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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골목상권에 필요한 것은 소상공인 영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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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모종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모종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6백만 명, 20%대 초반 생존율. 자영업자 논의에 빠지지 않는 단골 통계 수치다. 자영업 문제의 본질은 공급 과잉임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관련 연구들은 창업자의 짧은 준비 기간을 주요 실패 요인으로 꼽는다. 2014년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보고서 ‘자영업자 경쟁력 강화 방안’에 따르면, 2년 이상 준비한 자영업 창업자는 16%에 불과했다. 무려 61%가 6개월 미만의 준비 기간을 거쳐 시장에 뛰어든다. 하지만, 수치만 놓고 자영업 위기라 판단하기에는 섣부르다. 전체적으로 위기에 가까운 상황에서도 분명 호황을 누리는 분야가 존재한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부상한 골목상권이 대표적이다. 젊은 소비자가 열광하는 골목상권의 장인 가게는 거의 모두 개인 사업장이다. 오랫동안 지역의 거점 가게로 경쟁력을 유지하는 가게도 많다.

어떤 교육과 훈련을 받은 창업자가 어떤 경영 방식으로 성공하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토대로, 실효성 있는 골목상권 정책이 수립될 수 있다. 장인 가게의 대부분은 가업을 이어받아 고도의 훈련 과정을 거친 주인이 운영한다는 사실이다. 장인 가게의 주인은 부모나 조부모가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일터에서 하루를 보내게 된다. 즉 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란 것이 특징이다. 대부분 해외나 국내에서 오랫동안 훈련을 받은 장인이 창업한 가게다.

직업 훈련 제도가 열악한 상태에서 도제교육을 받지 못한 창업자들이 탁월한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단기간 속성 준비를 마치고 뛰어든 이들이, 일터와 가정이 일치된 환경에서 자라며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장사의 비결을 배운 가업 승계자들과 경쟁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 아니겠는가.

현재 정부가 제공하는 자금, 교육, 컨설팅 등의 창업 지원은 패키지형이다. 획일적인 창업 지원 정책을 통해 가치를 추구하는 포스트모던 소비자들이 원하는 창의적인 고품격 서비스를 제공할 장인 창업자를 육성하기엔 무리가 있다.

자영업을 정부 지원에만 의존하는 영세하고 경쟁력 없는 업종으로 인식하는 것은 탈산업화 사회에서 서비스산업과 도시산업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데 기인한다.

정부는 각양각색의 소상공인 영웅을 육성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한 전문가가 지적한 대로 “소상공인 영웅은 골목길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고, 골목길이 살아나면 도시재생은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도시 경관이 개선되고 볼거리, 놀거리, 먹거리가 늘어나면 관광산업이 흥하고, 관광산업이 흥하면 그들을 대상으로 하는 또 다른 창조산업이 발달할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자영업자 훈련 과정과 기간, 창업 방식, 창업 지역 특성 등 기본적인 통계를 수집해 자영업자 성공과 실패 요인을 연구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장인에 의한 장인 훈련을 제도화해야 한다. 장인 대학의 설립과 운영, 지역 기반 소상공인 창업 생태계 구축, 골목 장인 기획사 육성 등을 활성화 방안으로 제안한다.

모종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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