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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상대를 헷갈리게 하는 북·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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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1호 31면

에버라드 칼럼

미국의 한 핵 미사일 전문가의 말을 빌리면 지난달 29일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은 ‘괴물’이었다. ‘화성-15형’의 2단 추진시스템은 1000㎏ 중량의 탄두를 미 본토 어디로든 날려 보낼 수 있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북한은 이번 발사로 겨울철 야간에도 미사일 실험을 할 수 있다는 능력을 과시했다.

협상할지 호전적 핵 정책 쓸지 #김정은 의도 짐작하기 어려워 #미국도 협상, 선제 타격 동시 언급 #펠트만 방북이 대화 물꼬 트려나

적어도 이번 실험은 북한이 미 도시들을 폭격할 수 있다는 위협을 현실화했다. 그렇지만 북한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발사 당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오늘은 국가 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 로켓 강국 위업이 실현된 뜻깊은 날”이라고 말했다. 외교 전문가들은 김정은의 발언에 의아해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북한이 더는 미사일을 발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인가. 이번 발사에는 신기술이 포함됐기 때문에 향후 이 기술을 더욱 완벽하게 다듬을 목적으로 추가 실험이 필요할 것이다.

다른 측면으로 생각해보면 북한이 이제 협상에 나설 용의가 있다는 시그널로 해석될 수 있다. 조셉 윤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전화기는 아직 울리지 않고 있다. 어찌됐든 북한은 지난 7월 김정은이 밝힌 대로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유지하는 이상 핵 계획을 협상에 올려놓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북·미 간 반관반민의 1·5 트랙에서 북한 고위급 관계자가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완성하면 미국과 군축 협상에 나설 용의가 있다”고 말한 것도 사실로 보인다. 이렇게 될 경우, 미국은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만약 북·미 간 군축 협상이 벌어진다면 북한은 한·미 동맹의 종식, 미군의 한반도 철수가 명시된 평화 협정 등을 제안할 것이다. 북한이 진지하게 협상에 나선다 하더라도 미국이 동의해 줄 만한 조건은 사실상 없다는 의미다. 게다가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 종결과 미사일 실험을 막을 수단으로 한·미 합동 군사 훈련의 종료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 10월 북한은 그 아이디어를 이미 거절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중국 방문 기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상대로 “그런 해법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북한이 조셉 윤을 만나기로 결정한다 하더라도 회담 이슈를 정하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평양에서 나온 혼란스러운 시그널은 한가지 더 있다. 미사일 발사 직후 조선중앙통신은 “우리는 우리의 이익이 침해되지 않는 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5월 조선노동당 제 7차 대회에서 명시된 북한의 ‘핵 독트린’이 더욱 호전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김정은은 당시 “침략적인 적대세력이 핵으로 우리의 자주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때만 하더라도 핵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일본은 타격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이익만 침해될 경우 핵 공격이 가능하다는 점을 암시했다. 다만 이 발언은 조선중앙통신 웹사이트에선 현재 삭제됐다. 그렇다면 북한의 핵 독트린은 변화한 것인가, 아닌가. 우린 헷갈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혼란은 북한이 워싱턴의 발언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혼란보다는 훨신 덜한 수준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 “우리가 북한을 핸들링할 것”이라고 썼을 때 아무도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했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외교적 해법은 여전히 유효하고 남아 있다”고 밝히는 사이,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공화당)은 “북한의 미 본토 타격 능력을 억제하는 게 아니라 아예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최후의 수단으로서 선제공격을 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위의 두 가지 중 어느것이 미국의 입장인가. 아니면 단순히 미국은 자신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결정할 수 없는 것일까.

미국과 북한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 어찌보면 애잔하다. 지금 같은 시기엔 냉정한 이성, 건전한 판단이 필요하다. 그리고 오해는 불행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런 시기에 군사 훈련이 긴장감을 더욱 높일 수 있다. 미국과 한국은 이미 공군 훈련을 시작했으며 조만간 동계 군사 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다. 북한과 미국이 서로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확실히 이해하지 못할 경우, 군사 연습을 상대방에 대한 공격으로 착각할 가능성은 커진다.

미국이 무엇을 할지 알아내는 것 이외에도 북한 정권은 자신들의 경제 문제에 대해 신경쓰고 있다. 일정 부분 미국의 대북 봉쇄에서 촉발된 경제난이 정치적 파급 효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열린 북한 조선노동당 제7기 2차 전원회의를 비롯해 최근 북한 고위 지도층의 회동은 경제 문제에 주로 할애돼 있다. 이것은 매우 특기할 만한 사항이다. 물론 북한 경제에 대한 평가를 놓고 전문가 집단에선 여전히 의견이 크게 엇갈린다. 일부에선 북한 경제를 놓고 전력난 등이 겹쳐 붕괴 직전에 있다고 평가하지만, 또 다른 쪽에선 여전히 7%대 성장을 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다.

평양에서의 불안, 워싱턴의 비일관성이 초래하는 혼란 가운데 제프리 펠트만 유엔 정무당담 사무차장이 나흘간 평양을 방문한다. 유엔 고위급 인사가 북한을 방문하는 건 2010년 이후 처음이다. 특히 화성-15 발사 다음 날 방문 날짜가 합의됐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북한이 유엔을 매개로 미국에 ‘대화 가능성’ 메시지를 보내는 것일 수 있다. 또 북한은 펠트만에게 대북 제재로 인해 북한 주민의 생활수준이 떨어졌다는 점을 호소하며 국제 사회의 대북 압박 수준을 낮추려고 시도할 것이다.

우리는 곧 알게 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펠트만이 반가운 소식을 전해 오길 기대하며.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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