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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자의 미모맛집]35 물회에 물이 없다

중앙일보

입력

찬 음식을 안 좋아한다. 추운 나라 여행을 좋아하고 스키도 즐겨 타는데 차가운 성질의 음식 대부분을 잘 먹지 않는다. 당연히 한여름이 아니고선 평양냉면이나 물회를 찾을 일이 없다. 솔직히 여름에도 머리가 깨질 듯하고 맛도 잘 느껴지지 않는 슬러시 육수는 도무지 왜 먹는지 모르겠다. 목이 타 들어갈 것은 더위가 아닌 이상 아아(아이스아메리카노)가 아닌 뜨아(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포항 죽도시장 수향회식당 #속초·제주와 달리 비벼 먹는 방식 #오이·배 넣고 고추장 양념

포항 죽도시장 어시장 안에 있는 물회 전문 식당 '수향회식당'에서 파는 물회. 생선은 우럭 한 종만 쓴다. 물회인데 물에 말아서 나오지 않는다. 손님이 원하면 부어서 먹는 방식이다. 신인섭 기자

포항 죽도시장 어시장 안에 있는 물회 전문 식당 '수향회식당'에서 파는 물회. 생선은 우럭 한 종만 쓴다. 물회인데 물에 말아서 나오지 않는다. 손님이 원하면 부어서 먹는 방식이다. 신인섭 기자

그렇다 해도 바닷바람을 맞으면 물회 생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물론 무턱 대고 아무 물회나 먹진 않는다. 너무 맵거나 차지 않은 물회가 좋다. 된장을 푼 제주식 한치물회나 자리물회가 대표적이다. 반면 치장만 화려한 물회는 영 꺼려진다. 해삼·전복·성게 등을 얹어내고 금가루까지 뿌린 물회를 볼 때마다 왜 맛난 해산물을 저런 식으로 먹어야 하는지 의아한 생각이 든다.

제주 한치물회. 된장과 식초를 넣어 맛이 구수하면서도 새콤하다. [중앙포토]

제주 한치물회. 된장과 식초를 넣어 맛이 구수하면서도 새콤하다. [중앙포토]

물회는 지역마다 색깔이 다르다. 뱃사람들이 배에서 혹은 조업을 마치고, 고추장과 된장에 막 썬 회를 채소와 함께 비벼 먹은 데서 유래했다는 점은 같을 것이다. 다만 지역마다 흔한 생선이 달랐을 것이고, 물회가 외식 메뉴로 발전하면서 조금씩 다른 스타일로 굳었을 것이다. 크게 강원도식, 포항식, 제주도식으로 구분한다. 속초·고성에서 많이 먹는 물회는 큰 사발에 가자미나 광어, 오징어 등을 넣고 매콤한 국물을 가득 채워 먹는다. 제주 물회는 된장과 식초로 국물 맛을 낸다. 고추장이나 고춧가루를 섞거나 청양고추를 넣어 매콤한 맛을 내는 집도 많다. 포항식은 채소에 생선 살코기를 넣고 매콤달콤한 고추장에 비벼 먹는다. 물은 기호에 따라 적당량을 넣는다.

요즘 과메기와 대게가 제철을 맞아 분주한 포항 죽도시장. 지진 여파로 외지인의 발길이 부쩍 줄었지만 신선한 바다 먹거리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신인섭 기자

요즘 과메기와 대게가 제철을 맞아 분주한 포항 죽도시장. 지진 여파로 외지인의 발길이 부쩍 줄었지만 신선한 바다 먹거리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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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식 물회는 포항 밖에도 전문식당이 많을 정도로 전국적으로 대중화했다. 그러나 포항에 가서 비릿한 바다냄새 맡으며 먹는 맛만 못할 것이다. 포항 두호동과 환호동에 3층짜리 단독건물을 세운 유명 횟집이 있지만 지난 가을에 맛본 죽도시장 안 허름한 식당의 맛이 더 인상 깊었다.

포항 죽도시장 어시장 안에 있는 물회 전문 식당 '수향회식당;. 신인섭 기자

포항 죽도시장 어시장 안에 있는 물회 전문 식당 '수향회식당;. 신인섭 기자

수향회식당 얘기다. 죽도시장 어시장 입구에서 200m쯤 걸어들어가면 큼직한 회집과 생선가게 틈바구니에 수줍게 자리한 이 식당이 보인다. 테이블은 7개에 불과하고 메뉴는 물회와 물밥 두 개 뿐이다. 가격은 모두 1만2000원. 한대출(66)·최재순(61) 부부가 수향회식당을 개업한 건 1991년이다. 최씨는 “처음부터 물회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을 한다고 했더니 주변에서 비웃었다”며 “가격이 비싼 회를 팔아야 장사가 된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물회만 전문으로 팔고 있다”고 말했다.

수향회식당에서 물회를 주문하면 사진 같은 한 상이 차려진다. 물 없는 물회도 맛있지만 짭쪼름한 밑반찬과 시원한 홍합탕도 좋다. 신인섭 기자

수향회식당에서 물회를 주문하면 사진 같은 한 상이 차려진다. 물 없는 물회도 맛있지만 짭쪼름한 밑반찬과 시원한 홍합탕도 좋다. 신인섭 기자

식당 안쪽 좌식 테이블에 앉아 물회를 주문했다. 애피타이저로 삶은 땅콩을 내줬다. 구운 땅콩보다 맛이 심심했지만 하나둘 까먹는 손길이 멈추지 않았다. 곧 물회와 반찬이 나왔다. 어라? 물회인데 물이 없다. 커다란 스테인리스 그릇에 채소가 깔려 있고, 두툼하게 얹은 우럭 회와 고추장 양념, 김가루, 참깨가 들어있었다. 옆에는 공기밥 한 그릇. 물회가 아니라 회덮밥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식당 직원은 물병을 가리키며 “원하시면 부어서 드세요”라고 말하고 돌아섰다.

포항 수향회식당의 물회에는 배와 오이가 넉넉히 들어간다.

포항 수향회식당의 물회에는 배와 오이가 넉넉히 들어간다.

그렇다. 수향회식당 물회는 소위 말하는 정통 포항식이다. 생선 회와 채소, 그리고 밥을 고추장 양념에 비벼 먹는 방식이다. 일부러 물을 붓지 않고 그냥 비볐다. 우선 밥을 넣지 않고 먹어봤다. 얇게 썬 배와 오이는 아삭했고 우럭 회는 쫄깃했다. ‘매콤달콤’이 아니라 ‘달콤매콤’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단맛이 강했고 고소했다. 설탕을 들이 부어 단 게 아니라 배의 달콤함과 천연재료를 섞은 고추장 양념, 그리고 신선한 우럭 회가 조화를 이룬 맛이다.

언뜻 서울에서도 흔히 먹을 수 있는 회덮밥 같아 보이는 수향회식당의 물회. 우럭 회를 비롯한 모든 재료가 신선하고 달콤한 맛이 강하다. 최승표 기자

언뜻 서울에서도 흔히 먹을 수 있는 회덮밥 같아 보이는 수향회식당의 물회. 우럭 회를 비롯한 모든 재료가 신선하고 달콤한 맛이 강하다. 최승표 기자

몇 젓가락 먹다가 밥을 넣어서 비볐다. 일견 서울에서도 흔히 먹는 회덮밥과 비슷해 보였지만 역시 ‘달콤함’이 달랐다. 지나치게 맵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아서 좋았다. 시원한 홍합 국물, 짭짤한 조개젓과 밑반찬도 물회와 훌륭한 궁합을 이뤘다. 보통 강원도 삼척에서 공수한 백합을 끓여 국으로 내주는데 그날은 태풍 때문에 할 수없이 홍합을 썼다고 한다.

포항 수향회식당은 물회 횟감으로 우럭 한 종만 쓴다.

포항 수향회식당은 물회 횟감으로 우럭 한 종만 쓴다.

수향회식당에는 회밥이라는 메뉴가 따로 있다. 물회와 크게 다르진 않다. 양배추 등 채소를 조금 더 많이 넣어주고 고추장 양념이 아니라 초고추장을 자신이 원하는 만큼 넣어 먹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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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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