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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영희의 사소한 취향

잘 지내고 있나요 나의 친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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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이영희 기자 중앙일보 특파원
이영희 중앙SUNDAY 기자

이영희 중앙SUNDAY 기자

열아홉 살에 붙어 다니던 단짝 친구는 눈이 크고 성격이 호탕했다. 늘 밝고 인기 많은 친구가 좋았고, 그래서 부러워했다. 대입 수험 생활을 함께하는 동안 친구는 가끔 내게 “내가 너였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가고 싶은 대학이 있는데, 모의고사 성적이 그만큼 나오지 않았던 탓이다. 성적은 좋았으나 딱히 희망하는 대학이 없던 나는 친구가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학교에 원서를 썼고, 합격했다. 그리고 우리는 왠지 서먹해졌다.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사진)를 보며 열 몇 살의 우리를 떠올린다. 주인공 칠월(마사순)과 안생(주동우), 두 여성이 열세 살에서 스물일곱까지 함께한 시간을 그린 이 영화에는 ‘우정’이란 단어로 정의하기 힘든 복잡다단한 감정들이 섬세하게 담겨 있다. 늘 일상을 함께하며, 절대 서로를 떠나지 않겠노라 다짐했던 두 소녀. 하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한 칠월에게 남자친구가 생기면서 둘의 관계는 엇나가기 시작한다.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중화권에서 큰 인기를 모은 안니바오베이의 소설 『칠월과 안생(七月與安生)』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자신과 다른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서 ‘진짜 나’를 발견하는 여정을 담은 성장담이다. 안정된 삶을 꿈꾸는 모범생 칠월과 자유로운 삶을 갈망하며 떠도는 안생은 서로를 사랑하기에 질투한다.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며 서운한 감정이 쌓이지만 쉽게 관계를 끊지 못한다. 같은 남자를 좋아하게 된 안생이 자신을 위해 떠났음을 알게 된 날, 칠월은 울면서 말한다. “안생을 나만큼 사랑할 수 없는 스스로에게 실망했고, 그녀와 모든 것을 나눌 수 없음에 낙담했다”고. 그리고 깨닫는다. “어른이 된다는 건 원래 이런 것”이란 걸.

‘소울메이트’라 믿었던 그 누구와도 모든 것을 나눌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들을 통해 몰랐던 나를 발견하면서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음을 안다. 영화의 마지막, 서로의 삶을 동경하던 두 사람은 운명처럼 상대의 흔적을 되밟는다. 늘 기다리던 칠월은 세상을 떠돌며 “머물지 않는 삶이 내게 맞는다”는 걸 깨닫고, 안생은 방랑에서 돌아와 정착한다. 그리고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된다. 지금은 멀어졌지만 한때 곁에서 나를 만들어준 친구들은 잘 지내고 있는지. 눈이 쌓인 12월의 아침, 그들에게 안부를 전한다.

이영희 중앙SUNDAY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