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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피감기관엔 자료 요구 ‘갑질’, 국회의원 월급 자료 요구엔 “사진 찍어가지 마세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12년 6월20일 시민단체 회원들이 국회의원 세비 반납 및 등원 촉구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중앙포토]

2012년 6월20일 시민단체 회원들이 국회의원 세비 반납 및 등원 촉구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중앙포토]

“스마트폰으로 찍으시면 안 된대요. 그냥 보기만 하세요.”
지난달 27일 국회 사무처 내 한 부서 사무실.  『제20대 국회종합안내』라는 이름의 소책자 중 ‘국회의원 수당 및 의정활동 지원경비’를 소개한 38페이지를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으려던 기자에게 사무실 한 직원이 황급히 다가와 제지했다. 자신의 직속 상관이 “그 책자는 외부인에게 열람만 가능하고 복사나 촬영은 절대 안 된다”고 했다면서다.

문제(?)의 『제20대 국회종합안내』는 지난해 제20대 국회 개원을 계기로 국회 사무처가 펴낸 책자다. ▶입법ㆍ행정 지원 ▶국회시설 이용 가이드 ▶후생복지 서비스 등 국회의원에 주어지는 각종 지원과 혜택 내역이 담겨있다. 기자가 촬영을 제지당한 38페이지에는 ▶세비 1149만6820원 ▶차량유지비 35만8000원 ▶차량 유류대 110만원 등 매월 지급되는 경비 항목이 적시돼 있다.

국회의원 보좌진 증원을 계기로 제기된 의원 특권 현황을 알아보려던 기자는 해당 책자가 필요했다. 국회도서관을 검색해도 올라 있지 않은 책자다. 수소문을 통해 국회 사무처 한 부서에 이 책자가 있다는 걸 알고 연락하자 “공개 여부는 검토가 좀 필요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서너 시간쯤 지난 뒤 다시 “시간 약속을 잡고 사무실로 오면 보여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검색 사이트 구글에 ‘의회 보좌관 목록’(Congressional Staff Directory)을 검색해 들어가면, 미국 상ㆍ하 양원 보좌직원 1만6883명의 이름ㆍ직함ㆍ사무실ㆍ근무기간ㆍ연봉 등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중앙포토]

검색 사이트 구글에 ‘의회 보좌관 목록’(Congressional Staff Directory)을 검색해 들어가면, 미국 상ㆍ하 양원 보좌직원 1만6883명의 이름ㆍ직함ㆍ사무실ㆍ근무기간ㆍ연봉 등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중앙포토]

미국은 한국 국회와 180도 다르다. 구글 사이트에서 ‘의회 보좌관 목록’(Congressional Staff Directory)을 검색해 들어가면, 미 상ㆍ하 양원 보좌직원 1만6883명의 이름ㆍ직함ㆍ사무실ㆍ근무기간ㆍ연봉 등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예를 들어 크리스 반 홀런 민주당 하원의원의 입법보좌관 지키 아바비야의 연봉은 4만4167달러, 존 코닌 공화당 상원의원 스케줄담당 비서 애리카 올리버의 연봉은 6만4625달러 등이다.

이런 미국과는 다르게 가로ㆍ세로 한뼘 정도에 불과한 소책자 하나 열어보는 일이 왜 그리 어려웠던 걸까. 국회 한 관계자는 “의원 특권 문제가 여론화된 이후 ‘특권’ 얘기만 나오면 노이로제 반응을 보인다”고 전했다. 취재팀의 또 다른 기자가 국회에 보좌진 인건비 지급 세부자료를 요청했을 때에는 달랑 ‘별정직 국가공무원 수당 표’만 나온 1장짜리 답변서가 전부였다.

보수 자료 하나도 비밀주의에 숨어 극도로 공개를 꺼리는 국회는 타 기관을 상대로 자료 요청을 할 때는 ‘슈퍼 갑’이다. 국립대 한 교수는 “국감 시즌만 되면 국립대에서 겸직 중인 교수의 보수 자료를 내라고 득달 같이 요구한다. 하루라도 늦어지면 불호령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국감 때 피감기관 군기를 잡기 위해 한꺼번에 100여건의 자료를 사흘 안에 제출하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기도 한다. 국감을 앞둔 지난 9월 해양수산부 공무원들은 소관 상임위에 ‘자료 요청 전 필요성 여부를 검토하고 즉흥적인 요구는 자제해달라’는 내용의 협조 공문을 보냈다가 “공무원 신분을 완전히 망각한 처사”라며 적폐 대상으로 내몰렸다.

국회의원의 특권은 오해라는 주장을 담기 위해 만들어진 블로그. 블로그 이름이 '국회의원 특권 오해와 진실'이다. 웹사이트 캡쳐.

국회의원의 특권은 오해라는 주장을 담기 위해 만들어진 블로그. 블로그 이름이 '국회의원 특권 오해와 진실'이다. 웹사이트 캡쳐.

국회는 ‘의원 특권=오해’라는 홍보에도 열심이다. 국회는 지난 2015년 ‘의원 특권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알기 쉽게 설명한다’는 취지로 ‘국회의원 권한 및 지원(국회의원 특권 오해와 진실)’이라는 제목의 블로그를 개설했다. 블로그에는 보좌직원 증원은 의정활동ㆍ입법활동ㆍ국회기능 제고를 목적으로 하고 최근 의원발의안 급증은 보좌인력 증가에서 기인한다는 내용의 홍보자료가 올라 있다.

자체 홍보에는 이처럼 적극적이면서도 내부 속살을 보여주는 데는 인색한 국회는 “정보공개부터 투명화하는 게 국회 특권을 내려놓는 첫 걸음”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곱씹어야 한다. 기자가 8일 통화한 정보공개 관련 한 전문가(전진한 알권리연구소장)는 “국회 사무처는 마인드가 가장 폐쇄적이고 정보공개도 가장 안 되는 대표적인 적폐 기관 중 하나”라며 “국회는 이제 스스로 각성할 때가 왔다”고 지적했다.

김형구 기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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