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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의 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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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오영환
오영환 기자 중앙일보 지역전문기자
오영환 도쿄총국장

오영환 도쿄총국장

일본은 첩첩산중이다. 1990년대 이래 접해 오지만 여전히 깊고 겹겹이다. 어떤 나라인가라는 물음에 말문이 막히기 일쑤다. 제도나 시스템의 피상만 좇았다는 공허감이 들 때가 적잖다. 일본 사람도 열 길 물속이다. 무릇 이국이 다 그렇겠지만 일본은 더한 것 같다. 여기에 역사의 선입관, 개인적 경험이 덧칠해진다. 일본론은 백인백색이다.

일본 작가 시바 료타로의 일본론은 묵직하다. 평생 현장에서 일본의 내력을 역사소설로 담은 그였다. 그가 만년에 남긴 6권의 『이 나라의 틀(この國のかたち)』은 일본론을 집대성한 작품이다. “무엇보다 일본인은 일하는 사람이다. 일본인은 늘 긴장하고 있다. 이유는 늘 다양한 공(公)의식을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구절은 압권이다. 이만큼 가슴에 와닿는 설명을 본 적이 없다.

시바 일본론의 키워드는 바로 공공이다. 시바는 그 뿌리를 12~14세기 가마쿠라(鎌倉) 막부의 무사에서 찾는다. 당시 농사를 짓던 무사들의 “부끄러운 짓을 하지 마라(名こそ惜しけれ)”는 윤리관에 주목했다. 이 정신이 전국(戰國) 시대에 ‘이 영지(領地)를 위해’라는 공공 의식으로 발전했다고 본다. 공공 의식은 에도(江戶) 막부 들어 서민들로 확산됐다. 시바는 “어떻게 행동하면 아름답고, 공익을 위한 것인가. 이 두 가지가 막부 말기 사람들을 만들어냈다”고 했다. 그러면서 메이지(明治) 유신의 주역인 막부 말기 무사를 ‘인간의 예술품’으로 치켜세웠다. “메이지 관료는 딱할 정도로 깨끗했다”고 했다. 나라를 좋게 하려는 공공 의식이 근대화와 전후 부흥의 요체라는 분석이다. 일제 군국주의에 대해선 군부가 일왕의 통수권을 확대 해석하고 여기에 공공 의식이 더해져 국가가 폭주했다고 설명한다.

시바가 공공 의식의 예찬론자는 아니다. 시바는 책 편집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근본적 물음을 던졌다. “새로운 시대를 향해 일본인 한 사람 한 사람이 ‘확실한 개인’을 만들지 않으면 다시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시바가 타계한 지 21년이 지났다. 그 사이 세계도, 일본도 급변했다. 그렇지만 일본의 공공 의식은 여전해 보인다. 개인의 자립과 창조력을 민주주의와 발전의 과제로 보는 목소리가 적잖다.

한발 떨어져 본 우리 사회는 공공 의식이 꽤 엷어진 것 같다. 개인은 주장하고, 공공은 뒷전으로 밀려나는 분위기다. 그 자리를 이념이 채우고 있다. 어떤 나라를 만들지에 관한 담론을 들어본 지도 오래됐다. 케케묵은 공공이 아니라 시대에 걸맞은 공공을 찾아 새 거버넌스를 모색해 볼 때가 됐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다시 변경으로 전락할지 모른다. 한국의 새 지평은 분명 한국 안에 있을 터이다.

오영환 도쿄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