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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으로] 3대에 걸쳐 탄 폭격기, 100년 넘긴 군함, 1911년생 권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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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장수만세 무기들 

미국의 전략폭격기 B-52H는 1955년 도입 이후 62년간 날아다녔다. 2040년까지 운용된다. 작은 사진은 도입 60주년인 정찰기 U-2. 주한미군이 아직도 쓰고 있다. [사진 미 공군]

미국의 전략폭격기 B-52H는 1955년 도입 이후 62년간 날아다녔다. 2040년까지 운용된다. 작은 사진은 도입 60주년인 정찰기 U-2. 주한미군이 아직도 쓰고 있다. [사진 미 공군]

21세기 전쟁터는 첨단 무기와 스마트 폭탄이 지배한다. 사령부에 앉아서도 적의 위치를 파악하고, 버튼 한 번만 누르면 정확히 타격할 수 있는 세상이다. 각 나라 장군들은 조금이라도 더 최신형을 손에 넣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이유다.

1955년 도입한 폭격기 B-52H #월남서 이라크전까지 역전의 용사 #엔진 등 개량해 2040년까지 ‘복무’ #1915년 취역 러 구조함 콤무나 #2차대전 레닌그라드 방어전 투입 #대규모 수리 거쳐 흑해 함대서 활동 #환갑 넘긴 미 정찰기 U-2 #주한미군, 고공 25km서 북한 정찰 #요즘도 가끔씩 오산기지서 보여

그러나 이 같은 세계적 추세와 동떨어진 모습도 보인다. 사람으로 치면 환갑을 넘었는데도 여전히 현역으로 뛰는 무기들이 있다. ‘장수만세 무기’들이다.

미국의 전략폭격기 B-52H ‘스트래토포트리스’가 대표적 사례다. 미국의 방산업체 보잉은 지난달 B-52H의 통신장비를 업그레이드하는 계약을 미 공군과 했다고 밝혔다. 이 사업이 끝나면 B-52H는 최첨단 통신장비를 갖춘다고 보잉은 강조했다. 미 공군은 예산이 확보되는 대로 B-52H의 엔진도 신형으로 바꾼다는 계획을 세웠다. 적어도 2040년까지는 B-52H가 하늘을 날아다닌다는 얘기다.

그런데 B-52H는 1952년 시험비행에 성공한 뒤 55년부터 미 공군이 도입한 폭격기다. 월남전·걸프전·아프가니스탄전·이라크전 등을 거친 역전의 용사다. 도입 연도 기준으로 올해 62년이 넘었다. 2040년이라면 도입 85년이 된다.

역사가 길다 보니 미 공군에선 B-52H를 ‘3대가 타는 폭격기’로 부른다. 실제로 2013년 데이비드 웰시 대위가 외할아버지 돈 스프래그(예비역 대령), 아버지 돈 웰시(예비역 중령)를 이어 B-52H 조종사가 됐다. 외할아버지는 베트남전에서 베트콩을 상대로 융단폭격을 퍼부었고, 아버지는 냉전 중 대통령의 명령이 떨어지면 소련을 핵폭격해야 하는 임무를 맡았다.

B-52H는 아직도 현역일 뿐만 아니라 미 공군 전략폭격기의 주력이다. 미 공군은 핵전쟁을 대비해 B-52H 말고도 스텔스 폭격기인 B-2 ‘스피릿’, 지난 6일 한반도에 출격한 B-1B ‘랜서’ 등 폭격기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B-1B는 옛 소련과의 핵군축 협상으로 핵공격 능력이 제거됐다. B-2는 엄청난 가격 때문에 소수만 제작됐다. 100대가 넘는 B-52H가 21세기에도 은퇴할 수 없는 속사정이다. 게다가 운용비까지 싸기 때문에 미 공군이 아낄 수밖에 없다.

러시아 해군 잠수함 구조선 콤무나는 배 나이가 100살이 넘는다. [사진 위키피디아]

러시아 해군 잠수함 구조선 콤무나는 배 나이가 100살이 넘는다. [사진 위키피디아]

B-52가 환갑임에도 ‘명함을 못 내미는’ 적수도 있다. 러시아 해군의 잠수함 구조함 콤무나 말이다. 콤무나는 1913년 진수한 뒤 1915년 취역했다. 선령(船齡·배 나이)이 100살을 훌쩍 넘는다. 배가 첫 항해에 나설 시절 러시아는 러시아제국으로 불렸다. 이후 소련을 거쳐 지금의 러시아 공화국까지 이 배는 굴곡진 러시아 현대사의 ‘산증인’으로 남아 있다.

콤무나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레닌그라드 방어전에 투입된 뒤 독일 공군의 공습을 받아 여러 차례 침몰 위기를 겪었으나 끝까지 생존했다. 소련 해군은 84년 콤무나를 퇴역시키려다 곧 취소했다. 오히려 99년 대규모 개장공사를 받았고, 2009년에는 영국제 심해잠수정을 탑재했다. 현재 러시아 흑해함대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 공군의 고공정찰기인 U-2 ‘드래곤 레이디’도 ‘밀리터리 장수족(族)’이다. 이 항공기는 55년 첫 비행을 했고, 2년 뒤 배치됐다. 주한 미 공군은 지금도 U-2를 북한 정찰에 활용하고 있다. 가끔씩 오산기지에서 U-2를 볼 수 있다. 방산 소식지인 ‘국방과 기술’ 기고가인 최현호씨는 “U-2는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로 날 수 있기 때문에 이동성이 떨어지는 정찰위성의 보조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성층권인 고도 25㎞까지 올라가 지상을 촬영하는 게 U-2의 임무다. 그래서 U-2 조종사는 우주복 같은 조종복을 입는다. 개발 당시 소련엔 U-2의 비행 고도까지 올라갈 수 있는 지대공 미사일이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U-2는 소련 등 공산권의 영공을 제집 드나들 듯이 다녔다.

그래서인지 이 항공기는 냉전의 한복판에 종종 섰다. 60년 5월 소련은 신형 S-75(SA-2라고도 불림) 지대공 미사일로 U-2를 격추시켜 조종사를 생포했다. 미국은 U-2 조종사를 구출하기 위해 이미 체포한 소련 스파이와 맞바꿔야만 했다. 62년 4월엔 미국의 U-2가 소련이 쿠바에 세운 핵미사일 기지를 촬영했다. 전 세계가 핵전쟁 문턱까지 간 ‘쿠바 미사일 위기’의 시작이었다. 다행히 미·소는 한 발짝씩 물러났다.

지상 무기 현역 최고령 M1911 권총은 1911년 개발됐다. [사진 미 해병대]

지상 무기 현역 최고령 M1911 권총은 1911년 개발됐다. [사진 미 해병대]

지상 무기 현역 최고령 M1911 권총은 1911년 개발됐다. [사진 미 해병대]

지상 무기 현역 최고령 M1911 권총은 1911년 개발됐다. [사진 미 해병대]

지상 무기 가운데 현역 최고령은 M1911 권총이다. ‘1911’이란 숫자는 이 권총의 개발 연도다. 미 해병 특수부대나 연방수사국(FBI)이 M1911을 애용하고 있다. 튼튼하고 간단한 구조를 가졌기 때문에 청소와 정비가 쉽다. 실제 M1911을 쏴 본 사람들은 손바닥에 착 감기는 느낌을 준다고 한다. 100년 넘는 역사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닌 게다.

M2 중기관총은 1938년 처음 배치됐다. [사진 육군]

M2 중기관총은 1938년 처음 배치됐다. [사진 육군]

M1911 버금가는 게 M2 중(重)기관총이다. 미 육군은 1933년 이 기관총을 구입한 뒤 아직 쓰고 있다. 1918년 처음 만들어졌으니 100살에 가깝다. 미 육군과 미국의 동맹국을 중심으로 100개가 넘는 국가에서 이 기관총을 쓰고 있다. 기관총계의 베스트셀러인 셈이다. 한국 육군은 M2를 조금 손본 K6를 탱크와 장갑차의 탑재용 기관총으로 사용하고 있다. 군사 월간지 ‘플래툰’의 편집장인 홍희범씨는 “미 육군에선 무게가 무겁다(본체 무게만 38㎏)는 이유로 서너 차례 M2 대체용을 개발했지만 매번 실패했다. 지금도 쓸 만해 계속 사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리가 없거나 다리가 끊어진 곳에 놓는 조립식 다리인 M2 장간조립교도 수많은 전쟁을 치렀다. 영국 육군이 2차 세계대전 중이던 41년 장간조립교를 처음 사용했다. 6·25전쟁 중 미 해병 1사단을 장진호 전투에서 구한 게 장간조립교다. 당시 중공군은 미군의 퇴로를 막기 위해 수문교를 파괴했다. 미군은 공중에서 투하한 장간조립교로 진로를 개척했다.

도입 60년이 넘는 무기가 수두룩한 이유는 뭘까. 최현호씨는 “구형 무기를 계속해서 사용하는 것은 경제적인 이유(예산 부족)가 대부분이지만 큰 비용을 들여 대체할 무기를 개발해도 그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구관이 명관’인 셈이다. 물론 이 무기들이 그대로 사용되는 건 아니다. B-52H와 같이 끊임없이 개조하거나 업그레이드를 받아 도입 당시와 전혀 달라진 경우가 많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S BOX] 북한군 주력 전투기·전차·고속정 모두 60년 넘은 ‘골동품’

김정은이 여성 MiG-15 조종사의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조선중앙통신]

김정은이 여성 MiG-15 조종사의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조선중앙통신]

장수만세 무기의 천국이 있다면 북한일 것이다. 북한 공군의 폭격기 Il-28은 1948년 처음 만들어졌다. 그런데 북한은 50년대 중국으로부터 이 폭격기의 복제품을 들여온 뒤 아직 운용 중이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2014년 11월 미그(MiG)-15 여성 조종사들을 격려했다고 북한 관영매체들이 전했다. MiG-15는 49년 옛 소련이 배치하기 시작했고, 6·25전쟁 때 미군의 F-86 세이버와 호각을 이룬 전투기다. 물론 당시는 명작이었지만 지금은 골동품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2012년 2월 북한군 시가지 훈련 선전 영상을 보면 제2차 세계대전을 참전했던 T-34 전차를 볼 수 있다. T-34는 생산 연도가 다양한데 이 영상에 보이는 것은 1943년형으로 추정된다.

북한 해군의 미사일 고속정 코마급은 소련이 2차 세계대전 직후인 40년대 후반 설계했다. 북한의 코마급은 50년대 중반부터 60년대 초반 사이 소련으로부터 들여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고속정은 원래 목선이었으나 북한이 철선으로 개조하면서까지 마르고 닳도록 쓰고 있다.

군사 기고가 최현호씨는 “북한은 핵·미사일에 투자를 몰아주다 보니 재래식 전력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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