한다. 마자씨는 오히려 지난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는 “아버지가 낯선 병원에서 타인의 도움을 받으며 지낸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며 “내가 아니면 우리 아버지 누가 간호하겠나 싶어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말했다.

마자씨는 “아버지가 실수하면 아이들이 함께 목욕해 주는 등 많이 도와줘 힘이 덜 들었다”며 “지금은 어머니(시어머니) 모시는 데 열중하고 있다”며 “나는 지금 너무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마자씨의 이런 효심은 가천길재단이 매년 선정하는 제19대 심청효행대상 ‘다문화효부상’의 대상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심청효행대상은 진심으로 효를 실천하는 효녀들의 효행을 격려하고 귀감이 되도록 하기 위해 길재단이 마련한 상이다. 가천길재단 이길여 회장이 1999년 고전소설 ‘심청전’의 배경인 인천시 옹진군 백령면에 심청 동상을 제작, 기증한 것이 계기다.

이날 청소년에게 주는 ‘심청효행상’에는 경기도 부천에 사는 김예현(17·부천여고2년)양이 대상을 받았다. 김양은 시각장애를 겪고 있는 엄마의 눈이 되어 주는 딸이다. 엄마와 함께 시장에 가면 생선과 채소의 상태가 좋은지 아닌지를 설명을 해 주는 역할을 한다. 때론 엄마와 영화를 보게 되면 귓속말로 자막을 읽어주는 효녀다. 심청효행대상 시상식은 오는 22일 오후 6시30분, 인천 부평아트센터 해누리극장에서 열린다.

인천=임명수 기자 lim.myou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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