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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억 ‘예수 초상화’ 품은 사람은 사우디 왕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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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거액의 경매 주인공 바다르 왕자.

거액의 경매 주인공 바다르 왕자.

미술품 경매 역사상 최고가로 거래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예수 초상화 ‘살바토르 문디(Salvator Mundi·구세주)’ 주인은 사우디 아라비아의 왕자였다.

NYT, 다빈치 ‘구세주’ 낙찰자 공개 #수집 경력·경제력 안 알려진 바드르 #부패척결 와중에 거액 미술품 구매 #사상 최고가에 크리스티측도 불신 #보증금 1억 달러 받고나서야 안도

뉴욕타임스(NYT)는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우디 왕가 방계의 왕자가 지난달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4억5030만 달러(약 5000억원)에 작품을 구매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크리스티 측은 당시 ‘21세기 최고의 발견’이라 불리는 이 작품의 구매자에 대한 어떤 정보도 공개하지 않아 ‘미스터리 수집가’로 불렸다.

베일 속의 주인공은 바드르 빈 압둘라 빈 무함마드 빈 파르한 알사우드(사진)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우디 왕가의 왕자다. 미술 작품 수집 경력이나 경제력도 공개적으로 알려진 바 없다. 사우디 왕실이 반부패척결 바람을 타고 피의 숙청 바람에 휘말리는 가운데 이 왕자는 재력을 과시한 것이다. 더욱이 이슬람권의 맹주를 자처하는 사우디 왕자가 수집한 작품이 무슬림과는 관계 없는 예수의 초상화라는 점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NYT는 바드르 왕자는 사우디 개혁과 왕가 숙청을 주도하는 무함마드 빈살만(32) 왕세자의 측근이라고 설명했다. 사우디의 반부패척결이 ‘선택적’으로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단서라는 것이다. 경매 불과 2주 전에 빈살만 왕세자는 사우디 왕족 및 기업가와 정부 관료 200명 이상을 반부패 척결 혐의로 체포해 억류했다. 왕족을 비롯한 아랍의 거부들은 혐의를 인정하고 가진 돈을 내놓거나, 형을 살거나 선택해야 했다.

NYT는 사우디 내부에서 입수한 문건에서 낙찰자의 정보를 알게 됐다. 문제의 작품이 당시 아랍에미리트(UAE)에서 개관을 앞둔 ‘아부다비 루브르’에 온다는 트윗에서도 단서가 나왔다. 사우디는 UAE와 가까운 동맹이다.

다빈치의 예수 초상화 ‘살바토르 문디’ [중앙포토]

다빈치의 예수 초상화 ‘살바토르 문디’ [중앙포토]

크리스티 측은 당초 바드르 왕자가 낙찰을 받고 1억 달러의 보증금을 납부할 때까지도 실제로 작품 판매 대금이 납부될 지 확신하지 못했다고 한다. 낙찰자가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로 사우디 살만 왕과 어떤 관계인지, 돈의 출처는 어디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살만 왕과 빈살만 왕세자는 바드르 왕자에게 사우디 리서치 앤 마케팅 그룹(SRMG) 운영을 맡겼다. 살만 왕가가 전통적으로 대표직을 맡아 온 미디어 그룹이다. 또한 알올라 지역의 개발을 이끄는 위원회를 새로 구성해 위원장 역할도 맡겼다. 알올라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알히즈르 고고학 유적지가 있어 왕세자가 ‘사우디 비전 2030’의 하나로서 관광 자원화 하려는 곳이다.

바드르 왕자는 사우디 에너지 홀딩스 인터내셔널 이사진에도 포함돼 있다. 이 회사 사이트에선 바드르 왕자를 “부동산 및 통신, 환경 재활용 솔루션, 동남아 및 미국 시장에서의 에너지 파워 프로젝트 등에 투자하는 가장 젊은 기업가 중 한명”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살바토르 문디의 역대 미술품 경매 최고가를 두 배 이상 웃돈 신기록을 세운 작품이다. 작품을 소장했던 러시아의 억만장자 수집가 드미트리 리볼로블레프가 당초 내놓은 가격 1억 달러(약 1100억원)의 네 배를 훌쩍 넘는 액수다.

지금까지 경매 시장에서 최고가로 거래된 작품은 2015년 1억7940만 달러(약 1980억원)에 낙찰된 파블로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이다. 개인 간 거래까지 포함한 역대 최고가는 빌럼 데쿠닝의 ‘인터체인지’로 2015년 3억 달러(약 3300억원)에 판매됐다. ‘살바토르 문디’는 다빈치가 1506년에서 1513년 사이 프랑스의 루이 12세를 위해 그렸다. 르네상스 시대의 옷차림을 한 예수가 오른손을 들어 축복을 내리고, 왼손으로 크리스털 보주(寶珠)를 들고 있는 모습을 가로 45㎝, 세로 66.5㎝ 크기의 나무판에 담았다.

한때 영국의 찰스 1세가 소장했던 이 작품은 18세기 후반까지 행방이 묘연했다. 수백 년을 떠돌던 작품은 덧칠 등으로 손상된 채 1959년 경매에 다시 등장했지만 다빈치 제자의 모사품으로 여겨져 단돈 45파운드에 거래됐다. 2005년 미술품 거래상이 약 1만 달러에 작품을 취득한 뒤에야 ‘살바토르 문디’는 복원 과정을 거쳐 다빈치의 진품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번에 낙찰된 ‘살바토르 문디’ 역시 위작일 수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바드르 왕자는 입찰 당시 낙찰가를 일시금으로 내겠다고 했으나 예상 외로 높은 경매가 때문에 6개월간 분할 납후하기로 했다. 마지막 불입 날짜는 내년 5월 14일이다.

이경희 기자

※수정 내역: 살바토르 문디는 캔버스가 아닌 나무판에 그린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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