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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민섭의 변방에서

김민섭씨 찾기, 그리고 그 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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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글을 쓰는 지금, 원래 나는 후쿠오카에 있어야 하지만 여전히 서울에 있다. 여행을 앞두고 항공권을 취소한 탓이다. 얼마 전 왕복 10만원에 올라온 ‘땡처리 항공권’을 예매했다. 그런데 아이가 급작스럽게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고, 아픈 아이를 두고 혼자 떠나기에 염치가 없었다. 항공사에서는 취소 수수료만 8만원이 넘는다고 했다. 2만원도 안 되는 돈을 돌려받기가 왠지 얄미워서 양도할 방법이 없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여권의 영문 이름이 같은 대한민국 남성을 출국 3일 전까지 찾아오면 된다고 해서 페이스북에 "김민섭씨를 찾습니다. 후쿠오카 왕복 항공권을 드립니다”는 글을 올렸다.

결과적으로는 3일 만에 93년생 청년 김민섭씨가 나타났다. 지금 그는 후쿠오카에 있다.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를 찾는 데 동참해 주었다. 그가 졸업 전시를 준비 중인 디자인 전공 휴학생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여행 경비뿐 아니라 그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비용을 마련해 주자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카카오 스토리펀딩의 제안으로 그의 디자인 재능을 후원하는 프로젝트가 만들어졌고, 놀랍게도 250만원이라는 큰돈이 모였다.

변방에서 12/9

변방에서 12/9

그런데 이 따뜻한 연대와는 별개로, 항공권의 취소 수수료가 필요 이상으로 비싸다는 점을 역시 짚고 넘어가고 싶다. 출국이 2주 가까이 남은 시점에서 이미 매진되어 있는 표를 환불하려고 했는데도 80% 이상의 취소 수수료를 요구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그것이 아무리 ‘땡처리 항공권’이라고 해도 그렇다. 항공사와 여행사는 어차피 예약 대기를 걸어 둔 다른 승객을 다시 받아 별다른 위험 부담 없이 이익을 취할 수 있다. 이것은 많은 항공사와 여행사에서 두고 있는, 말하자면 업계 전반의 시스템이다.

‘김민섭씨 찾기’를 지켜본 이들에게는 따뜻함과 함께 무언가 부당한 일에 즐겁게 맞섰다는 기억이 남을 것이다. 모두가 문제를 인식하는 순간, 개인을 둘러싼 그 어떤 단단한 제도라도 조금씩 변화하기 마련이다. 평범한 개인들이 사회를 바꾸어 가는 가장 강력한 힘은 피켓과 목소리뿐 아니라 이러한 기억의 공유에서 나온다. 2만원의 금액을 포기하는 것으로 만들어낸 이 작은 연대처럼 우리 주변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즐거운 방식을 저마다 상상해 보면 한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