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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토교저수지 4만 쇠기러기의 '군무'…하늘을 뒤덮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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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 철원평야를 찾은 재두루미 가족. 강찬수 기자

올겨울 철원평야를 찾은 재두루미 가족. 강찬수 기자

주말인 지난 9일 오전 7시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양지리 토교저수지.
아직 아침 해가 뜨기 전 차가운 겨울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었다.
저수지에서는 벌써 "끼룩끼룩"하는 새 소리가 요란했다.
저수지 수면에서 밤을 지새운 쇠기러기 소리였다. 요란한 소리는 저수지 상공을 가득 메웠다.

철원군 동송읍 토교저수지에서 날아오르는 쇠기러기 무리. 강찬수 기자

철원군 동송읍 토교저수지에서 날아오르는 쇠기러기 무리. 강찬수 기자

잠시 후 동이 트는 시간에 맞춰 쇠기러기들이 차례차례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한참을 줄지어 날아오르던 쇠기러기 대열이 한순간 흐트러졌다.
흰꼬리수리가 한 마리 등장하면서 쇠기러기 무리가 갈팡질팡하기 시작한 것이다.
쇠기러기는 마치 가창오리 떼처럼 저수지 위를 이리저리 맴돌았다.
저수지 둑 위 10여 명의 탐조객은 하늘을 뒤덮은 쇠기러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들 "쇠기러기 군무가 너무 아름다워 새벽부터 나와 추위에 떨었던 보람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하늘을 나는 쇠기러기 무리. 강찬수 기자

하늘을 나는 쇠기러기 무리. 강찬수 기자

어지러이 날던 것도 잠시 파도가 밀려오듯이 쇠기러기 무리는 머리 위를 지나 천천히 철원평야 곳곳으로 흩어져 갔다. 낮에 논밭에서 먹이를 구한 뒤 밤이 되면 다시 이곳 저수지 잠자리로 되돌아올 것이다.
한국두루미보호협회 백종한 철원군지회장은 "올겨울 토교저수지를 찾은 쇠기러기 숫자는 3만5000~4만 마리 정도 되는 것 같다"며 "매일 아침 동이 틀 무렵 먹이를 찾아 철원평야 곳곳으로 흩어졌다가 어두워지면 다시 돌아온다"고 말했다.

철원 평야 위를 날고 있는 재두루미 무리. 강찬수 기자

철원 평야 위를 날고 있는 재두루미 무리. 강찬수 기자

이날 철원평야 곳곳에서는 쇠기러기 외에도 두루미와 재두루미 등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철원은 겨울 맞아 남으로 온 철새들의 낙원 #먹이 자원 풍부하고 사람 간섭이 적은 곳 #4만 마리의 쇠기러기와 4000마리의 두루미 #이른 아침 저수지 날아오르는 모습 '장관' #주민들 논에 물 가두고 볏짚 먹이로 주고 #도로변엔 억새로 가림막까지 만들어 보호

때로는 재두루미 부부를, 때로는 어린 새끼를 데리고 있는 두루미와 재두루미 가족이 눈에 띄었다. 또 하늘을 나는 두루미, 재두루미 무리도 있었다.
철원 지역 농부이자 철원두루미협의체 사무국장인 최종수 씨는 "올해 철원에는 재두루미 3800~4000마리, 두루미가 650~700마리가 찾아왔고, 캐나다두루미와 시베리아흰두루미, 검은목두루미도 눈에 띈다"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두루미류는 15종이고, 철원에서는 그중 7종을 볼 수 있다. 최 씨는 "전 세계적으로 두루미 종류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이 철원"이라고 말했다.

지난 8일 철원 두루미 국제심포지엄에서 두루미 동요를 부르고 있는 철원 어린이들. 강찬수 기자

지난 8일 철원 두루미 국제심포지엄에서 두루미 동요를 부르고 있는 철원 어린이들. 강찬수 기자

이에 앞서 지난 8일 원주지방환경청과 철원군청은 철원군 한탄리버스파호텔에서 철원 두루미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주제는 'DMZ(비무장지대) 두루미와 철원 농부의 공생 방안'이었다.

심포지엄에서 철원두루미협의체 진익태 회장은 "철원은 중부지역의 대표적인 평야 지대여서 철새 먹이 자원이 풍부하고, 민간인 출입통제선이 있어 철새들의 휴식을 방해하는 요인이 적다"며 "한국에서 가장 많은 두루미와 재두루미가 철원을 월동지로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철원두루미협의체는 철원지역 두루미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조직으로 지역주민과 두루미학교·조류보호협회 등 관련 단체, 원주지방환경청·철원군청·군부대 등 관계기관, 한국전력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추수가 끝난 논에 물을 넣고 얼려서 두루미의 휴식공간을 마련하고, 볏짚이나 우렁이를 먹이로 제공하고 있다.
또 두루미가 전선에 걸려서 다치는 일이 없도록 전선에 표식을 달고, 두루미의 시야에서 차량을 가리기 위해 도로변에 억새 울타리를 만드는 활동도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립대 조경학과 한봉호 교수는 "철원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무논 조성과 볏짚 남겨두기는 두루미의 안정적인 서식환경 조성에 큰 효과를 보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철원 두루미 국제심포지엄 참석자들이 9일 두루미 먹이주기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강찬수 기자

철원 두루미 국제심포지엄 참석자들이 9일 두루미 먹이주기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강찬수 기자

심포지엄 참석자들은 "철새 보호를 위해 노력하는 철원 농민들에게 경제적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4계절 생태관광 활성화 등 다양한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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