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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 "재판 중심·수평구조" 사법행정 변화 예고

중앙일보

입력

김명수(58) 대법원장이 사법행정을 재판 중심으로 고치고, 법관들의 조직 문화를 수평적으로 바꾸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취임 후 첫 전국법원장 회의 개최 #행정처 기능 재판 지원 중심 개편 #각급 법원 판사회의 실질화 당부

김 대법원장은 8일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서 “사법행정권이 남용되지 않도록 철저히 일선 재판을 중심으로 사법행정이 이뤄지는 대원칙이 수립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날 법원장회의는 김 대법원장 취임 후 처음 열렸다. 전국법원장회의는 보통 매년 12월 초에 개최된다.

8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 법원장 회의에서 참석자들이 김명수 대법원장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8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 법원장 회의에서 참석자들이 김명수 대법원장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김 대법원장은 법원행정처가 주도하는 사법행정의 구조를 바꾸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재판의 주체는 분명 각 재판부 법관들이고, 사법행정이 재판을 이끌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법원행정처는 일선 법관들이 필요로 하는 자료를 제공하고, 유사한 고민을 하는 법관들을 서로 연결해줘 바람직한 결과로 선순환이 이뤄지도록 돕는 것이 본연의 모습”이라고도 했다.

법관 조직의 수평화 방안으로는 일선 법원의 판사회의 실질화를 들고 나왔다. 김 대법원장은 “수평적인 패러다임에서는 일선에 있는 법원장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며 “일선 법원에서 사무분담 등 중요한 사항을 결정할 때 법원 구성원들과 투명한 절차를 통해 의견을 나눠달라”고 말했다. 자신이 춘천지방법원장 시절 시도했던 이른바 ‘춘천 실험’의 전국 확대를 당부한 것이다.

김 대법원장은 춘전지법원장이던 지난 2월 판사회의를 소집해 사무분담 확정 안건을 상정하고 회의장을 나갔다. 판사들이 자율적으로 논의해 사무분담을 정하도록 한 것이다. 사무분담은 법원의 재판부를 구성하고 법관을 배치하는 법원 행정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일선 법원에선 법원장이 수석부장판사와 논의해 사무분담을 정한 뒤 판사회의에서 동의를 얻는 게 관행으로 굳어 있었다. 법원 내부에서 김 대법원장의 조치는 관행을 깬 신선한 파격으로 평가받았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8일 서울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이 8일 서울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김 대법원장이 수평적 조직문화를 강조한 것은 고등법원 부장 승진제 폐지 등 서열화된 법관 사회의 수직 구조를 깨려는 의지로 풀이된다. 김 대법원장은 “변화된 사법 환경에 적합한 새로운 인사제도를 확립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고 강조했다. 서울의 한 법원에 근무하는 부장판사는 “고법 부장 승진제 폐지와 평생 법관제 정착 등으로 서열화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대법원장의 뜻은 이런 환경 변화에 맞춰 수직 구조를 바꾸려는 것으로 이해된다”고 말했다.

이날 법원장회의에는 내년에 시행하려고 준비 중인 법관대표회의 상설화에 관한 논의도 이뤄졌다. 상설 법관회의는 우선 대법원장의 자문기구로 출범할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4차에 걸쳐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 측은 법관회의를 사법행정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로 만들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법관회의의 성격과 지위에 관해 법원장들은 대체로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법적 근거 부족 등 문제점을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행 법원조직법과 대법원 규칙에는 각급 법원의 판사회의에 대해서만 규정하고 있을 뿐 전국 단위의 법관대표회의에 대한 규정은 없다. 대법원은 대법원규칙에 전국법관대표회의 규정을 넣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일부 법원장들은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을 경우 법관회의의 지위와 자격에 대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법관회의의 권한에 대해 대법원장의 자문기구로 범위를 좁히는 방안과 의결권을 가진 사법행정 최고 의결기구화하는 방안 등도 제시됐다.

법원장회의에 참석한 법원 관계자는 “국회 개헌특위가 제안한 사법평의회에 대응해 법관대표회의를 사법행정 최고 의결기구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 등 법관회의의 성격과 지위에 관해 다양한 의견에 제시됐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이날 나온 의견들을 앞으로 진행될 법관회의 상설화 검토 과정에 참고할 계획이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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