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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쌍화차보다 따뜻하고 추억보다 낭만적인

중앙일보

입력

현예슬의 만만한 리뷰(19)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어릴 적 가슴속에 품고 있던 꿈, 하나쯤 있으시죠? 누군가는 그 꿈을 이루고 살아가고, 또 다른 누군가는 현실이라는 벽에 가로막혀 다른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죠. 그래도 못다 이룬 꿈에 대한 아쉬움 또는 미련은 남아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오늘의 주인공 ‘모금산’씨처럼요.

천국보다 낯선 블랙코미디 #블루스 음악이 돋보이는 장편 흑백영화 #낡은 것,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향수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의 주인공 모금산 씨(기주봉 분).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의 주인공 모금산 씨(기주봉 분).

모금산(기주봉 분) 씨는 충청남도 금산에 있는 ‘마을이발관’의 이발사입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면도하고 출근하죠. 일이 끝나면 동네 실내 수영장에서 수영합니다. 수영 마저 끝나면 단골 호프집에 들러 벽을 보고 혼맥(혼자 맥주 마시는 것)을 즐기죠.

집에 돌아오면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한 채 강냉이를 먹다가, 식탁 앞에 앉아 오늘 있었던 일을 짧게 기록합니다. 비로소 침대에 누운 금산 씨는 잠들려 애쓰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아 잠을 설치죠. 다음날, 그다음 날에도요. 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어쩌면 평범한 중년 남성의 일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호프집에서 벽 보고 혼맥 하는 것이 일상이다.

호프집에서 벽 보고 혼맥 하는 것이 일상이다.

그러던 어느 날, 금산 씨는 보건소에서 ‘위암’ 판정을 받게 됩니다. 그야말로 날벼락 같은 일이죠. 하지만 그날 이후, 금산 씨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무료한 삶에 작은 변화를 만들어가는데요. 출근길에 로봇 춤(!)추기, 같이 수영 다니는 아가씨에게 말 걸기 등 평소 금산 씨 같았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이죠.

그리고 젊은 시절 꿈꿔왔던 '영화배우'의 꿈을 실현하려고 합니다. 대본도 직접 쓰고 의상에 소품까지 준비하는 등의 열정을 보이죠. 영화의 연출을 위해 영화감독 지망생인 아들 스데반(오정환 분)과 아들의 여자친구 예원(고원희)을 불러들입니다.

뜬금없이 아버지의 일탈에 소환(!)된 그들은 무심하게 툭 던진 대본을 보고 의아해합니다. '도대체 아버지(아저씨)가 왜?' 머리에 물음표만 잔뜩 남아있죠. 어떤 이유가 있을 거라 짐작한 예원은 금산 씨를 돕기로 합니다. 아들 스데반도 '억지로' 참여하게 되고요. 이들은 영화 촬영은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요?

금산 씨의 일탈에 소환된 아들 스데반(오정환 분)과 아들의 여자친구 예원(고원희 분).

금산 씨의 일탈에 소환된 아들 스데반(오정환 분)과 아들의 여자친구 예원(고원희 분).

흑백영화에 대한 추억이 있으신가요? 저는 흑백영화 세대가 아니지만 딱 한 번 흑백(무성)영화를 극장에서 본 기억이 있습니다. 바로 <아티스트>(2011)라는 작품이었는데요. 흑백인 데다 소리(음악)에 민감한 저로서는 ‘가서 자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의외로(?)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이하 메크모)도 전체 흑백영화로 제작되었습니다. 감독은 이에 대해 영화 속 모든 이미지가 흑백으로 다가왔다고 전했습니다. 색이 있으면 전체적인 영화의 색깔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고 덧붙였죠. 또 흑백이 관객으로 하여금 캐릭터들의 대사와 감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과 모금산 역 기주봉 배우의 마스크가 흑백과 어울렸다는 점도 이 영화를 흑백영화로 제작하게 된 이유라고 합니다. 실제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낡은 이발소와 다방, 쌍화차 등 옛것을 떠올리게 하는 소품들이 그 시절의 향수 또는 추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생각나게 합니다.

금산 씨의 직장인 마을이발관.

금산 씨의 직장인 마을이발관.

극 중 금산 씨가 출연한 영화 <사제 폭탄을 삼킨 사나이>도 흑백 무성 영화로 제작되었는데요. '세 명이 어떻게 영화를 찍나, 그것도 캠코더로….'라고 생각했는데, 말로 표현하지 않고 과장된 몸짓과 행동을 통해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들이 하나의 단편영화로 견주어도 좋을 만합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저절로 '찰리 채플린'을 떠올리게 됩니다. 감독은 평소 잠들기 전 버스터키튼과 찰리 채플린의 단편 영화들을 재생해 놓고 잠들 정도로 이들의 열렬한 팬임을 자처했는데요. 실제로 <위대한 독재자>에서 1인 2역(독재자 ‘힌켈’과 평범한 유대인 이발사 역할)을 맡았던 찰리 채플린을 참고했다고 하네요. 이외에도 ‘미스터 모의 생과 사’라는 박인환의 시, 블루스, 크리스마스 캐롤, 아키카우리스 마키와 짐 자무쉬 감독의 영화들이 <메크모>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습니다.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에 많은 영향을 준 찰리 채플린.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에 많은 영향을 준 찰리 채플린.

그리고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음악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감독은 시나리오 쓸 때부터 블루스 음악을 쓰기로 정했다고 합니다. 기타리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인 블루스 뮤지션 하헌진은 다소 단조로울 수 있는 영화에 기타 선율을 얹음으로써 영화의 생동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합니다. 또한 영화의 전체적인 흑백 톤과도 아주 잘 어울리죠.

흑백영화, 블루스 음악 등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향수'를 느끼고 싶다면 올겨울 이 영화를 만나보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영화 포스터. [사진 필앤플랜 제공]

영화 포스터. [사진 필앤플랜 제공]

감독·각본: 임대형
출연: 기주봉, 오정환, 고원희, 전여빈
촬영: 문명환
음악: 하헌진
장르: 코미디
상영시간: 101분
등급: 12세이상관람가
개봉일: 2017년 12월 14일

현예슬 멀티미디어 기자 hyeon.yeseul@joongang.co.kr

[제작 현예슬]

[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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