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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먼저 구해주면 안 되나요"...해경, 생존자와 녹취록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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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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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영흥도 낚싯배 사고 당시 ‘에어포켓’에 있던 생존자와 해경의 전화 녹취록이 공개됐다. 사고지점을 파악 못 해 신고자에게 계속 위치를 물어봤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해경이 공개한 것이다.

위치파악 못한다는 의혹에 해경이 공개 #11번의 통화 중 수사관련 빼고 6개 공개 #녹취록 2시간43분 생존자의 절실함 담겨 #해경의 적절한 대응도 있지만 불통도 있어

인천해양경찰서는 7일 일부 지적에 대해 생존자와 해경의 통화기록을 공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통화는 급유선 명진15호(336t)가 낚싯배 선창1호(9.77t)를 들이받고 낚싯배가 전복된 직후인 오전 6시 6분(통화가 연결된 시간 기준)부터 오전7시42분까지 모두 11차례 이뤄졌다. 이중 수사와 관련된 통화내용을 제외한 6차례의 통화내용만 공개했다.

통화 녹취록에는 낚시승객 심모(31)씨가 일행 2명과 2시간 43분 동안 사투를 벌인 생생한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의식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해 계속 말을 시키는 등 해경의 적절한 대응도 엿보였지만 현장에 투입된 구조팀과 해경 상황실 간의 불통 모습도 담겼다.

오전 6시32분 7번째 통화가 연결된 상태에서 심씨는 “빨리 좀 와주세요. 아니면 우리 위치를 보내드릴게요. 못 찾으면”이라며 다급하게 말했다. 심씨는 자신의 위치를 담은 GPS 화면을 해경 상황실 직원의 휴대전화에 보냈다.

3일 오전 인천 옹진군 영흥도 인근 해역에서 발생한 낚시배 전복사고 현장에서 충돌사고를 일으킨 급유선 '15명진호(뒤쪽)'가 수색작업 현장에 머물러 있다. 영흥도=최승식 기자

3일 오전 인천 옹진군 영흥도 인근 해역에서 발생한 낚시배 전복사고 현장에서 충돌사고를 일으킨 급유선 '15명진호(뒤쪽)'가 수색작업 현장에 머물러 있다. 영흥도=최승식 기자

선수에 있다고 밝혔고, GPS 위치까지 보냈지만, 해경은 여전히 뒤집힌 낚싯배의 주변만 맴돌았다. 잠수 요원이 도착하지 않아서다. ‘에어포켓’에서 잠수 요원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생존자들의 절실한 외침과 달리 통화를 응대하는 상황실 직원은 “금방 구조한다” “어선이 도착했다”는 등의 말만 되풀이했다. 오전 6시53분, 8번째로 연결된 통화에서다.

상황실 직원은 “명진호가 선생님 배에 다 왔거든요”라고 안심을 시켜려 했지만 심씨는 “그게 아니라 해경이 와야지”라고 했다. 또 상황실 직원이 “저희도 다 왔고, 어선도 다왔고 바로 구조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심씨는 잠시 안심한 듯 “3명이 갇혀 있어요, 선수 쪽으로 와서 바로 구해주세요”라고 했다. 하지만 이 직원은 다시 “선생님 바로 앞에 어선 선장님 계시거든요”라고 말하자 심씨는 “(그분들은) 여기 들어올 수 없잖아요”라고 했다.

해경 구조대원이 3일 낚싯배 전복 사고가 발생한 인천시 옹진군 영흥면 영흥대교 남방 2마일 해상에서 실종자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 인천해경]

해경 구조대원이 3일 낚싯배 전복 사고가 발생한 인천시 옹진군 영흥면 영흥대교 남방 2마일 해상에서 실종자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 인천해경]

오전 7시12분 10번째 통화에서는 더 다급해졌다. 심씨가 “숨이 안쉬어져요”라며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신속한 구조를 재차 요청했다. 상황실 직원은 “우리 구조대 다 왔어요. 특수잠수 요원 준비해서, 경비정 바로 옆에 있거든요”라고 했다. 하지만 그 시간에는 평택구조대가 도착하기 5분 전이었다. 더욱이 평택구조대는 곧바로 잠수하지 않고 인천구조대가 온 7시36분에서야 물속으로 들어갔다.

참기가 힘들었는지, 심씨는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수중 수색작업이 시작된 직후인 오전 7시42분 11번째 통화에서다. 심씨는 “빨리 좀 보내주세요” “우리 먼저 구해주면 안되나요” “(신고한지) 1시간 반 됐는데” “너무 추워요”라며 오랜 기다림에 괴로움을 호소했다.

심씨는 해경의 질문에 자신들의 위치를 계속해서 설명해줬다. “선수에 있다. 선실 그 안에 있다” “안쪽, 뱃머리 제일 안쪽”이라고 했다. 하지만 상황실 직원은 “그 배 운전하고 하는 그 안까지 들어가신 거에요? 아니면 승객들 대기하는 그쪽에 계신 거에요?”라고 자꾸만 되물었다. 더욱이 이 직원은 “저희 구조대가 다 온 것 같은데요. 선생님 계신 곳이 그 승객들이 있던 그 장소 그대로가 맞으신 거죠?”라고 재차 장소를 묻기도 했다.

해양경찰 구조대원들이 3일 낚싯배 전복 사고 현장인 오전 인천 영흥도 인근 해상에서 실종자 수색작업을 위해 바다로 뛰어들고 있다. 승객이 선수에 있다고 했는데 선미로 들어갔다.  [사진 해양경찰]

해양경찰 구조대원들이 3일 낚싯배 전복 사고 현장인 오전 인천 영흥도 인근 해상에서 실종자 수색작업을 위해 바다로 뛰어들고 있다. 승객이 선수에 있다고 했는데 선미로 들어갔다. [사진 해양경찰]

생존자들이 “먼저 구해달라”고 하소연하던 그 시간, 평택·인천구조대는 선수가 아닌 선미부터 들어가 승객대기실에 있던 11명 중 5명을 인양하고 있었다.

이들이 구조될 수 있었던 것은 ‘썰물’(물이 빠지는 때)이었기에 가능했다. 해경은 물이 빠지는 시점이어서 물이 더 차진 않을 것이라고 심씨 일행을 안심시켰다. 오전 8시가 다 돼 가는 시간쯤에 심씨는 “산소가 들어오는 것 같다” “물이 좀 빠진 것 같다”고 했다. 나름 안심을 하며 기다렸지만 온다던 구조대는 소식이 없었다. 기다리다 지친 심씨는 “빨리 좀 와주세요. 너무 추워요. 두시간이나 됐는데 XX”이라고 말했다.

11번째 통화는 59분 59초 동안 이뤄졌다. 통화가 끝난 뒤 7분 여 뒤인 오전8시48분 인천구조대는 심씨를 포함해 생존자 3명을 차례로 구하는 데 성공했다. 사고발생 시각부터 2시간43분이다.

3일 오전 인천시 옹진군 영흥면 영흥대교 남방 2마일 해상에서 급유선과 충돌해 전복된 낚싯배가 침몰하고 있다. 해경?해군?소방 등으로 구성된 구조단은 실종된 승선원 2명을 수색하고 있다.

3일 오전 인천시 옹진군 영흥면 영흥대교 남방 2마일 해상에서 급유선과 충돌해 전복된 낚싯배가 침몰하고 있다. 해경?해군?소방 등으로 구성된 구조단은 실종된 승선원 2명을 수색하고 있다.

늑장출동과 구조 과정의 문제점이 드러났지만, 다행히 이들은 해경에 의해 구조됐다. 다만 이들과 반대쪽 승객대기실(조타실 뒤쪽 선실)에 있던 11명의 낚시객들은 운명을 달리했다. 낚시객 탑승자(선장 포함) 22명 중 15명이 목숨을 잃었다.

해경 관계자는 “뒤집힌 배 위에 올라 바닥을 두들기며 생존자들과 계속 신호를 주고받았다”며 “빨리 구조해야 하는데 조류가 강하고 물이 탁한 데다 낚싯줄이 뒤엉켜 있어 진입로와 퇴로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늦어졌다”고 말했다.

인천=임명수 기자 lim.myou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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