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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종 후배' 젊은의사 3인 "365일 피말려도 쾌감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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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사람 속으로] 이국종과 함께하는 젊은 의사 문종환·권준식·강병희 

이국종과 함께하는 젊은 의사 문종환·권준식·강병희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에서 이국종 교수와 함께 일하는 권준식·문종환·강병희 교수(왼쪽부터)가 4일 센터의 역사가 전시된 복도에서 외상 의사의 길을 설명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에서 이국종 교수와 함께 일하는 권준식·문종환·강병희 교수(왼쪽부터)가 4일 센터의 역사가 전시된 복도에서 외상 의사의 길을 설명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세 살배기 아들이 어린이집 놀이시간에 집을 지으라고 하면 두 개를 만든대요. 하나는 우리 집, 하나는 아빠 집.”

세 살 아들, 아빠 따로 사는 줄 알아 #가족에겐 미안하지만 후회 안 해 #사선에서 구출해 건강하게 살려내 #열심히 하는 만큼 좋아지니 보람 #헬기 타면 홀로 판단하고 처리 #실패하면 환자 죽게 돼 두려워 #이송시스템 잘못, 환자 더 못 받아 #살릴 수 있는 기회 놓쳐 안타까워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문종환(38) 교수가 씁쓸하게 말했다. 문 교수는 외상센터의 유일한 흉부외과 전문의다. 대신할 사람이 없어 365일 대기 상태다. 집에 있는 시간이 적어 아이는 아빠가 따로 사는 줄 안다. 문 교수가 출근하면 아이는 “아빠 집에 간다”고 말한다.

귀순 병사 오청성(25)씨가 살아났지만 아주대 외상센터의 일은 끊이지 않는다. 센터에 머무는 환자가 150여 명이다. 이국종 센터장은 연구실 침대에서 쪽잠을 잔다. 다른 스태프들도 다를 바 없다. 이 센터장은 앞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매일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보며 버틴다”고 말했다.

4일 오후 아주대 외상센터 5층에서 ‘이국종의 후예들’을 만났다. 문종환·권준식(35·외과 전문의)·강병희(34·외과 전문의) 교수다. 권 교수는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에서 외과 전문의를 마친 뒤 권역외상센터가 생기기 전인 2011년에 합류했다. 문 교수는 고신대 의대를 졸업하고 아주대병원에서 흉부외과 전문의를 마치고 2014년에 이 센터장과 같은 길을 걸었다. 강 교수는 아주대 의대, 아주대병원 외과 전문의를 거쳐 2년 전 공중보건의사를 마치고 합류했다.

외상센터에는 24시간 예고 없이 중증 외상환자가 들이닥친다. 돌발 상황이 생기지 않을까, 인터뷰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3명이 다 모였다.

이들은 성형외과·피부과 등의 인기과목을 제쳐 두고 왜 가시밭길을 택했을까. 문 교수는 “사람 살리는 게 좋아서”라고 말한다. 권 교수는 “헬기 타고 날아가 환자를 구하고, 수술해서 목숨을 살리고 재활까지 끝까지 책임지는 게 좋아서”라고 말한다. 강 교수는 “생사를 넘나드는 환자를 살릴 수 있어서”라고 말한다. 당장 손쓰지 않으면 죽을지 모르는 목숨을 마술처럼 살리는 ‘쾌감’이 이들을 외상센터로 이끌었는지 모른다. 마치 ‘마이티 서전(mighty surgeon·강력한 칼잡이)’처럼.

강 교수는 한 달에 7~8차례 당직을 선다. 오전 6시에서 다음날 6시까지 36시간 연속 근무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그는 “환자가 병실에 있는데 어떻게 퇴근하겠느냐. 전공의가 없으니 웬만한 결정은 내가 해야 해서 퇴근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런 생활, 후회하지 않을까. 문 교수는 “의사인 아내마저도 ‘왜 그렇게 힘든 일을 하느냐’고 말한다. 가족들에겐 미안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없다. 권 교수는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게(외상외과) 좋아서 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선택한 일이다. 이게 전부다”고 말한다.

외상외과의 어떤 점이 젊은 의사들을 미치게 했을까.

“의료가 세분화되면서 가슴을 보는 의사는 평생 가슴만 본다. 우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봐야 한다. 항상 새로운 환자를 맞이하고 수술·재활, 퇴원 후 외래진료까지 챙긴다. 의사 하나하나가 자기 환자를 책임지는 자영업자다. 그 점이 진짜 재밌다.”(권준식)

“외상환자는 대부분 나이가 젊다. 사선에서 끌어와 치료를 잘하면 건강하게 살아 나간다. 열심히 하는 만큼 환자가 좋아지니까 보람을 느낀다.”(문종환)

세 의사는 인터뷰 내내 “힘들다”는 말은 거의 하지 않았다. 대신 일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내비쳤다.

어쩌다 외상센터에 오게 됐나.
문=이 센터장이 흉부외과 전문의가 필요하다며 나를 이끌었다. 내 능력을 보다 다양하게 발휘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했다. 당시 이 센터장이 (나를 끌어간 것 때문에) 흉부외과 교수들을 피해 다녔다고 한다.
강=생명을 다루고 싶어 외과에 갔다. 외상외과가 궁금해 전공의 4년차 때 한 달간 파견을 왔다. 이 교수의 이상과 내 생각이 맞아서 결심하게 됐다.
권=전공의(레지던트) 시절부터 외상전문의사를 하고 싶다고 얘기하고 다녔다. 그러다 2010년 외상학회 학술이사이던 이국종 교수를 소개받았다. 외상을 하는 의사를 그때 처음 봤다.

권 교수는 강 교수와 이 센터장의 일화를 소개했다. 이 센터장이 강 교수를 끌어오려고 공을 아주 많이 들였다고 한다. 권 교수한테 “걔 요즘 어떠냐”고 계속 물어 봤다. 이 센터장이 “얘(강 교수를 지칭)는 외상외과로 간다”고 몰래 소문을 냈다고 한다.

헬기 타는 게 힘든가.
문=헬기를 타는 순간 낯선 환경이 시작된다. 긴장해서 평소 실력대로 잘 안 된다. 전임의(전문의의 전공 심화과정) 시절 헬기에 환자를 싣기 전 기도 삽관을 하다 실패했다. 5년 만의 실패였다. 병원 바깥은 완전히 다른 공간이다. 병원 내 진료와 다르다.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아내는 TV에서 헬기 사고 소식을 볼 때마다 심장이 떨린다고 한다. 매번 기도하고 탄다.
강=병원에는 혈압 등 환자 상태를 봐 주는 모니터가 있는데 밖에선 그런 게 없다. 내가 실패하면 환자가 죽게 된다는 불안에 휩싸인다. 항상 두렵다.
권=의료인 안전 면에서도 위험하다. 미국에서 총격전에 노출된 경찰보다 비행하는 의사의 사망률이 3~5배 높다고 한다.

이들은 인터뷰 도중에도 수시로 전화를 받고 지시했다. 사망 환자 리뷰(분석) 회의에도 다녀왔다. 매주 이런 회의가 열린다. 숨진 환자가 정말 사망할 수밖에 없었는지, 무엇을 개선하면 살릴 수 있을지 살핀다. 미국 제도를 가져온 것이다. 아주대 외상센터는 미국의 최고 기준에 맞춰져 있다.

아주대 센터는 가장 환자를 많이 받고 가장 많이 살린다. 문 교수는 “다른 병원에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표가 있다. 구성원 모두 이런 사명감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권 교수는 “우리 센터도 지금보다 환자를 더 받아야 한다. 미국은 인구 100만 명당 센터 1개가 필요하다고 잡는다. 우리 센터 관할인 경기남부 권역에 900만 명이 산다”며 “환자가 정상적으로 이송된다면 지금처럼 인터뷰할 시간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환자가 그만큼 없다”고 말한다. 그는 “이송 시스템이 잘못돼 있다. 처음부터 여기로 와야 살 수 있는 중증외상 환자들이 다른 곳(응급실)에서 죽어 가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문 교수는 “의료 인력이 지금의 2배는 돼야 한다. 정부는 계속 전문의 얘기만 하는데 전공의와 간호사 충원이 절실하다”고 제안했다.

수원=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아주대학교병원 중증외상센터에서 이국종 교수와 함께 일하고 있는 권준식 교수. [우상조 기자]

아주대학교병원 중증외상센터에서 이국종 교수와 함께 일하고 있는 권준식 교수. [우상조 기자]

권준식(35)
· 연세대 의대 졸업
· 서울대병원 외과 전공의
· 아주대 외상외과 전임의
· 아주대 외상외과 진료 조교수

아주대학교병원 중증외상센터에서 이국종 교수와 함께 일하고 있는 문종환 교수. [우상조 기자]

아주대학교병원 중증외상센터에서 이국종 교수와 함께 일하고 있는 문종환 교수. [우상조 기자]

문종환(38)
· 고신대 의대 졸업
· 아주대 흉부외과 전공의
· 아주대 흉부외과 전임의
· 아주대 외상외과 전임의
· 아주대 외상외과 진료 조교수

아주대학교병원 중증외상센터에서 이국종 교수와 함께 일하고 있는 강병희 교수. [우상조 기자]

아주대학교병원 중증외상센터에서 이국종 교수와 함께 일하고 있는 강병희 교수. [우상조 기자]

강병희(34)
· 아주대 의대 졸업
· 아주대 외과 전공의
· 아주대 외상외과 전임의
· 아주대 외상외과 진료 조교수

[S BOX] 폭력 센터장 이국종? 인턴에게도 함부로 안 하는데 낭설이죠

이국종 센터장이 관심을 받으면서 ‘카더라’ 괴담이 끊이지 않는다. 세 교수에게 팩트체크 했다.

지난 8월 이국종 센터장은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온라인 의사 커뮤니티의 악플을 공개했다. ‘(이국종이) 유명한 꼴통이라네요. 후배들 때리고 폼 잡는’.

이 센터장과 함께 일한 문종환 교수에게 “맞은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사실이 아니다”고 웃었다. 그는 “이 센터장이 아주대 의대 1기여서 의사면허시험 모의고사 성적까지 살피는 등 후배들을 각별히 챙긴다”며 “전공의가 없어 의대생들을 데리고 수술하던 시절에 분위기를 엄하게 잡았던 게 와전된 것 같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오히려 후배 존중이 몸에 배어 있다. 인턴도 ‘○○선생님’이라고 부른다”고 덧붙였다.

이 센터장이 헬기 비용으로 8억원의 빚을 지고 있다는 소문도 사실과 달랐다. 적자가 난 건 맞지만 개인 빚이 아니라 병원이 떠안았다고 한다. 문종환 교수는 “외상외과를 한다고 해서 빚 질 거라고 여기는데 먹고살 만하다”며 “다만 업적 평가나 임용 등에서 불리해진다”고 말했다.

권준식 교수는 “2002년부터 이 센터장이 중증외상환자 진료 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해 왔다. 2011년 석해균 선장 진료건으로 조금이나마 진전됐다”며 “이번에도 몇 발짝 나갈 것 같다. 계기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문종환 교수는 “센터장 이름값 덕분에 이 정도라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최근 많이 바빠졌지만 사기가 올라가고 있다. 의료계에서 외상외과가 전문성을 인정받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병희 교수는 “군의관 시절 심적으로 방황을 좀 했는데 이 센터장이 잘 챙겨줘 이겨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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