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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세법 개정 후폭풍 … 대기업 부담 2조3000억 → 3조6500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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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최근 국회를 통과한 세법 개정안에 따라 대기업이 부담해야 할 금액은 최고세율(25%) 인상에 따른 법인세 부담 2조3000억원이 전부가 아니다. 법인세에 10%씩 붙는 지방세와 줄어드는 설비투자 세액공제 등을 합하면 부담 금액이 3조65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인세에 10%씩 붙는 지방세 증가 #R&D·설비투자 세제 지원은 축소 #유연탄에 부과되는 개소세도 인상 #법인세수 작년보다 15% 늘었지만 #공제감면 규모는 1조원 이상 감소 #“기업들 해외 이전 부추길 수 있어”

11일 기획재정부와 재계 등에 따르면 내년부터 법인세 최고세율을 22%에서 25%(과세표준 3000억원 이상)로 올리면서 지방세도 그만큼 늘어난다. 원천징수의무자가 법인세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을 특별징수해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신고·납부해야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기업이 추가 부담해야 할 지방세는 2조3000억원의 10%인 2300억원 정도가 될 전망이다. 지방세까지 포함한 한국의 법인세 명목 최고세율은 기존 24.2%에서 27.5%가 되는 셈이다.

세법 개정에 따른 대기업 추가 부담

세법 개정에 따른 대기업 추가 부담

대기업 연구개발(R&D)·설비투자에 대한 정부 세제 지원도 축소된다. 세율을 올린 것은 아니지만, 기존 내지 않아도 됐던 세금을 내야 하면서 대기업의 실질적 세금 부담을 올린 것이다.

내년부터 대기업의 당기분 R&D 세액공제율은 현행 1~3%에서 0~2%로 낮아진다. 예컨대 삼성전자의 경우 R&D 비용 14조8000억원(지난해 기준) 가운데 1%인 1480억원가량에 대해 세제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다는 의미다. R&D 비용 증가분에 대한 30% 세액공제도 25%로 줄었다. 대기업의 R&D 증가분이 100원이라면 30원을 세금으로 내야 할 돈에서 빼주었는데, 이를 25원으로 줄인 것이다.

이와 함께 생산성 향상, 안전시설, 환경보전시설 설비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혜택도 대기업의 경우 현행 3%에서 1%로 하향 조정된다. 이들 세액공제 축소의 영향으로 대기업이 추가로 짊어져야 하는 세 부담은 총 5500억원 정도일 것으로 전망된다.

한 대기업 고위 임원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먹거리 발굴을 위해 기업의 R&D와 투자를 장려하겠다는 정부 입장과는 반대되는 조치”라며 “세부담을 늘리면서 고용을 늘리고 임금을 올리라는데, 투자 기회가 오면 기업들이 해외로 나가려는 유인이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내년부터 발전용 유연탄에 부과되는 개별소비세율이 ㎏당 30원에서 36원으로 오른다. 기획재정부는 이를 통해 대기업이 5700억원의 세금을 더 낼 것으로 보고 있다. 개소세 부담은 일차적으로 발전사가 지지만, 산업용 전기요금에 이를 반영하는 식으로 대기업에 부담을 지울 것으로 재계는 예상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고리원전 1호기 영구정지 기념행사에서 “산업용 전기요금을 재편해 산업계 전기 과소비를 방지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추가 부담 총 1조3500억원을 합치면 이번 세법 개정을 통해 대기업이 부담해야 할 금액은 최소 3조6500억원에 이른다.

법인세수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대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것이 아닌지 재계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중앙일보가 한국경제연구원에 의뢰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들어 9월까지 걷힌 법인세수는 54조원으로 지난해 1년간 거둔 세수(52조1000억원)를 이미 넘어섰다. 한경연은 올해 전체 법인세수가 지난해보다 15% 이상 늘어나 사상 처음으로 60조원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다.

반면 기업 대상 공제감면(외국납부세액 공제 제외) 규모는 2012년 6조9600억원에서 지난해 5조7700억원으로 계속 줄고 있다. 특히 과세표준이 2000억원이 넘는 대기업은 감면 규모가 같은 기간 3조3700억원에서 2조3400억원으로 30%나 줄었다. 이처럼 비과세·감면이 줄어들어도 법인세수가 늘어난 것은 기업들이 해외에서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면서 수익을 끌어올린 결과로 분석된다. 재계에선 법인 세수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해외 경쟁국과는 반대로 법인세를 올린 것에 대해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한경연 홍성일 경제정책팀장은 “단순히 부담하는 금액 문제가 아니라, 해외에서는 기업을 우대하는데 한국에선 반대로 기업에 부담을 준다는 ‘신호’로 비칠까 우려된다”라며 “기업의 경영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정책적인 지원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내년부터 과세표준 3000억원 이상 대기업의 법인세 최고세율을 22%에서 25%로 올리기로 하면서 재계에서는 어떤 대기업이 대상이 될지 주목하고 있다. 주요 대기업은 자신의 과세표준을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대상 기업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기업은 벌어들인 순이익이 아니라, 여기에 각종 세무조정 금액을 가감한 ‘과세표준’을 기준으로 법인세를 낸다. 근로소득자의 연말정산과는 달리 대기업의 과세표준은 세무조정을 거치면 오히려 늘어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기업 회계상으론 비용인데, 법인세법상으로 비용이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국세청과 한경연에 따르면 과세표준 2000억원 이상 대기업은 2012~2016년 5년간 당기순이익보다 평균 35.8%가 많은 금액이 과세표준으로 잡혔다. 기업재무제표에 나타난 이익보다 더 많은 금액을 기준으로 법인세를 내고 있다는 얘기다. 이를 토대로 계산하면 기업 재무제표상 당기순이익이 2200억원이 넘는 기업들이 대상이 될 것으로 재계는 추정하고 있다.

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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