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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노무현, 이명박 맞은 계란... 잘 맞으면 국면전환, 못맞으면 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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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인 전남 목포에서 시민이 던진 날계란을 맞았다. 자신을 ‘안철수 연대 팬클럽’ 소속이라고 밝힌 여성이다. 박 의원은 이에 “내가 맞아 다행이다. 안철수 지지자의 계란, 저 박지원이 맞았으면 됐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계란을 던진 지지자에게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안철수 대표를 향해서는 “호남이 상처입는 것 같아 서글프다. 어렵게 주어진 이 기회를 외면하고 싸움의 정치로 몰고 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계란 사태’를 정치적 메시지를 전하는 계기로 활용한 셈이다.

국민과 접촉하는 현장에서 정치인들이 분노한 시민들에게 계란이나 물병으로 맞는 것은 다반사다. 인명피해는 없고 시각적 효과가 크기 때문에 분노를 표출하는 수단으로 쓰인다.

밀가루를 맞은 정원식 전 총리. 중앙포토

밀가루를 맞은 정원식 전 총리. 중앙포토

정치인의 입장에서 계란을 잘 맞으면 국면전환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고, 반발을 불러올 수도 있다. 1991년 노태우 정부의 정원식 총리는 국면전환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당시 대학가는 전교조 탄압에 대한 항의, 학원 자유화에 대한 요구가 터져 나왔고,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잇따라 사망하며 분노가 극에 달했던 시기다. 이 와중에 전교조를 불법화한 정 총리가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강의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학생들은 앞다퉈 그에게 계란과 밀가루를 던졌다. 그는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20분동안 계란과 밀가루를 맞은 뒤에야 학교를 떠날 수 있었다.

계란의 대가는 적지 않았다. 밀가루와 계란을 뒤집어 쓴 총리의 사진이 보도되자 동정론이 일며 학원 민주화 투쟁에 대한 비난이 일었고 투쟁 동력도 사그라들었다. 반대로 총리서리였던 그는 국회 동의로 정식 총리취임을 했다.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후보가 13일 여의도에서 열린 농민대회에 참석해 연설하던 도중 연단으로 날아든 계란을 맞고 있다. 盧후보는 계란과 작은 돌을 맞았으나 다치지는 않았다. 월간 사진 공동취재단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후보가 13일 여의도에서 열린 농민대회에 참석해 연설하던 도중 연단으로 날아든 계란을 맞고 있다. 盧후보는 계란과 작은 돌을 맞았으나 다치지는 않았다. 월간 사진 공동취재단

노무현 전 대통령도 민주당 고문 시절인 2001년엔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서 노조 조합원들이 던진 계란을 맞았다. 그는 당시 “노조원들의 심정 이해한다”며 그대로 맞았다. 심경을 묻는 기자들에겐 “정치인들이 한 번씩 맞아줘야 국민 화가 풀린다”고 답해 지지자들에게 인상을 남겼다. 후보 시절인 2002년 11월 ‘우리 쌀 지키기 전국 농민대회’ 연설 중 계란으로 턱과 입을 맞았으나 끝까지 연설을 마치고 내려온 일도 있었다.

이명박 후보가 3일 경기도 의정부에서 50대 남성이 던진 계란에 왼쪽 가슴 쪽을 맞았다. 이 후보는 아랑곳하지 않고 예정대로 유세를 마쳤다.

이명박 후보가 3일 경기도 의정부에서 50대 남성이 던진 계란에 왼쪽 가슴 쪽을 맞았다. 이 후보는 아랑곳하지 않고 예정대로 유세를 마쳤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6년 일본 출국 앞서 붉은 페인트가 들어있는 계란을 얼굴에 직접 맞았고, 이명박 전 대통령도 2007년 12일 대선후보 시절 시민에게 계란을 맞은 경험이 있다.

반면 계란을 잘 못 맞았다가 오히려 반발을 산 경우도 있다. 지난해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사드로 흥분한 민심을 달래려 성주 방문했다가 계란 세례를 받았다. 하지만 황 총리가 서울로 복귀한 뒤 경북지방경찰청서 가해자 색출에 나서면서 성주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졌다. 당시 주민들은 “눈앞에선 사드를 배치해 죄송하다고 하고, 뒤에선 색출하겠다는 게 진짜 사과냐” “그럼 계란도 안 맞을 줄 알고 여기까지 내려왔느냐”고 따졌다.

채윤경 기자 pch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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